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페르시아 01화

황량하거나 따뜻하거나, 누렇거나 붉거나​

# 이란 - 아비여네

by 그루

밤 10시 20분경 베이징에서 출발한 테헤란행 비행기는 밤하늘을 날아 이란의 새벽녘 테헤란 Emam khomeini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 안내 방송이 나오자마자 엉덩이를 가려주는 짧은 원피스에 발목까지 오는 헐렁한 레깅스를 입고 있던 나는 준비했던 긴 스카프인 루사리를 머리에 둘러쌌다. 아리안족의 땅인 이란에 입국할 수 있는 옷차림이 되었다.

5시도 안 된 새벽이었지만 내가 입고 있는 차림새가 맞는지 관찰하는데, 공항에서 만난 여인네들은 부지런도 하지 진한 화장에 퍽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좀 젊어 보이는 여성들은 루사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머리 뒷부분을 살짝 기이해 보일 정도로 볼록하게 부풀렸다. 처음엔 순전히 유치한 멋을 낸 줄 알았는데 20여 일 이상 루사리를 하고 돌아다녀 보니, 흘러내리는 루사리 때문에 뒷머리를 볼록하게 하고 다니는 거였다.


한 번은 테헤란 국립박물관에서 나오는데 멀리서 이란인 한 분이 자꾸 내게 인상을 쓰는 듯한 표정으로 손짓을 한다. 머리에 쓴 루사리가 아예 흘러내렸는데 그것도 모르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외국인일지라도 머리에 걸치기만 한 루사리나 7부나 8부 정도의 짧은 바지 등 이들의 규범에 거슬리는 모양새를 하고 다니면 간혹 종교 경찰 단속에 걸려 경찰서에 가서 각서를 쓰고 나오기도 한다.


이맘 호메이니의 도시 ‘콤Qom’


공항에서 비상시에 사용할 돈을 리얄로 환전했다.(공항은 환전이 아주 박하다) 가이드를 해줄 이란 청년 ‘메티’를 만났다. 그는 현재 쉬라즈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카펫으로 유명한 도시 카샨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시아파의 중요한 순례지인 종교도시 Qom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테헤란에서 남쪽으로 잘 뻗은 길을 따라 147Km, 카비르 사막 옆에 위치한 도시 Qom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경인데 벌써 강한 햇살에 눈이 찌푸려진다.


하자라테 마수메흐 모스크 주차장 옆에는 큰 규모의 버스터미널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시내 한 복판에, 그것도 성지인 하자라테 마수메흐 모스크 바로 앞에 버스터미널을 만들다니 얼마나 많은 이란인들이 이곳을 오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쪽에 차를 세우고 파티마성소가 있는 Qom의 상징인 하자라테 마수메흐 Hazrat-e Masumeh모스크로 걸어가는 길, 멀리서도 대형 이맘 호메이니와 현재의 종교지도자 하메네이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곳은 시아 이슬람의 지도자인 ‘물라 Mullah’-물라의 머리엔 흰색 또는 검은색의 터번을 두르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두루마기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음-를 양성하는 신학교가 있는 곳으로 아야툴라 호메이니와 현재 이란의 최고 종교지도자인 하메네이도 모두 이곳에서 신학 수업을 받았다.


거리는 쓸고 닦은 것처럼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다. 도시에 돌아다니는 여인들의 모습은 온통 검은색 차도르를 입고 있다.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정신이 번쩍 난다. 처음 본 검정 차도르의 행렬은 본능적으로 긴장을 하고 경계를 하게 만드는 실루엣이다. 그래서인지 콤은 생각보다 어두운 종교 도시로 보였다.

모스크는 남녀가 들어가는 입구가 다르다. 카메라는 맡기고 들어가지만 처음 경험하는 발끝까지 덮는 차도르는 모자에 선글라스에 소지품까지 챙겨야 하는 나로서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목소리도 내지 않는 신실한 검은 차도르여인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가는데 묘하게 남자들과는 만날 수 없는 경로로 간다.


오른쪽은 남자만 입장하는 문, 왼쪽에 검은 색 차도르의 여인 그림은 여자들이 들어가는 곳이다.


황금으로 칠해진 돔과 minaret(뾰족탑),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화려한 유리를 이용한 실내장식은 내가 본 실내장식 중 가장 화려했다. 나중에 쉬라즈에서 본 샤헤체라그의 실내장식보다는 못하지만 처음 만난 Hazrat-e Masumeh모스크의 장식은 인도나 중앙아시아에 널리 퍼진 유리를 이용한 실내장식의 원형을 보는 듯했다.

인도해 주는 대로 모스크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고 화장실을 가니 여인들은 입구에 차도르를 벗어놓고 일을 보러 들어간다. 그러면 그렇지, 하지만 차도르가 한 짐이다. 볼일을 보고 나와 차도르를 다시 입는 것도 일인데 너도나도 친절하게 입혀준다. 화장실이 깨끗해서 다행이다.


