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섬 - 통영 사량도
“사량도 지리산이 좀 힘들긴 하지!, 하지만 우회도로가 있어”
늘 등산 초보라고 생각하는 내게, 산을 좀 타 본 사람들은 사량도를 언급하면서 마지막에 꼭 덧붙였다.
들리는 말로는 사람이 많을 때는 사량도 지리산 등반을 위해 하루에 5,000명까지도 입도한다고 한다. 삼천포와 고성 용암포, 통영 가오치항 등에서 수시로 떠나기 때문에 가능한 숫자다.
가오치항에서 출발하는 첫 배인 7시 배를 타려고 달렸지만, 시간에 여유가 있어 삼천포에 들렀다. 5시가 조금 지난 어두운 새벽 어시장은 하루를 준비하는 상인들로 분주하다. 좁은 시장길은 사람들 틈으로 차 한 대가 진입하기가 힘들다. 그냥 가오치항으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했지만 좁은 길에 차를 뒤로 돌리기도 힘들다. 가까스로 근처에 문을 연 백반집을 찾아들었다. 맛이야 있든 없든 미역국에 밥을 후루룩 말아먹고 선착장을 찾아 나섰다. 선착장은 어시장 끝에 걸려있다. 여차하면 삼천포에서 사량도행 배를 탈 생각이 있었지만 도착하는 항구가 사량도 금평항이 아니라 내지항이다. 매표소도 문을 열지 않았는데, 선장은 일단 타라고 한다. 주로 산악회 단체 손님들이 이용하는 동선 같았다.
뭔가 꼬일 것 같으면 계획대로 되돌리면 된다. 시간을 보니 7시까지 가오치항에 도착하기에는 빠듯하다. 다음 배를 타더라도 생각한 루트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달리고 달려 간신히 가오치항에서 7시 배를 타고 40분 후 사량도 상도 금평항에 도착했다. 삼천포로 빠졌다가, 꼬인 것이 풀어지는 순간이다. 배에서 내리니 섬을 순환하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버스는 혼자이거나 삼삼오오, 지리산 등반을 위해 입도한 사람들이 제법 차면 출발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돈지마을과 수우도 전망대, 그리고 내지 마을에서 내려 등반을 시작한다. 등산을 하면서 보니 목적지와 가까운 대항마을과 옥동마을에서도 등산객들이 올라온다. 사통팔달 들머리, 날머리가 많다. 심지어는 금평항에서 옥녀봉과 출렁다리만 보고 내려가는 분들도 많았다.
수우도 전망대 정류장에서 내렸다. 들머리부터 숲으로 이루어진 오르막길이다. 지리산에서 드문 흙길은 삼거리까지 이어지는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랐는지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뿌연 흙먼지가 일어난다. 숲에는 5월에 피는 보랏빛 골무꽃이 시선을 붙잡는다. 15분가량 오르니 흙길은 사라지고 시야가 확 트인다. 이때부터 용암이 흘러내린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암릉지대가 시작된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데 진행하다 암릉이 길을 막고 있다면 우회도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대체로 가로막힌 암릉을 올라야 길이 나온다.
오른쪽 바다를 굽어보면 아늑한 돈지마을이, 돌아온 길을 돌아보면 수우도와 작은 섬 농가도가 떠 있다.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 더없이 고요한 우리의 남쪽 바다는 호수에 다름 아니다.
능선은 각오를 하고 오르지만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사납다. 그렇다고 사납기만 한가, 빼어난 풍광은 절로 멈추게 만든다. 수우도가 보이는 주상절리 풍경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한 시간 반 가량 오르니 거친 응회암 바위로 이루어진 지리산(397.8m) 정상이다. 30여 분 더 진행하니 밭 한 뙈기도 없을 것 같은 사량도에서 제법 많은 밭농사를 짓고 있는 왼쪽의 내지 마을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내지 마을 쪽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내지 마을 쪽에서 올라오면 등산 시간이 한두 시간은 족히 단축될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온다고 해도 시원하게 펼쳐진 수우도를 배경으로 한 빼어난 지리산 주상절리를 볼 수가 없으니 사절이다.
옥녀봉까지 2.3km 남았다는 이정표까지 서너 번의 휴식 시간을 포함하여 약 2시간 30분 걸렸다. 이정표를 뒤로 하고 불모산을 향해 가는 길, 잠시 나타난 흙길이 반갑다. 불모산으로 가는 붉은 계단을 오르면 칼바위 능선이 나타난다. 위험하기로 유명한 사량도 지리산의 명물이지만 안전대가 있으니 조심만 하면 된다. 이런 위험한 능선길은 우리나라의 섬 산행에서 의외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같은 배로 들어온 앞에서 가던 네 명의 여자 산꾼들이 길을 막고 서 있다. 심지어는 달바위 정상에서 서로 번 갈아가며 뛰는 사진까지 찍는다. 한 번도 아니고 오케이 할 때까지. 나는 칼바위 능선보다 지나친 퍼포먼스를 깔깔거리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하는 저분들이 더 무섭다. 그분들이 앞으로 진행하기를 15분 이상 기다렸지만, 달바위(400m) 정상에서 사진 찍는 것은 포기하고 그냥 지나쳤다.
