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셰키캐러밴 사라이

# 셰키

by 그루


대도시인 바쿠에서는 패션이나 외모에 신경을 쓴 듯한 잘생긴 남자들이 많이 보이더니 셰키로 오니까 남자들보다는 선이 가늘고 예쁜 여자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여자들의 미모는 자연스러워 더 빛을 발하며 옷차림도 세련되었다. 키쉬마을에서 셰키로 나오는 땀이 비오듯하는 좁은 버스 안에서마저도 난 이처럼 미모감상을 한다.

항아리 음식 ‘Piti’


키쉬마을에서 약 20여분 셰키의 바자르에 도착하니 태양은 밖으로 드러난 살은 모조리 익혀버릴 태세다. "아 뜨거워!" 하면서 이미 까맣게 그을은 내 다리를 쓸어내리는데 뒤따라오던 할머니 한 분이 내 짧은 반바지가 몹시 거슬린 듯 한마디 하신다. 옆에 계시던 할머니 왈~ 뚜리스뜨야~(여행객)하면서 친구 할머니의 불평을 받아 넘기신다.


이런 날씨에도 시장에는 이리도 사람이 많다니, 그래도 건조하니 그늘만 찾아들어가면 견딜 만 하다. 시장 한 가운데 ‘Piti’라고 쓰여 있는 있는 허름한 레스토랑을 기웃하니 이른 점심시간인데도 손님들이 많아서 자리가 딱 한자리 남아있다. Piti는 아제르바이잔의 전통음식인데 고기의 종류가 다를 뿐 이란이나 조지아, 아르메니아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다. 일단 둘이서 하나를 시켰다.


커다란 빵에 양고기와 헤이즐넛콩을 넣고 찐 작은 항아리가 나온다. 어떻게 먹어야 할지 멈칫거리니 일하는 청년이 순서대로 먹는 방법을 알려준다. 먼저 접시에 빵을 잘라 놓고 그 위에 국물을 부어 빵을 적신다. 국물로 적신 빵을 먹고 나면 남은 항아리의 고기와 콩을 접시에 담아 수저로 짓이겨서 마치 참치와 마요네즈를 비비듯이 걸쭉하게 만든다. 이것을 남은 빵 위에 얹어서 먹는데 더운 여름에 먹어도 좋은 단백질이 풍부한 영양식이다.

다만 ‘피티’는 기름까지 전부 먹는 것이다. 주인장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 나도 맛있게 먹었지만, 사실 기름은 참고 억지로 먹었다. 고기의 기름기를 다 제거하고 먹는 한국 사람들은 기름까지 먹는 피티를 보고 질겁할지도 모르겠다. 기름기만 제거한다면 우리나라의 갈비찜하고 거의 비슷하다.


Piti, 찢어놓은 빵에 국물을 부어 먹는다.

캐러밴사라이


캐러밴사라이에는 숙소 내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에어컨이 있을 리 없지만 선풍기도 없다. 헥헥거리며 캐러밴사라이로 돌아와도 샤워 외에는 몸을 식힐 도구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장 시원한 곳은 나무가 많은 정원도 아니요, 복도도 아니고 방문만 열면 더운 공기가 훅하고 들어오는 시각에도 동굴 같은 호텔 안이 제일 시원하다. 불타는 한 낮에는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 않고 있으니 그런대로 만사 오케이다.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국가에서 호텔로 운영하는 캐러밴 사라이는 규모가 아주 클뿐더러 가격도 저렴한데다 얼마나 잘 지어진 대상숙소인지 구석구석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없다.

원래 1층은 물건을 보관하거나 앞에서 물건을 진열하고 팔기도 하는 장소였으며 2층은 대상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층 아래로 보이는 지하실은 물건을 넣어두는 창고로 사용하였을 것이다. 지금은 1층과 2층 전부 개조해서 호텔로 사용하고 있지만 원래 숙소였던 2층에서 머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아치에 리듬감이 살아있다. 건축학적으로도 아름다운 셰키 캐러밴 사라이

어느 도시든지 외곽을 들여다보면 도시의 누추한 언저리가 보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셰키 시내를 돌아다녀보면 오랫동안 부를 유지했던 도시의 면모가 느껴진다.


시장 구경을 하다가 피티에도 들어가고 각종 요리에 많이 들어가는 헤이즐넛콩을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헤이즐넛은 거리를 지나다 보면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개암나무 열매이다. 한국에서는 귀한 장미차와 카모마일차 몇 개를 구입했다. 평소 여행 중에 구입하는 것을 꺼리지만 여행의 막바지에는 원했던 것을 사지 못해 늘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가곤 했다. 차는 가벼우니까, 하지만 부서지지 않도록 여행 내내 가지고 다녀야 한다. 장미향이 봉투 안에 가득하다.

내 머리통 만한 노란 하미과 한 덩이를 사들고 마슈트르카를 타고 캐러밴 사라이를 돌아왔다. 아침에 해만 올라가면 40도에서 50도 가까이 가는 이런 더위를 겪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여행하기에 힘든 것은 사실이다. 서늘한 느낌은 해가 뜨기 전 새벽에도, 해가 진 저녁에도 느끼지 못한다. 오직 에어컨이 작동하는 실내외에는.

7월 말의 서울에서는 스팀 속에 살고 있다고도 하고, 뜨거운 늪 속에 있는 것 같다고도 하는 한탄이 SNS로 여기까지 들려온다. 그래도 습도가 높은 서울보다 이곳이 나은 것인가.

카프카스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헤이즐넛
장미차와 카모마일차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