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페르시아 02화

청화백자의 고향, 카샨

# 카샨의 전통 가옥

by 그루


오전 10시 정도 되었을까, 카샨 Kashan에 들어오니 주황빛 점토로 지은 집들 때문인지 초입부터 밝은 도시의 향기가 난다. 카샨은 상인들이 사막을 통과하다가 쉬어가는 오아시스도시로 발달했다. 어도비스타일의 집들과 길가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뽕나무열매들과 그 옆을 흐르는 물길, 금요일인 오늘은 이들에게는 안식일이어서 거리는 인근에서 소풍 나온 인파로 넘친다.


호텔에 잠깐 여장을 풀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호텔 앞의 수로를 따라서 올라가면서 보니 가로수가 뽕나무이다. 동네 아저씨와 아이들 아주머니까지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나와 주렁주렁 매달린 뽕나무열매를 나무아래 카펫을 깔아놓고 아예 털고 있다. 구경하고 있으니 딴 것을 내 손에 담아준다. 하지만 이걸로는 부족하지, 걸어가면서 달달한 오디 따 먹는 재미에 이란이 선뜻 가까워졌다.


길을 타고 올라가던 물길은 집들이 있는 옆 골목길로 가지를 쳐서 흘러들어 간다. 아무리 그래도 도심을 흐르는 물길이 이렇게 깨끗할 수가 있을까, 한데 레스토랑을 찾으러 올라갈수록 차와 사람만 더 복잡하다. 알고 보니 카샨에 오면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핀 가든’까지 와 버렸다. 매표소에는 줄이 말도 못 하게 길고 북적거리는 모습만 보고 발길을 돌렸다. 어차피 들어가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최고봉이 3,895 미터의 높이를 가진 카르카스 Karkas 산맥은 이란의 북서부에서 남동쪽 중앙을 가로지른다. 산맥은 카샨에서 아르데스탄까지 100킬로미터 이상 뻗어있다. 카르카스 고봉의 눈 녹은 물은 서서히 땅 속을 흘러 카샨에서 올라온다. 천혜의 오아시스 도시인 카샨Kashan은 수 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그러므로 오래전부터 이곳에는 돈이 모였으며 예술과 문화가 꽃을 피웠다. 그중에서도 도자기는 카샨의 상징이다.

도자기의 역사에서 중국 도자기는 19세기까지 전 세계 권력자들과 장인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동서양의 권력자들은 비싼 돈을 들여 중국의 그릇을 수입했으며 중국의 도자기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란도 그중의 한 나라였다. 특히 사파비 왕조(1501~1736)의 아바스 Abbas(재위 1588~1629) 시대에 중국 도자기는 아바스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인도양과 페르시아만을 통해 들어왔거나, 실크로드의 대상들이 가져온 얇고 단단하며 우아한 중국 도자기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역사 이래 카샨은 전통적인 도자기의 도시였다. 카샨의 부유한 도공들에 의해 수없이 많은 실험이 이루어졌다. 환경이 다른 곳에서 비슷한 도자기를 만들 수는 없었지만 특별한 품질과 외형이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탄생했다. 12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카샨은 금속처럼 반짝이는 러스터 도자기에나멜 도자기로 더욱 명성을 높였다. 카샨의 도공 가문은 매우 부유했다. 그들 가운데 서명을 남긴 도공은 17명에 달하며 아부 타히르 가문과 알 후사인 가문은 대를 이은 도공 가문으로 유명하다. 유명한 도공 중에는 무하마드의 손자 알 하산의 자손인 ‘샴스 알 딘 사이드’도 있었다. 그는 예언자 무하마드의 직계자손이다.


페르시아에서 타일은 ‘카시’라고 말한다. 혹자는 도시의 이름 카샨에서 타일(카시)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하지만, 카시(타일)와 도시의 이름 카샨은 어떤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공존한다.


우리나라가 고려자기를 생산해서 중국을 통해서 다른 나라에 명성을 떨칠 즈음 카샨에서는 알칼리성 유약을 바른 도자기 위에 다시 그림을 그려 넣는 러스터도자기와 미나이(에나멜) 도자기 등 여러 종류의 도자기를 생산했다.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잠시 멈추었지만 안정이 되면서 이란과 중국(원나라)의 무역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중국 원대에는 코발트에서 추출한 암청색으로 백자에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청화백자의 재료로 쓰이는 코발트를 제련한 안료카샨에서 생산하여 중국으로 수출한 것이다. 원나라와 명나라의 청화백자는 아시아와 중앙아시아는 물론 유럽까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너무나 인기가 많은 나머지 전 세계는 중국의 청화백자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카샨에서도 아라베스크 문양을 넣은 훌륭한 청화백자 사발들이 생산되었다.

