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Hello! Malta~

# 참을 수 없는 나른함의 유혹

by 그루


Malta가 특별히 나의 시야로 들어왔던 시기는 1998년 발간된 시오노 나나미의‘로도스 섬 공방전’이란 책을 본 후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을 통해 십자군 전쟁에서 활약했던 성 요한 기사단의 실체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Malta 또한 로도스 섬과 함께 나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었다. 그 후 몰타어와 영어가 공식 언어이며 이탈리아어까지 통용되는 것을 안 이 후에는 어학연수를 한 번 다녀올까 생각해 봤던 곳이기도 했었다.


Malta의 위치는 긴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코앞에 있는 시칠리아에서 약 93km 남쪽에 위치한다. 바다 건너 아래로는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와 서쪽으로는 튀니지가 위치한다. 지중해에서 마음을 먹고 찾아야 겨우 눈에 보이는 몰타를 둘러싼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그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몰타의 면적은 316 km²로 302 km²인 우리나라의 강화도보다 조금 크며 약 40만 명이 조금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제주도의 1/6의 면적으로, 강화도만 한 넓이로 인식되었던 몰타의 크기는 몰타를 여행하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 매일매일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몰타지도02.jpg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서 1월 20일 10시 45분발 비행기로 약 한 시간 10분, 서울에서 제주도 가는 거리처럼 느껴지는 것이 타자마자 간식 한 번 먹고 나니 바로 Malta의 luqa 공항에 착륙이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공항 입국 수속 대에서 일하시는 모습이 유럽은 유럽인가 보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혹시 렌트 차량을 이용할 수도 있어 렌터카를 알아보았었는데 역시 공항 출구에 렌터카 부스가 위치하고 있다.


국경을 넘을 때 느껴지는 약간의 긴장감도 잠시, 튀니지에서 겨우 한 시간여를 날아왔을 뿐인데, 내가 사는 서울과 모습은 다르지만 시스템이 많이 다르지 않은 도시의 분위기에 마치 여행을 다 내려놓은 듯 편안한 마음으로 Malta의 베이지빛 건물들 사이를 달리고 있었다.



강화도만 한 작은 섬나라에 불과한 몰타라고 생각한 것은 그때까지도 하고 있었던지라 공항에서 호텔이 있는 Sliema까지는 예상대로 30여분 달려온 것 같다. 호텔과 아파트텔, 레스토랑이 긴 해안선을 끼고 늘어서 있으며 페리 선착장이 바로 앞에 위치한 슬리에마 Sliema는 한 눈에도 더 없이 몰타 여행을 시작하기에 좋은 위치였다. 슬리에마가 비록 수도는 아니지만 주요 지역으로 운행하는 버스들이 많이 지나다니며, 내가 좋아하는 여행 방법은 아니지만 때로는 바쁠 때 가끔은 이용했던 Malta sightseeing버스(hop on hop off)가 출발하거나 정차하는 곳이다.


s-05.jpg 슬리에마페리에서 출발하는 관광투어버스


대한민국의 1월, 서울은 영하 26도라고 떠들썩하다. 체크인을 하고, 맑은 공기 속을 통과한 쨍한 햇살에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어슬렁어슬렁 버스 승차장이기도 한 페리로 나오자 코미노와 고조 섬, 몰타 근해의 만을 운행하는 크루즈 선을 안내하는 호객꾼들이 말을 건다. 어쨌든 7박 8일의 일정으로 ‘아주 게으른 슬로우 여행을 하리라’는 마음이어서 한국에서 렌트 차량을 예약하지 않고 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s-02.jpg 슬리에마 해안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생각이 멈춰 버린다. 호텔에서 바라본 모습



몰타에서 버스로 여행하기


버스 맵을 준비한다.

대부분의 호텔에는 버스 맵이 준비가 되어있다. 한 장은 늘 보고 다니는 것으로 여분의 한 장은 가방에 보관하고 다녔다. 손에 들고 다니므로 여차해서 분실하면 당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버스맵02.jpg

발레타로 가라.

몰타의 모든 버스는 발레타에서 출발한다. 고조 섬에서는 빅토리아가 중심이다. 설령 자신의 호텔 앞으로 지나가는 버스번호가 있어도 시간을 맞추지 않는 한 발레타를 경유해서 목적지로 가는 것이 빠르다. 발레타나 엠디나, 슬리에마나 줄리앙 등 인구가 많은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한 시간에 한 대 정도로 운행을 하는 것 같다. 몰타에서는 최적화된 버스 시스템이라고 하지만 짧은 일정으로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겐 길에서 몇 시간씩 낭비하는 꼴이 된다.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놓쳤다면 그냥 발레타로 가라.


버스번호와 시간표를 확인한다.

몰타의 버스는 서너 곳을 제외하곤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텀이 길 뿐 아니라 막차의 시간도 매우 빠르다. 시간표를 보면 평일과 주말, 겨울과 여름의 시간표가 다르며 낮에 다니는 버스와 밤에 다니는 버스의 번호까지 달랐었다. 그러므로 승차할 때는 물론이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돌아갈 버스의 승차장과 시간표를 꼭 확인해야 한다. 버스 정류장의 버스번호 아래에는 시간표가 붙어있다. 대체로 시간이 맞긴 하지만 전혀 아닌 경우도 있었다. 딩글리나 블루그라토처럼 외진 곳에 가서 버스가 끊기면 택시가 많지 않은 몰타에서 지나가는 차량도 사람도 안 보이는 곳이라면 난감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딜 가든지 해질 때쯤이면 발레타로 가는 버스 안에 있으면 안심이다.


