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ilent City '임디나'와 '라밧'
몰타를 대표하는 도시 중의 도시, '임디나'를 가기 위해 슬리에마 페리 정류장에서 임디나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어제 발레타 성 요한 성당에서 만났던 한국인 부부도 슬리에마에서 묵었는지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건너온다. 인사를 하니 임디나에 갈 거란다. 여유 있어 보이는 발걸음이 그냥 보기 좋다. 언제부터인지 요즘은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배낭여행하시는 분들이 많다.
발레타로 가서 임디나 행 버스를 타는 것보다 이곳에서 직접 가는 버스를 타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계산에서 기다렸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것은 착오, 결국 한 시간을 기다려서야 202번 임디나 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던 부부는 기다리다 지쳐 발레타행 버스를 타 버린다. 나중에 임디나를 보고 나오는 길에 임디나로 들어오는 부부를 만났으니 결론은 202번 임디나행 버스를 기다려서 탄 것이 잘 한 일이었다. 그래도 그런 행운은 자주오지 않는 법, 따뜻한 햇살이 싫지 않아서였을까, 3.5유로, 가벼운 가격은 아니지만 푸드 트럭에서 파는 핫도그를 사 먹었다. 더 기다리기 위해서는 배를 채워야 하니까. 늘 바쁜 한국 사람이 이런 짓 언제 해보나, 사람들 구경하며 그냥 멍 때리고 앉아 시간을 죽이는 것도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구불구불 천천히 제 속도로 돌담을 인 마을들을 넘어가는 몰타의 길은 결코 가깝지 않다. 왕성한 빛을 받아 가로수처럼 건강하게 자란 손바닥 선인장들과 베이지색 석회암으로 쌓은 시골 돌담길을 지나치는가 하면 한 뙈기 땅이라도 농사를 짓는 밭이랑은 제주도처럼 돌담으로 경계를 표시한다. 멀리에서도 보이는 언덕 위의 성채도시, ‘Silent City’, 중요한이란 뜻의 ‘Notabile’, 오래된 도시라는 뜻의 ‘Citta Vecchia’라는 많은 명칭을 갖고 있는 임디나다.
오래된 도시 '임디나'
임디나는 아랍어의 도시를 뜻하는 medina에서 유래되었으며 말티즈어로는 L-Imdina, 보통 엠디나, 임디나라고 부르는 몰타 섬 가장 높은 중앙에 위치해 몰타의 동서남북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형이다. 이 곳은 어느 도시 보다도 중세와 바로크의 특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성채도시로 페니키아 정착민들에 의해 기원전 700년경에 Melita로 처음 건설되었으며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인들은 이 도시를 Melite라 부르기 시작했고 로마시대에는 지금의 임디나보다 훨씬 넓은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후 비잔틴 시대와 아랍 시절(870~1091)을 거쳐 중세시대부터 1530년경 Birgu(빅토리오사)가 행정상 수도 역할을 할 때까지 몰타의 수도였다.
아름다운 성문을 들어서면 진정 고요한 도시 속으로 들어간다. 관광객들이 많아도 나 홀로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여행객들마저 숨을 죽이게 만드는 도시다. 길목마다 저명한 저택과 궁전들이 처마를 맞대고 들어앉아 있지만 특별한 건축물조차도 외부의 치장을 최소한으로 줄여, 같은 색깔의 라임스톤으로 지은 건물들은, 바로크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찾아보기가 힘들다. 내 눈에는 몰타의 어느 도시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박물관도, 궁전도, 선물가게도.... 현지인들도 문과 창틀, 개성 있는 문패로 집을 찾아가지 않을까 싶다.
바로크 건축의 특징이 양식화되는 시기는 17세기 초반에서 18세기 중반이다. 대표적인 바로크 건축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로마의 성 베드로 교회로 다분히 연극적이며 과장된 연출이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이러한 바로크 건축의 특징은 정면인 파사드와 측면 등이 리듬감이 생기도록 물결치는 표현처럼 들쑥날쑥하면서 최대한 장식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몰타의 건축물들은 물론 교회까지도 외부의 장식을 최대한 자제한 모습이다. 겉모습으로 바로크 건축물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은 그나마 교회 건물뿐이다. 하지만 내부는 바로크적인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요소가 살아있도록 돔(지붕)의 둥근 형태와 중앙 집중식 구조는 빛을 통해 다이내믹하고 역동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때로는 발레타의 성 요한 성당처럼 엄청난 화려함으로 치장하기도 한다.
적막이 흐르는 아늑한 좁은 골목길의 노란색 벽을 타고 내려오는 부겐베리아 꽃 잎 햇빛에 반짝이고, 스치듯 지나가는 검정개 한 마리 데리고 지나가는 노블 시티의 말티즈 아가씨, 작고 귀여운 강아지의 대명사인 흰색 말티즈의 원래 고향이 이 곳 몰타라고 들었는데, 아직까지 말티즈 강아지를 한 마리도 못 봤다.
