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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사람에게서 나가고 또한 사람에게서 얻는다

# 셰키 - 키쉬마을과 알바니안교회

by 그루

아무리 더워도 여행자는 움직인다. 고대 교회가 남아있는 키쉬마을로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숙소인 캐러밴 사라이 앞에서 바자르행 11번 버스를 탔다. 이른 아침이어서인지 마슈트르카(작은 버스) 안은 이미 붐비고 있다. 더위를 피하려고 일찍 움직인 것이 러시아워에 걸렸다. 출근하는 젊은이와 나이 든 분들 사이로 아이들도 하나 둘 끼어 앉아 있는데 아홉 살이나 되었을까, 나이 든 아주머니가 올라오니 번득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볼이 발그레 지며 엄마 품으로 살짝 안긴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빼곡한 차 안의 상황에도 마치 릴레이처럼 소리없이 자리양보가 이어진다. 정류장이 나오면서 서 있던 아이도 어쩌다가 내 옆에 앉아 호감 어린 눈으로 간단한 대화를 이어갔다. 그야말로 일상의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내릴 때가 되니 간단하게 챙겨온 배낭엔 아이에게 기념될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다. 할 수 없이 지갑에 들어있던 이들에겐 전혀 필요 없는 한국 돈 1000원짜리를 주면서 기념이라고 주었더니 입이 함박만 해지며 엄마도 아이도 너무 좋아한다.


이른 아침 바자르는 분주하다. 어제 오후 체리 주스 한 잔 사서 마셨던 아주머니가 장사를 시작하려고 짐을 풀면서 반갑게 아는 척을 하신다. 벌써 셰키 동네 사람 다 되었다. 환전을 하고, 옆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키쉬마을로 향하는 버스를 찾았다.


바자르 옆에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다.


키쉬마을과 알바니안교회


카프카스 산맥의 북동부에 있었던 고대 카프카스 알바니아는 BC2세기~BC1세기에 동캅카스에서 나타난 왕국이다. 기원전 2세기의 동전부터 3세기 말까지 로마동전이 발견되었던 점으로 보아 로마와도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 사산왕조에 합병되었지만 군주권은 유지했다. 기독교는 1세기 즈음 알바니아왕국에 전파되었다고 보는데 지금의 키쉬에 있는 교회는 성 바르돌로메오의 제자인 성 엘리세우스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카프카스 알바니아 왕국은 전기 이슬람 시대에는 지금의 아제르바이잔의 땅과 거의 같았다고 한다. 이슬람이 점차 밀려옴에 따라 주민들은 이슬람화 되었으며, 남은 기독교인들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르메니아사람들과 동질화되어 갔다.



밖의 온도가 40도가 기본이니 작은 버스 안은 용광로 같다. 그래도 출발을 하면 건조한 바람이 불어와 더운 기운을 조금은 식혀준다. 앉아 있는데 손님들의 시선은 입가에는 미소를 띤 채 모두 우리 둘에게 쏟아진다. 차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일반적인 투르크인 인상과는 달리, 콧등에서 빨리 꺾어진 긴 매부리코와 역삼각으로 턱 선이 갸름하게 뻗어있다.


키쉬마을에서 내리기 위해 ‘키쉬 키쉬’ 했더니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키쉬가 아니고 취시라고 한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내려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눈짓이다. 영어로는 ‘Kish’라고 쓰지만 이들은 ‘키쉬’라고 하지 않고 ‘취시’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K가 C발음을 취한 것 같다.

버스비로 20q(1 마나트는 100q))를 내고 알바니아교회의 팻말을 따라 올라갔다. 납작한 자갈돌이 깔린 오래된 포도와 담장을 넘나드는 호두나무, 감나무, 오미자 등 나이 먹은 과실수들은 옛 마을의 정취를 더하고 산딸기는 그냥 길가에 꽃잎처럼 달려있다. 뒤 따라 올라오시면서 어디에서 왔냐면서 고개를 끄덕이시며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할머니까지, 이 곳에 오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감정은 사람에게서 나가고 또한 사람에게서 얻는 것 같다.

마을의 제일 높은 곳에 작고 아담한 교회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서 있다. 밝은 주황색의 구운 기와를 이고 있으며 좁고 긴 창문과 두꺼운 벽채는 로마네스크 건물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만큼 세월의 무게가 쌓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사랑받으며 생생하게 살아있는 교회의 뜰은 꽃들로 가득하고 보살피는 사람들의 손길이 많은지 사원 안은 깔끔하다.


이보다 더 소박할 수는 없다. 1세기에 바르돌로메오의 제자 엘리세우스에 의해 세워졌다. 최초의 교회인 키쉬 알바니아 교회
교회자리의 연혁을 말해주는 팻말, 아마 교회가 생기기 전, 토착종교의 사원터였을 가능성이 있다.
교회 가는 길, 알바니안 마을


어디로 향하는지 멋지게 차려입고 마실을 가시는 할아버지 뒤를 졸졸 좇아오다가 산딸기 더미 앞에 서서 검붉은 산딸기에 눈을 뺏겨 멋쟁이 할아버지를 놓쳐버렸다. 농익은 산딸기를 주어먹다시피 하다가 손을 들어 지나가는 마슈트르카를 잡아타고 셰키로 나오는 길, 오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디를 나가는 거여, 비빌 틈도 없이 사람들로 꽉 차있는데 땀이 소리 없이 비직비직 흘러주는 것은 기본이다.


교외용 마슈트르카라고 해서 더 노후된 차가 운영이 되는지 차의 지붕도 너무 낮다. 높이가 160Cm 정도 되어 보이는 차 안에서 서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꺾은 채로 서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 와중에도 마슈트르카가 설 때마다 아이는 어른에게 남자는 여자에게 젊은이는 나이 드신 어른께 자연스럽게 자리가 뒤바뀐다. 놀라운 것은 예닐곱 되는 남자 아이들이 먼저 의젓하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양보한다.


아제르바이잔은 지역적으로 시리아나 터키보다도 동쪽에 위치한 서아시아에 속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또는 마음으로 유럽문화권을 지향한다. 19세기와 20세기 유럽의 제국주의를 바삐 뒤쫓았던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있는 일본도 할 수 있다면 피부색은 물론 뼛속까지도 하얗게 바꾸고 싶어 했다. 종교적인 문제와 지리적인 문제로 아제르바이잔은 EU에 속하진 못하지만 2015년에는 유러피안 게임을 성공적으로 마쳤던 나라이다.

다분히 동양적인 행동양식은 종교와 오랫동안 페르시아 문화의 영역이었던 탓도 있겠지만 이 땅에 터를 잡기 전 오랜 시간 이들의 조상은 몽골, 위구르족과 함께 아시아의 초원에서 어깨를 겨루던 초원의 주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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