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참, 오지랖도 넓지...

# 빅토리오사와 말티즈어

by 그루


Three old cities


발레타 입구에서 가까운 Upper 바라카 가든은 발레타를 한 바퀴 돌고 난 다음에 들리게 되는 곳이다. 전망이 좋아서 멋진 뷰를 감상할 수 있는 카페도 있을 뿐 아니라 발레타의 오른쪽에 위치한 '쓰리 시티'라고 부르는 옛 도시가 다정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고, 바다를 향해서 포탄을 퍼붓던 대포들은 전쟁이 지나간 후, 이제는 그랜드 하버로 들어오는 관광객을 실은 크루즈선을 향해 환영의 축포 Cannon Salute를 쏜다. “왼쪽이 빅토리오사Vittoriosa, 오른쪽이 센글레아Senglea, 안쪽으로는 코스쿠아 Cospicua” 어퍼 바라카 가든에서 코앞에 닿을 것 같은 쓰리 시티를 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빅토리오사의 성 안젤로 요새


.

하루에도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한두 번 이상은 발레타에 오게 된다. 발레타 입구 쪽은 플로리아나 지역이고 발레타의 오른쪽은 ‘쓰리 시티’라고 부르는 1554년 기사단장 클로드 드 라 상글이 도시를 건설했다는 그의 이름을 딴 ‘센글레아’, ‘코스피쿠아’, ‘빅토리오사’가 위치한다. 버스를 타고 매일 지나다녔던 터라 기사단의 병력이 머물렀던 오랜 마을을 마음만 먹으면 슬리에마에 있는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발레타에서 버스로 약 5분에서 10분 정도 걸릴까”, 아니면 걸어서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매일 버스 맵을 보면서 다니건만 센글레아, 코스피쿠아, 빅토리오사라고 쓰여 있는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사나흘이 지나서야 버스 맵 조차도 발레타를 제외한 모든 지역 이름이 말티즈어로 되어있는 것을 알았다. '3 old cities'는 영어로 표기한 지역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여행안내 책자나 브로슈어 등에서도 옛 지역 이름이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빅토리오사의 이름은 ‘Il-Birgu’, 센글레아의 이름은 ‘L-Isla’, 코스피쿠아의 이름은 ‘ Bormla’ 였다.


비르구 성문


발레타에 두 번째 갔던 날, 발레타 터미널에서 비르구Vittoriosa를 가기 위해 4번 버스를 탔다. 발레타 근교여서 버스가 많을 것 같지만 버스 맵에 있는 번호는 오직 4번, 다행히도 터미널에 가니 두 노선이 비르구를 다니고 있다. 보기에는 걸어서 갈 정도의 거리로 만만하게 보여도 구불구불 코스피쿠아를 지나고 센글레아를 지나 약 25분 이상을 간다. 이 세 도시는 1565년 몰타 공방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비르구의 성문 가까이에는 이 곳이 몰타 공방전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여 결국은 오스만 투르크의 포격을 막아낸 곳이라는 듯 위풍당당한 전쟁박물관이 맞이한다. 이 곳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공습을 피하기 위한 지하요새가 있다고 했다. 한산하기 그지없는 박물관 뜰에는 햇살만이 가득하다.


노란색 석회암과 아랍식 발코니, 겨울에도 푸른 화분들과 비르구의 골목


1565년 몰타 공방전에서 발레타의 성 엘모 요새는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지만 이곳은 기사들과 용병, 주민들까지 힘을 합해 결국은 오스만 투르크의 포위를 풀게 한 지역으로 이 곳은 공방전 이후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 Citta Vittoriosa’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쭉쭉 뻗어있는 발레타의 골목길과는 다른, 시간의 때가 묻은 아담하고 인적 없는 옛 도시의 골목길은 참 다정하다. 찰랑이는 햇살이 가득한, 밖으로 난 창에 예쁜 화분을 걸어놓은 주인아주머니의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성 요한 기사단 최초의 공식 교회, Church of St Lawrence



빅토리오사의 빅토리 광장에는 성 로렌스의 상이 서 있고 성 로렌스 교회 Church of St Lawrence가 있는 광장을 내려가면 몰타의 대표적인 항구 그랜드 하버 마리나가 위치한다. 다른 곳보다도 더 크고 멋진 요트들이 더 많이 정박해 있다. 성 안젤로 요새까지 가는 길에는 많은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성 안젤로 요새 Fort Saint Angelo는 바다에서 바라보면 멋진 성채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그랜드 하버 Grand Harbour에 있는 몰타의 중요한 요새이다.