이란 시아파에는 12 이맘이 존재한다. 하지만 12 이맘의 무덤은 호라산 주의 주도 마슈하드 Mashhad에 있는 8대 이맘의 무덤을 제외하고는 이라크에 존재한다. 당시에는 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Qom의 파티마성소8대 이맘 레자의 누이동생 파티마의 무덤에 17세기 시아왕조인 사파비왕조의 통치자들이 황금지붕을 씌운 뒤 이란 시아파의 순례지가 되었다.


게다가 콤은 이맘 호메이니가 태어난 고향이고 1979년 이슬람혁명 후 이맘 호메이니의 거처가 있었던 곳이다. 콤이 마슈하드에 버금가는 종교도시인 이유다. 이란 최고의 이슬람 신학교가 있는 콤은 이맘 호메이니의 도시인만큼 이란의 중요한 도시인 테헤란, 야즈드, 카샨 등 주요 도시와 사통팔달 연결되어 있으며 석유산업과 농업 등 이란을 대표하는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아비여네 Abyaneh


아비여네


카샨에서 82km, 1시간 30분 정도 달렸나 보다, 황량한 벌판과 잡초만이 뻣뻣하게 나 있는 사막과도 같은 길에서 벗어날 즈음 몽글몽글한 꿈속에서나 본 듯한 붉은빛 진흙 마을이 눈을 사로잡고 발길을 끌어 드린다. 2006년 당시에는 160 가족 약 305명이 거주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갈수록 시골인구가 줄어드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건조한 지역의 중동이나 중앙아시아의 마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한 집의 지붕이 다른 사람의 집이나 마당이 되는 구조로 위로 갈수록 다른 사람의 집을 지을 수 있다. 이곳에는 위로 4단까지 지어진 집이 있다.

마을은 여지없이 콸콸 물이 쏟아지듯이 흐르는 물길이 지나간다. 동네 뒤에는 칼카스산 Karkas (3899m)이 바로 뛰어 오를 수 있는 마을의 뒷동산처럼 가까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마을의 입구 한 편에는 가족단위의 사람들로 화기애애하다. 수박이 둥둥 떠다니는 수로에 발을 담그고 노는 아이들, 요리를 하는 사람들과 둥글게 앉아서 늦은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누구든지 지나가는 길손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밥과 차를 대접하고 싶어 다가선다.


테헤란에서 왔다는 아이들, 물놀이를 즐긴다.


이들이 외국인과 대부분 대화가 가능한 것이 내심 놀라웠다. 영어를 잘한다고 했더니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단다. 1979년 이슬람 공화국이 탄생한 이 후 우리가 알고 있는 폐쇄된 사회가 아니었다.


마을에는 콕콕 찍은 문양이 들어간 넓적하고 얄팍한 빵을 굽는다. 눈만 마주치면 여지없이 건네주는 따끈따끈한 빵 한 판은 지나치는 여행자들에겐 기가 막힌 간식거리다.


마을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남자는 통이 넓은 어두운 색(검정) 바지를 입고 있으며 여인들은 검은색 차도르가 아닌 흰색 바탕에 다양한 꽃무늬가 있는 천을 두르는데 그 아래에는 무릎 아래까지 오는 부푼 치마를 입고 있다. 이란인들이 대부분인 관광객들에게 전통복장을 입은 주민들은 기꺼이 사례도 받지 않고 같이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다.

이들이 사용하는 페르시안 방언과 관습, 옷차림은 멀리 로마와 힘을 겨뤘던 시기의 조로아스터교가 국교였던 사산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이곳에는 조로아스터교제단이 남아 있는데 이란에 얼마 남지 않은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이 이 마을에 산다.


전통복장을 입고 있는 아비여네 엄마와 아이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황량하거나 따뜻하거나, 누렇거나 붉거나


흙에 철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는 진하고 주황빛보다 진한 붉은 갈색의 흙집들을 눈을 가늘게 뜨고 보고 있으면 영락없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에 나오는 마을의 모습이다.(아비여네는 영화의 배경과는 관련이 없다.)


영화는 쿠르드족 마을로 100세가 넘은 노인을 취재하러 가는 기자의 시간을 따라가는 일종의 로드무비인데 영화에 나오는 마을도 아비여네처럼 지붕 위에 다른 이의 집이 있는 전형적인 페르시안 시골마을이다. 영화를 공부할 때 키아로스타미 Abbas Kiarostami의 영화에 매료되어 그의 영화를 찾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의 영화는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척박한 이란 고원을 사랑스러운 고향으로 진솔하게 그려낸다. 그의 리얼리즘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처럼 사회적 부조리나 날카로운 비판을 나타내지 않으며 프랑스의 시네마 베리떼처럼 기록 형식에 치우 지지 않은 다큐와 픽션을 부드럽게 넘나드는, 조금만 눈을 돌리면 찾을 수 있는 황량하거나 따뜻하거나, 누렇거나 붉거나 한 이란의 시골마을을 닮은 따뜻하고 특별한 리얼리즘이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는 이란의 구불구불한 길이 많이 등장하는 코케라는 마을을 중심으로 표현되는 코케 3부작으로 부른다. 영화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던 사람이라면 이 중 하나쯤은 봤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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