둘째와 늦은 사랑에 빠지면서
둘째 아이 안녕이가 10개월에 들어섰습니다. 머리카락도 자라서 생애 첫 양갈래 머리를 했습니다. 이 무렵의 언니랑 똑같이 생겼습니다. 남편과 함께 첫째 아이 옛날 사진을 뒤지며 난리 법석을 떨었습니다.
똑닮은 첫째 둘째가 함께 있는 모습이 새삼 달라보입니다. 이제 두 아이의 그림체에 이질감이 없습니다. 태어났을 때는 개와 늑대가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개 두 마리로 보인다고 할까요. 이제 한 공간에서 함께 자라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새삼 많이 컸구나 싶습니다.
출산 후 기억을 지워주는 호르몬의 마법일까요? 부정적인 생각을 안하려 애쓰다보니 잊은 것일까요?
안녕이와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사실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망각 속에서 드문드문 뿌옇게 떠오를 뿐입니다. 이 출산 후 망각에 대해 어디서는 아이를 또 낳으라고 자연이 여자에게 주는 농간 같은 거라고 하덥니다.
첫째와 비교하면 둘째를 키우는 게 수월했던 것 같긴 합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열 번을 반복해도 힘든 일이겠으나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똑같이 (고통스러운) 진통을 느끼고 (더 고통 스러운) 분만을 하고 (몸을 쥐어짜는) 수유를 했습니다. 그래도 첫째 때처럼 매 순간이 지독히 힘들게 느끼지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달랐던 것은 저였던 것 같습니다. 둘째에게는 모성애가 6개월도 더 지나 늦게 찾아왔었거든요.
저는 둘째를 무통 주사 없이 분만했습니다. 안 맞은 연유는 자의 반 타의 반이었던 것만 말해두겠습니다. 너무 아파서 오던 모성애가 달아났던 걸까요. 아니면 분만의 형태와 모성애가 오는 시기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걸까요. 자연주의 분만이 아이와의 연대를 더 끈끈히 만들어줄 줄 알았습니다. 막상 닥쳐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첫째와는 아이가 세상 바깥에 나와 울음소리를 낸 순간부터 사랑에 빠졌었습니다. 임신 기간 내내 아이를 만나는 것에 시큰둥하던 저였습니다. 아이를 만나고 제 마음 속에 뭔가가 펑 하고 터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둘째 안녕이와는 달랐습니다. 사랑스럽다는 느낌은 있어도 사랑에 빠지는 느낌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녁 열 시에 둘째를 분만한 후 아이와 함께 병실에 새벽 한 시에 들어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보통 아이와 함께 병실을 씁니다) 아이를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내 몸이 아프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틈만 나면 몸을 일으켜 얼굴을 확인하던 첫째 때와는 달리 둘째의 자는 모습이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몸을 일으켜 아이를 안는 것이 거추장 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잠만 자기를 바라는 스스로를 낯설어하며 멀뚱멀뚱 누워있던 기억이 납니다.
고민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에 빠지고 만다는 확신은 있었으니까요. 다만 이 사랑이 터지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아이를 보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맨 정신으로 책임감만 가지고 아이를 보는 건 힘든 일입니다. 육아라는 건 뇌 한 부분이 미쳐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뇌가 고장나는 그 순간을 모성애라고 부르는 것이고요. 그게 맞다면 저의 뇌는 제대로 잘 고장났습니다. 말해 뭐하나요 둘째가 정말 너무너무 예쁩니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엄마의 신화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그리 쉽게 말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엄마가 된 후에도 저는 여전히 나약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아이가 귀찮게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가끔은 아이보다 제가 우선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 3초의 시간을 줄테니 아이와 나 둘 중 하나를 불구덩이에 던지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아주 장담할 수 없지만 아이를 지키기 위해 제가 불구덩이로 뛰어들지 않을까 요. 제가 느낀 모성애란 이런 느낌에 가깝습니다. 조용히 잠들어 있다가도 순간 죽음의 공포까지 이겨낼 수 있는 본능적이고 동물적인 반사 반응이요.
모성애란 숭고하고 아름답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보다 원초적이고 투박한 묵직한 덩어리와 같은 그런 형태입니다. 엄마가 되는 것은 성모 마리아가 되는 것보다 고릴라가 되는 것에 가까운 것 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10개월간 둘째 안녕이와 사랑에 빠지며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