명나라가 카샨에서 수입한 회회청이라 부르는 유약을 우리 또한 수입해서 발전시킨 도자기가 조선의 청화백자이다. 그렇다면 카샨은 우리 청화백자의 고향인 것이다.


백자_청화매죽문_항아리.jpg 조선 청화백자 15세기 중반, 국가보물번호 219/en.wikipedia.org
Dish,_Iran,_13th_century_AD,_fritware_underglaze_painted_with_lustre_and_blue_-_Aga_Khan_Museum_-_Toronto,_Canada_-_DSC06682.jpg Lusterware, Persia, 13th century/ en.wikipedia.org


카샨의 전통가옥


타바타베이 Tabatabei가옥을 비롯한 보루제디Borujerdi, 압바신 Abbasian가옥, 아멜리 Ameriha가옥 등 카샨을 대표하는 4개의 전통가옥과 Sultan Mir Ahmad하맘은 압사돌 러허Asadol Lah에 위치한다. 전통가옥과 가까운 곳에는 오래된 성벽까지 위치하여 한 나절이면 여유 있게 돌아볼 수 있다.


타바타베이Tabatabei가옥술탄 아미르 이맘 저데 사원 바로 옆 오른쪽으로 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생각보다 작고 소박한 대문이 보인다. 카자르 왕조 시절 카펫을 팔아 거상이 된 타바타베이의 집이다. 1880년경 지어진 가옥은 대문을 열고 아름다운 Kucheh 아래를 통과해 들어가면 훤한 직사각형의 정원이 나타난다. 한 눈에 봐도 왕궁을 축소해 놓은 듯한 양식으로 중앙 홀을 중심으로 연못과 분수가 페르시아 전통적인 정원 양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건축의 외벽은 밝은 회벽에 아름다운 식물 문양들이, 벽에 회반죽을 바르고 문양을 새기는 방법인 Stucco방식으로 기품 있게 표현되어있다.


4세기에서 5세기경 파키스탄의 탁실라에는 석회나 모래 등을 개어서 굳힌 Stucco방식으로 만든 간다라 소조불상들이 나타난다. 이후 골재나 분말 등을 물을 섞어 벽면에 바르는 미장재료로 굳힌 스투코는 건물의 방화성 및 내구성과 장식성을 높이는데 많이 사용되는 건축 재료로 발달하였다.


페르시아식 정원이 있는 타바타베이 가옥 메인 홀, 지붕 뒤로 바드기르(천연 에어컨디셔너)가 보인다
손님이 거주하는 공간에는 작은 뜰이 있다/메인 홀의 우아한 스투코 장식


타바타베이가옥은 대지 1430여 평에 40개의 방을 가지고 있다. 중앙의 정원과는 별도로 3개의 공간이 있는데 정문에서 가장 가까운 쪽은 손님을 위한 공간이며, 그 다음 안쪽 공간은 주인 가족이 거처하고, 맨 안쪽은 하인들이 거처하는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공간으로 들어서면 작은 정원을 둘러싼 안채가 스투코형식의 담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하늘이 오려놓은 것처럼 둥그렇게 뚫려있다. 둥근 하늘이 집안으로 들어와 있다.


타바타베이가옥의 우아한 Kucheh 아래로 이란의 소녀들이 지나간다.


보루제디Borujerdi, 아멜리Ameriha, 압바신Abbasian가옥


하산 보루제디 Borujerdi가옥은 한 눈에 보기에도 섬세하고 우아하다. 타바타베이 가옥처럼 어느 구역이든지 하늘이 집안으로 들어와 있다.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건축에서 빛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놀랍다. 1857 년 건축가 Ustad Ali Maryam에 의해 18년에 걸쳐 지어졌다. 화가 Mirza Mohammad에 의해 벽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보루제디Borujerdi가옥, 가운데 솟아 있는 것은 바람탑(에어컨디셔너)
보루제디Borujerdi가옥 메인 홀 안쪽의 인테리어