그랜드 하버, 멀리 안젤로 요새가 보인다.



성 요한 기사단이 수도를 임디나에 두고 있을 때에도 전략적으로 쓰리 시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 기사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생활을 했다고 한다. 요한 기사단이 처음 세운 병원도 이곳에 있으며, 알고 보면 몰타에서 성 요한 기사단의 정신이 처음 자리 잡은 곳이라고 볼 수 있는 곳이다. 몰타 공방전에 비록 승리는 했지만 지금은 멋진 위용으로 위풍당당한 성 안젤로 요새의 모습도 처참하게 부서져 무너져 내린 곳이 한두 곳이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2차 세계대전 때에도 이 곳은 현대무기의 폭격으로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었다. 얼마나 많은 몰타인들이 죽어나갔겠는가. 이 곳이 전쟁터였다니, 그때의 사진은 말없이 현대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말티즈어Maltese


유럽 연합의 일원이며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이기도 한 몰타는 그들의 언어인 말티즈어Maltese를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한다. 몰타인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을 보면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말티즈어에 관심을 기울이기가 어렵다. 하지만 버스를 타면 들려오는 안내방송을 귀 기울여 듣는 순간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않은 매우 단단한 경음이 들어가 있는 아랍어를 닮은 안내멘트가 나오면서 라틴어 표기를 닮았으나 음가는 다른, 생전 처음 보는 문자로 쓰인 안내 문자가 지나간다.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몰타에서 이들의 국어인 말티즈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빅토리오사 입구의 버스표시판, 몰타에서는 말티즈어 지명을 알아두어야 한다.


발레타의 박물관에는 기원전 4000년경의 거석 유적에서는 어떤 대륙에서도 보지 못한 단순하지만 신선하며 세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몰타는 먼 옛날부터 북으로는 시칠리아와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역사를 공유하고 살았을 것이다. 오래전 몰타는 시칠리아인과 페니키아인들이 살았던 곳이며(섬 안에 생각보다 많은 선사유적과 고대 유적은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64년부터 시작된 로마와 카르타고와의 전쟁으로 몰타의 운명은 기원전 146년, 3차 포에니 전쟁에서의 패배를 끝으로 로마의 지배하에 놓였다. 그 이후에는 지중해 정세의 흐름에 따라 비잔틴, 아랍, 시칠리아, 에스파냐 등의 세력권 안에 있었던 곳이다.



발레타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대칭형의 스파이럴문양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문자를 바탕으로 알파벳을 만들고 퍼트렸던 지금의 레바논이 고향이었던 지중해의 상인, 페니키아인을 먼 조상으로 두고 있는 몰타의 언어가 궁금했다.


말티즈어는 북아프리카와 서아시아 등에서 사용하는 셈 어가 뿌리인 아랍어, 히브리어 등이 속한 아프로 아시아 어족 Afro-Asiatic languages에 속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몰타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아시아계 언어를 사용하는 셈이다. 말티즈어의 일반적인 기본개념의 어휘는 북아프리카의 튀니지계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와 닮아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개념이나 물건, 교육 예술 등의 고상한 어휘는 근대에 와서는 영어의 영향도 받았지만, 같은 문화권인 시칠리아어에서 많이 차용되었다고 한다.


몰타의 땅과 그들의 이름 뿐 아니라 풍광과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버스를 따라 무심코 깊이 들어간 마을의 레스토랑에서 어른들이 나누는 대화는 당연 말티즈어였다. 참, 오지랖도 넓지, 이유 없이 이들이 자랑스러워지는 것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