달바위를 통과하면 왼쪽 아래로 예쁜 대항 해수욕장이 초승달처럼 보이고 앞으로는 가마봉에서 옥녀봉까지 이어진 능선은 긴장을 유발한다. 가마봉(303m)은 사람 머리의 가마를 의미하나 보다. 가마봉까지 약 4시간이 걸렸다. 대여섯 번의 휴식 시간 포함이다. 많이도 쉬었다. 힘든 코스 중의 하나라고 하는 가마봉 철계단을 내려오며 옥녀봉 쪽을 바라보니 아직도 고생길이 첩첩이다.
갑자기 아침에 급하게 2시 배로 나가는 왕복 티켓을 구입한 것이 슬금슬금 걱정이 된다. 섬에 들어올 때는 편도 티켓만 구입해야 하는 것을, 괜히 분주한 사량도의 명성에 왕복표를 끊었다. 가마봉에서 출렁다리가 걸려있는 향봉과 연지봉을 바라보니 2시 배를 탈 수 있는 자신감이 떨어진다. 뒤에 보이는 옥녀봉은 한참이나 더 가야 한다.
속도를 내어 두 개의 출렁다리를 지나 옥녀봉(281m)에 올랐다. 옥녀봉 정상은 새로 만들었다는 정상석 외에 다른 암봉들에 비해 초라하다. 아버지와 딸의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해 옥녀봉에 올라 깎아지른 절벽에 몸을 날려 생을 다한 옥녀의 이야기는 믿고 싶지 않은, 듣기에도 민망한 이야기지만 과장하거나 왜곡하거나 묻히지 않은 채 사라지지 않고 전해 내려온 것만으로도 사회적으로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금평항에서 올라온 분들이 옥녀봉이나 출렁다리만 보고 내려가기도 하는지 꽤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올라오는 분께 “올라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어요?” 하고 물으니 한 시간이라고 말씀하신다. 듣자마자 고맙다는 말을 뒤로하고 쌩 하고 달려 내려왔다. 빨리 가기에는 버거운 너덜 길이 이어지는데 마음이 바쁘니 길이 끝이 없다. 고맙게도 차가 다니는 임도에서 사량도 주민의 차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사량도 지리산 산행은 수우도 전망대 앞 들머리에서 시작해서 능선을 오르내리며 지리산과 불모산 달바위, 가마봉, 옥녀봉에서 금평항으로 내려왔다. 약 6km~7km 거리로 소요된 시간은 약 5시간이다. 1시간 이상의 휴식 시간을 포함했다.
사량도 지리산의 기반암은 응회암이다. 용암이 바람이 세게 부는 날 흘러내려 굳어버린 것처럼 날카로운 느낌의 거칠고 밝은 회색 응회암이 첫인상이었다. 그 날카로운 첫인상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줄곧 능선은 매우 거칠며 불친절했다. 그러나 빼어난 산세는 아름다운 바다와 더불어 어느 한 곳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이처럼 사량도 지리산 산행은 어느 곳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다이내믹하며 아름답다. 특히 수우도 전망대 들머리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진 능선에서 볼 수 있는 주상절리와 어우러진 바다 풍경은 다녀온 후에도 자꾸 생각날 만큼 인상적이었다. 사량도 지리산에서 가장 힘든 코스로는 달바위 능선과 가마봉에서 내려오는 수직에 가까운 계단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알려진 두 곳만 힘든 것이 아니라 시작부터 끝까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금평항에 닿으니 출발시간까지는 30분의 여유가 있다. 편의점 의자에 앉으니 그제야 사량도 마을 풍경이 들어온다. 바다 가까이 떠 있는 섬들과 점점이 다니는 배들만 없다면 선착장이 있는 금평마을은 깔끔한 어느 소도시나 시골 읍내 풍경이다.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바쁜 편의점은 서울에 있는 편의점에 뒤지지 않는다. 아쉬워서 마을 안쪽 골목길을 흘깃거렸다. 마을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곧 배를 타고 사량도를 떠나야 한다.
섬에 들어오면 언제나 그 섬에서 산을 오르고, 섬사람들이 먹는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동네를 구경하고, 바다로 난 길을 걸어 다녔다. 하루나 이틀 그 섬에서 머무는 시간은 내 마음에 섬이 스며드는 과정이었다. 어쩌면 섬에서 산은 육신이요. 바다는 그 섬의 영혼이다.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곳에 다시 와서 발바닥이 아프도록 섬의 자드락길을 걸어봐야 한다. 초승달처럼 생긴 대항 해수욕장에서 닳고 닳아 석회 성분만 남아있는 하얀 조개껍데기를 주어야 한다. 지리산 능선을 오르며 두미도와 수우도를 마음에 품었다. 그때쯤이면 수우도를 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