아멜리Ameriha가옥은 당시 카샨의 행정 책임자인 아멜리Ameri에 의해 지어진 집으로 이들 중 가장 섬세하고 아름답다. 다른 가옥들과는 다른, 길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방문했을 당시에는 전통호텔로 이용하기 위해 대대적인 수리를 하고 있었다. 섬세하고 아름답다던 모습은 어디 가고 문에서 바라 본 아멜리가옥은 중년의 성숙한 여인 같은 다른 가옥들과는 달리, 속옷만 입은 채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기 위해 치수를 재고 있는 갓 결혼한 여인처럼 어색하고 생소하다. 사각형의 뜰을 감싼 벽은 밝은 회벽색의 미장도, 아름다운 스투코도 보이질 않는다.


DSC00476-01.jpg
DSC00477-01.jpg
아멜리Ameriha가옥 입구와 공사중인 모습
압바신가옥의 간결하면서도 우아한 스테인드글라스
DSC00482.JPG
DSC00483-01.jpg
압바신가옥의 세련된 문양/압바신 가옥의 낡은 2층, 키가 다른 바드기르가 보인다.


압바신 Abbasian가옥은 2층으로 되어 있다. 다른 가옥에 비해 규모가 크고 짜임새가 있는 구조로 장식은 단순하고 간결하다. 2층은 많이 낡아있었는데, 그곳이 마음에 들어 키가 다른 바드기르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앉아있었다.

지하에 전통 레스토랑이 있어 이란에 들어와 이틀 만에 제대로 된 이란 전통음식을 기대하면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지하에도 도랑이 있어 물이 흐른다. 돼지고기를 제외한 육류는 어디에나 있고, 허브는 샐러드처럼 옆 접시에 나오거나 곁들여서 나오기도 한다. 밥은 전통적인 빵과 함께 먹는 주식으로 밥 위에 노란 샤프란을 뿌린다.


Saffron은 붓꽃과에 속하는 다년생 식물로 암술머리를 말려 음식에 향이나 색을 내는데 사용한다. 네로 황제가 로마에 들어갈 때 길에 뿌렸다는 샤프란은 예나 지금이나 무게로 계산하면 금보다 더 비싼 향신료로, 예전에는 왕족의 복장을 염색하는데 사용하는 귀한 염료였다.


Abbasian가옥 지하의 레스토랑에서


Old city wall


밥을 먹고 나오는 길, 타박타박 걸어가는 길, Old city wall까지는 금방이다. 두꺼운 흙벽돌로 만들어서 매끄럽게 마감한 어도비스타일의 성벽 안 쪽에 들보처럼 꽂혀있는 나무가 눈에 보인다. 이 곳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도시의 들고나는 관문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성벽 안 쪽으로 얼음창고로 사용했을 것 같은 고깔 모양의 깊은 동굴이 폐허처럼 말이 없다.

DSC00486.JPG
카샨의 성벽과 오른쪽의 얼음창고


도시의 성벽은 그 도시의 성격을 말해준다. 이 정도나마 성벽의 유해가 남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감상에 젖어 걷다가 흥건하게 물이 고여 있는 곳에서 발이 빠져버렸다.


진흙으로 엉망이 된 신발과 발을 씻기 위해 사람들을 찾았다. 주택의 문이라도 빠끔 열려있으면 좋으련만 내가 필요해서 이란인들과 눈을 마주치려 하니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한 낮의 이란의 도시들은 잠들어 있다. 적막한 골목길에 접어들어 한 집의 문을 살짝 밀어보니 열린다. 한 여인이 호스로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들어가서 진흙이 묻은 발을 보여주면서 몸짓으로 씻고 싶다고 했더니 웃으면서 잠깐 기다리란다. 조금 있다가 한 남자와 같이 오는데 자신의 남편이란다. 여자는 집안에 다른 사람을 들이는 것을 남편에게 허락을 받으러 간 것이다. 남자는 흔쾌히 갈아 신을 슬리퍼를 갖다 주며 물을 쓰라고 한다. 부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우리도 따라 웃는다.

우연히 만난 네 사람의 만남이지만 그 순간은 사유도, 이성도, 철학도 접근하지 못하는 우주가 있다.

17세기의 카샨, 성벽과 얼음창고가 보인다. Jean Chardin/en.wikipedia.or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