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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Medeia의 분노

# 바투미 - 사랑의 또 다른 검은 얼굴

by 그루


조지아의 제일 북쪽인 서북쪽에서 제일 남쪽인 서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바투미로 가는 길은 역시 멀다. 메스티아의 깊은 계곡을 빠져 나오는 시간만 해도 3시간이 넘는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는 법, 흑해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도심으로 접어드니 조지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차량의 물결이 넘친다. 현대적인 항구도시의 세속적인 면모를 오랜만에 보는지라 정신이 아찔한데 메데이아가 황금 양털을 들고 있는 동상이 서 있다. 아~ 메데이아의 고향 콜키스 왕국에 들어온 것이다.

바투미 시내 메데이아 동상/ 황금양털을 가지고 있다.


고대 조지아, 콜키스 Kolkhis 왕국


그리스 신화에서 이아손이 등장하는 아르고 원정대는 동방의 콜키스로 황금 양털을 찾으러 떠난다. 기원전부터 존재한 콜키스 왕국은 고대 조지아의 첫 번째 나라이다.

15세기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1394~1460)가 대항해의 포문을 열고 아프리카를 식민화하면서 시작된 서방의 탐욕스러운 침략은 유럽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대륙을 500년 이상 유린하였다. 식민지의 피로 그들은 살이 찌고 윤택해졌다. 그리스인들의 동방원정에 해당하는 아르고 원정대를 마냥 낭만적인 시각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이미 오래전에 어린시절을 잃었기 때문이다.


당시로는 원시적인 배를 가지고 사납기로 유명했던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흑해로 들어가는 것은 그만큼 생명을 건 모험이었다. 이아손이 이끄는 아르고 원정대는 알만 한 그리스의 영웅들이 참여했던 이야기다. 야욕을 신화로 포장한 동방침략의 시작이었다. 마치 술 한잔 마실 엽전 한 냥 조차 없는, 장남이 되지 못한 유럽 봉건시대의 차남과 서자들이 황금의 땅 동방에 가면 얻을 수 있다는 일확천금에 눈이 어두워 기사작위를 받고 십자군 전쟁에 뛰어든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후 그리스인들은 특히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에, 이오니아 인들이 건너가 세운 고대 도시 밀레토스 인들은 흑해 연안에 무역 항구들을 건설하여 콜키스에 그리스 식민도시들을 세운다. 그리스에 이어 로마까지 영향력을 미치다가 콜키스는 BC 6세기 중반에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 아래로 들어간다.


헬레스폰트해협과 황금 양털


그렇다면 발단이 된 황금양털이란 과연 무엇인가?


프릭소스 헬레는 쌍둥이 남매로 보이오티아의 왕 아타무스와 님프 네펠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타무스는 아내 네펠레를 버리고 카드모스의 딸 이노와 다시 결혼한다. 계모인 이노는 프릭소스와 헬레를 죽이려고 계략을 꾸민다.

기근이 든 어느 해, 계모 이노가 꾸민 계락대로 프릭소스를 인신공양의 제물로 바치면 기근이 멈출 것이라는 신탁을 받는다. 희생물로 제단에 오른 프릭소스를 생모인 네펠레가 헤르메스에게 얻은 황금 양털의 날개가 있는 숫양을 보내어 남매를 구출한다. 남매는 황금 양털의 숫양을 타고 도망가는데 바다를 건너다가 동생 헬레는 빠져 죽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에게 해와 마르마라 해를 잇는 다르다넬스 해협이라고 부르는 헬레스폰트(헬레의 바다) 해협이다.


프릭소스는 콜키스로 도망쳐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환대를 받고 칼키오페와 결혼한다. 황금의 숫양은 제우스에게 희생 제물로 바치고 황금 양털은 아레스의 숲에 있는 참나무에 걸어놓았다. 메데이아의 아버지 아이에테스는 태양신 헬리오스와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의 아들이며, 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방해하는 마녀로 등장하는 키르케와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에 와는 남매간이다.

그녀, Medeia의 분노


아이에테스의 딸 콜키스의 왕녀 메데이아는 쿠다이시에서 출생했다고 추정하는데 마법을 할 줄 알았던 그녀는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능력이 뛰어난 여자였다. 그리스 최고의 영웅들로 꾸며진 50여 명의 선원들과 함께 황금 양털을 찾으러 온 이아손에게 한눈에 반한 것을 보면 순수하기까지 한 면모가 보인다. 하지만 아버지를 속이는 것은 물론 동생 압시로투스를 죽여가면서,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손에 넣도록 도와준 것과, 배신감에 분노하는 이후의 행보까지 사랑의 또 다른 검은 얼굴이다.

메데이아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이아손은 이복형 펠리아스에게 복수를 한 후 코린토스로 피신한다. 그러고 나서 달면 입 속에, 쓰면 뱉어버리는 인간의 본성을 실천한다. 코린트의 왕 크레온의 도움이 필요한 이아손은 메데이아를 버리고 코린토스의 공주 글라우케와 결혼한다. 이에 분노한 메데이아는 코린트의 왕 크레온글라우케, 이아손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신의 아이들까지 죽여 버린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을 떠나 아테네의 아이게우스 1세와 결혼하지만 아이게우스의 아들 테세우스를 독살하려고 하다가 실패한 후, 아테네를 떠나 아들 메도스와 함께 콜키스로 돌아온다.

키루스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이전에 그 땅에는 메디아라는 왕국이 있었다. 구약성서 다니엘서에 ‘매대’라고 나오는 메디아는 기원전 11세기 무렵부터 액바타나(지금의 이란 하마단)를 중심으로 대 제국을 이루었던 나라다. 키루스대왕의 페르시아에 복속되기 전까지 사실상 이란 땅의 첫 번째 나라라고 볼 수 있다. 키루스는 메디아 마지막 왕의 외손자였다.


아마도 메디아는 메데이아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었을까.


식물원의 전기차

보태니컬 가든


흑해를 끼고 조성이 된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보태니컬 가든은 식물들을 인공적으로 조성한 식물원과는 거리가 멀다. 자연스럽게 흑해를 바라보며 언덕을 오르다 보면 대륙별 식물들로 자연스럽게 식재되어있어 바다를 낀 휴양지 같다. 울창한 숲길도 끝없이 넓어 걷기에 피곤하다면 지나가는 전기차(1회 탑승에 2 라리)를 세워도 좋다. 바투미 시내에서도 멀지 않아 덥지만 않다면 한나절은 도시락 싸들고 데이트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가든 옆으로 난 길을 따라 해변으로 나가면 아름다운 조약돌 비치가 나타난다. 바투미의 젊은 피들이 오는 곳이다. 보태니컬 가든을 간다면 수영복은 배낭 안에 쏘옥 집어넣어가야 할 것 같다.


보태니컬 가든의 울창한 숲길
비치에서의 다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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