버스를 보면 달려라.

몰타에서는 현지인도 버스를 보면 달린다. 어쨌든 그 차를 놓치면 많은 시간을 기다리거나 비싼 택시를 타야 하는데 그나마 붐비는 곳이 아니면 택시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호텔에 나서는 순간 달릴 준비는 기본이다.


잔돈을 준비하라.

1주일 권 교통카드를 구입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버스를 타면서 운전기사에게 2시간용 티켓을 구입한다. 잔돈으로 구입하면 빠르기도 하지만, 급하게 버스를 타다 보면 서너 번만 버스를 이용해도 잔돈으로 주머니가 묵직해진다.

버스승차권1.jpg 21유로라고 써 있다. 버스 1주일권 카드



버스 티켓(요금은 시간이 지나면 오른다)은 1,5유로인 2시간용과 21유로인 1주일권이 있다. 2시간용을 구입할 때는 버스에 오르면서 운전기사에게 1.5유로(2016년 1월 기준 요금)를 지불하면 영수증을 주는데 2시간 동안 마음대로 탈 수 있는 티켓의 영수증은 버리지 말고 꼭 가지고 다녀야 한다. 내가 슬리에마 페리 선착장의 창구에서 구입한 1주일권 버스카드는 수도인 발레타나 줄리앙 등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이라면 버스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인포센터와 같은 창구가 있지 않을까 한다. 다니다 보면 버스 티켓을 어디에서 구입했냐고 물어오는 여행객들이 있었다. 1주일권 카드는 몰타 본 섬을 비롯한 고조 섬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2015년까지만 해도 몰타 본섬과 고조 섬의 버스는 단일화가 되어있지 않아 1주일권을 구입해도 정작 고조 섬에 가서는 사용할 수 가 없었다고 하니, 너무나 자주 바뀐다는 몰타의 버스시스템과 요금은 현실에 잘 적응하는 유연한 몰타의 몸짓일 것이다.


처음 슬리에마 페리에서 발레타로 향하는 버스를 탔을 때는 깨끗한 버스와 편안한 승차감과 중간에 잘못 내렸어도 다시 바로 탈 수 있는 자주 오는 발레타행 버스들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 차를 렌트했으면 후회할 뻔했어, 저 많은 차량들 봐, 주차장은 좁고 길은 또 얼마나 좁아!”그리고 “필요하면 가서 빌리자”라는 생각으로 왔던 나의 선택에 얼마나 박수를 보냈는지. 그날은 발레타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슬리에마 페리행 버스를 쉽게 타고 올 수 있었지만, 몰타의 버스는 내게 참을 수 없는 나른함을 준비하고 있었다.


s-07.jpg 확인하고 확인하며 쳐다봤던 버스번호, 슬리에마 페리정류장에서....


다음 날, Mdina행 버스 202번이 슬리에마에 있어서 시간표를 봤더니 한 시간에 한 번 운행을 한다. 사람에 따라 많게는 한 시간을 기다릴 수도 있는 시간이다. 한 시간 가까이 싫지 않은 햇살을 받으며 기다렸으니 202번은 내게 시간표의 중요성을 알게 해 준 노선번호이다.


삼일 째 되는 날은 블루그라토를 가기 위해 공항 행 버스인 X2를 타고 공항에서 201번 블루 그라토 행으로 갈아탔었다. 블루그라토를 가려면 발레타에 가서 71번으로 갈아타거나 공항에서 201번을 타는 방법이 있는데 선택은 잘했지만(겨울이어서인지 201번만 운행하는 것 같았다.) 공항에서 201번을 기다리는 것도 만만치가 않더라.


blue-01.jpg 블루그라토의 해식동굴에서


사일 째는 고조 섬에 들어가기 위해 슬리에마 페리에서 몰타 섬의 북쪽 항구인 처케와 항까지 가는 222번을 성공적으로 타고 무사히 고조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222번은 한 시간에 한 대 운행하는 버스, 몰타의 버스를 탈 때는 억세게 운이 좋아야 한다.

고조 섬에서도 마찬가지, 고조 섬의 수도인 빅토리아의 버스 터미널은 발레타의 버스터미널처럼 고조 섬의 모든 지역으로 갈 수가 있다. 하지만 목적지로 들어갔다가 돌아오는 버스의 시간표를 인지하지 못하면 비싸게 부르는 택시비를 감내하고 돌아와야 한다. 현지 택시기사들은 한 시간에 한 대가 운행되는 버스의 시스템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g-12.jpg 처케와항에서 고조섬과 연결시켜주는 페리


칠일 째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자연보호구역인 아인투피아로 가기 위해 슬리에마 페리에서 225번을 기다렸다. 버스정류장에 번호와 시간표는 있는데 시간이 되어도 버스가 안 온다. 그 사이 뭐가 바뀐 것인지, 혹시나 해서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맞은편 정류장에서 출발을 한다. 이 노선도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 아인투피아행(골든베이에서 위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버스는 수도인 발레타에도 있지만 그곳에 가서도 타기가 쉬운 것이 아니다. 원래 그곳을 가는 차량 노선이 귀하기 때문이다.



여행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어찌하여 나는 아름다운 몰타를 말하기전에 주저리주저리 버스이야기부터 늘어놓았는가? 생각해보면 몰타 여행에서 제일 먼저 추억되는 것은 의지와는 상관없었던 버스를 이용한 몰타에서의 슬로우 여행이었다. 중간에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칠 때는 남은 사흘은 렌트 차량을 이용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우습게도 남은 1주일 권 버스카드가 발목을 잡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