어느 쪽으로 들어가도 성채의 끝에는 초코 케이크로 유명한 백 십자가 깃발이 휘날리는 폰타넬라 카페가 나타난다. 임디나에 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가는 곳이다. 테라스에 앉아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달달한 케이크나 커피가 댕기지 않는데 굳이 폰타넬라 카페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성벽은 어디서라도 충분히 즐길 만큼 뷰가 훌륭하니까. 반질반질한 라임스톤의 성벽에 기대어 맑은 공기와 충만한 햇빛 아래, 음료 한 병과 내가 좋아하는 파스티찌Pastizzi가 배낭 안에 들어 있었다면 유용한 간식거리가 되었겠다.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과 생각보다 달지 않은 케이크 한 조각, 한 조각 입에 베어 무니 참새 한 마리가 냉큼 성벽에 올라앉아 기웃거린다. “반갑다. 어서 와”, 케이크 가루를 뿌려주니 서너 마리 날아와 잽싸게 물고 날아가더니 또 힐끔 거린다.
성에서 나오는 길, 들어갈 때는 안보였던 오렌지 나무가 정원으로 꾸며진 해자에 심어져 있다. 정원에 오렌지 나무를 심는 것은 이슬람식 정원의 전통이다. 이 곳에 페니키아와 로마의 영향이 남아있듯이 아랍의 생활과 문화가 남아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임디나 성 밖으로 나오니 오른쪽으로 로마시대의 주거지역의 터가 자리했던 곳으로 Domus Romanas박물관이 위치한다. 알제리와 튀니지에서 너무 많은 로마의 유적지를 본 터라 별로 감흥이 없지만 임디나에서 유일한 로마 주거 유적지라고 했다.
라밧의 St Paul's Cathedral
라밧 Rabat은 임디나가 아랍어의 ‘도시’라는 뜻의 ‘메디나’에서 온 것처럼 아랍어에서 ‘교외(성 밖)’란 뜻을 가지고 있다. 모로코의 수도가 Rabat이며 고조 섬에도 Rabat이란 지명이 있는 것은 뜻이 그대로 지명이 된 경우일 것이다.
라밧을 오른쪽으로 돌아 한 바퀴 돌고 마을로 들어가면 성 바울 교회를 중심으로 성 아카타 카타콤과 성 바울 카타콤까지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성 바울 교회는 정면이 아닌 오른쪽으로 들어갈 수 있다. 티켓을 구입하면 St. Paul Grotto와 카타콤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성 바울 교회의 오른쪽에는 국내의 여행 프로그램에 나왔던 유명한 파루칸 과자점이 있다.
몰타가 로마의 점령지였을 당시, 기원 후 60년에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가던 도중 바울을 태운 배가 난파되어 몰타에 머물게 된다. 바울의 동굴은 그를 싣고 갈 배를 기다리는 3개월 동안 생활했던 곳으로 바울은 Melite 행정관이었던, 열병과 이질에 걸린 푸블리우스 Publius(33~112) 아버지의 병을 고쳐주었고 푸블리우스는 기독교로 개종하고 존경받는 몰타 최초의 주교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라밧은 유럽에서는 드물게 사도에 의해서 전파된 초기 기독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몰타의 기독교 본산지라고 볼 수 있는 곳이다.
얼마만인가, 책장 구석에 뽀얗게 먼지가 쌓인 성경책, 사도 바울의 이야기가 있는 사도행전을 뒤져 보았다. 로마시대의 몰타 지명인 ‘멜리데 Melite’라고 정확히 나와 있다. 사도행전 27장에는 로마로 호송되어 가던 중에 바다에서 만난 태풍으로 배가 난파되고 어렵게 섬 연안으로 상륙하는 이야기와 28장에는 멜리데 섬에서 불을 피우다가 뱀을 만나 상처를 입지 않자 마을 사람들이 바울을 예사롭지 않게 생각하며, 푸블리우스의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하는 바울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St. Paul's Cathedral은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모르지만 푸블리우스의 집이 있던 곳에 지어졌으며 적어도 1090년부터는 이 자리에 존재했었다고 하며, 1693년 시실리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파괴된 이후에 1697년에서 1702년 로렌조 가빠 Lorenzo Gafa에 의해 바로크 스타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라밧의 주위를 둘러보면 완벽한 모습의, 다소 적막한 임디나와는 달리 가게마다 과일과 농산물이 넘치게 진열되어 있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얼기설기 정리되지 않은 전선줄까지, 삶의 현장처럼 보여서 좋다. 라밧을 나오는 길, 조금만 눈을 들어 바라보아도 푸른 채소와 과일들을 키우는 녹색의 밭들이 드넓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