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처럼 2

추적

by 낭랑한 마들렌

시리즈로 마음먹은 글은 아니었으나 쓰지 않을 수 없는 용의자 추적 사건이 있었답니다. 이해와 재미를 돕기 위해 우선 첫 번째 글을 읽고 오시길 추천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 대한 뜨거운 반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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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래서 그 귀하신 분께서요, 오늘 아침에도 늦잠을 주무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언제나처럼 말이죠. 9시 혹은 8시 50분까지 등교인데 8시 35분까지 주무시고 계시면 어쩌냔 말입니까. 두고 보자, 하고 있다가 도무지 안 되겠기에 깨워드렸지요. 친절한 말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또 머리가 아프시답니다. 이제는 안 속아준다, 이 양치기 소년아! 선생님께 전화가 와도 감싸주지 않겠다고 엄포까지 놓았습니다.


아니, 9시까지 학교에 가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입니까? 라떼는 7시까지 등교해서 자율을 가장한 강제학습을 하지 않았느냔 말입니다. 그래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좌우지간 이제는 정말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저는 욕실로 들어갔습니다. 생활기록부에 지각으로 적히든 어떻든 본인이 알아서 할 일입니다. 저는 저의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씻고 있었습니다. 저놈이 다시 자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심 불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 한들 이제는 내 손을 떠났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그럴 일까지야 없겠지만 생활태도 점수가 나빠 고교 진학에 문제가 생긴다 해도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거죠. (우리 동네는 비평준화 지역이라 중학교 내신으로 고교에 지원해 합격 여부가 결정된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욕실 문을 똑똑 두드립니다. 네에?


다녀오겠습니다...



가긴 가는구먼. 시각은 이미 09시 01분. 저는 또 참지 못하고 약 올려 줍니다.


그래애~
늦었네. 뛰어야겠다??



그렇게 가시고 몇 분 뒤 민망하게도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네요. 아이가 늦잠을 자서 조금 전에 나갔다고, 이제 곧 도착할 거라고,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은, 아이와 통화를 하긴 했는데 도착하려면 오래 걸린다고, 집이 멀다고 했다네요. 자초지종을 설명하지도 않고 오래 걸린다고만 해서 조금 걱정이 되어 저에게 전화했다 하시는 겁니다. "제가 야단을 좀 쳤더니 아이가 기분이 안 좋았나 보네요. 하하..." 얼버무리며, 집이 멀지 않다고, OOOO 아파트니 곧 도착할 거라고 말씀드리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아무래도 뭔가 좀 수상하지 않습니까? 다음 수순은 역시 그것이죠. 위치 추적.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요? 아이는 등굣길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아뿔싸. 0.5초 만에 저는 옷을 갈아입고 있었습니다. 이번엔 발목이 부러져라 뛰어도 저놈을 따라잡을 수 없겠군. 오늘은 차로 간다. 빠른 판단이 진행됩니다. 처음에는 예의 그 PC방인가 했지만 아니었습니다.


10초마다 아이의 위치를 업데이트하며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를 운전해서 갑니다. 아이는 점점 더 학교에서 멀어집니다. 드디어 가출인가? 내가 아이에게 자주 하던 말이 떠오릅니다.



가출은 언제 해?



농담이라는 건 나도 알고 걔도 알고 그대도 아시겠지만, 말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가출할 아이는 아닙니다. 내 자식을 완전히 알 수 없는 게 부모라지만, 그래도 내 자식을 우리는 압니다. 아무래도 성질난 김에 잠시 배회하고 있나 보다, 생각하며 우선은 아이를 추적합니다. 발견 후 뒷덜미를 잡을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방법이 아닐 수도 있지요. 하지만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길을 배회하는 것은 왠지 불안하니 어쨌든 아이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아이는 학교에서 멀어지며 점점 갑니다. 어쩌면 차에 앉아있는 게 기동성이 떨어질 수도 있겠군, 생각합니다. 큰길에서나 차가 유리하지, 좁은 길이나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는 약하나마 두 다리가 낫지요. 내가 마동석도 아닌데 아무 데나 차를 버려두고 뛸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가다가, 역시나 차로 갈 수 없는 길이 보여 결국 돌려서 큰길로 다시 나옵니다. 그렇게 계속 추적해 가는데 아이는 특정 장소에서 멈췄습니다. 우리 지역의 공공체육시설입니다. 태권도 승품 심사 등의 행사로 저도 여러 번 와 보았고 아이 역시 친구들과 농구나 축구를 하러 종종 가기도 하는 곳입니다. 아, 얘가 배회하다가 그곳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겼나, 저 엄마 동지를 어떻게 할까, 다알아 여사 땜에 못 살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가.


이 공공체육시설은 체육문화센터와 실내 체육관, 실내 수영장, 테니스장, 야외 농구장, 축구장, 야구장 등등 여러 공간과 낮은 건물들이 커다란 울타리 안에 있어서 지역주민들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차장으로 들어갑니다. 평일인데 주차 차단기가 왜 다 열려 있을까? 고장 났나? 혹여나 아이가 알아볼까 싶어 주변을 잘 살핍니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먼저 알아봐야죠. 뒷덜미를 잡고 안 잡고는 그다음 문제고요. 앱에 표시된 아이의 위치 주변을 천천히 맴돌았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슬슬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어디 실내로 들어갔을까? 화장실 갔나? 편의점에 들어갔나?



결국 조용히 주차장에 자리를 잡습니다. 아이가 지나가는 것이 잘 보일 만한 길목입니다. 물론 도보로 학교로 가기에 더 가까운 길이 있습니다만 빈 주차공간이 없었으니까요. 내가 괜히 나온 걸까, 그냥 모른 체할 걸 그랬나, 아이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는데 들키면 아이가 더 숨 막혀하는 것은 아닐까,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할까, 에이, 의논은 무슨, 아무 생각이 없는 게 남잔데.


아시겠나요? 내 머릿속이 얼마나 분주한지, 얼마나 빠르게 생각들이 돌아가고 있는가 말입니다. 결국 결정을 했습니다. 뒷덜미를 잡는 따위의 행동은 우아한 다알아 여사에게 어울리지 않는 짓입니다. 차라리 이게 낫죠.


컵라면 먹을래?






슬쩍 차에서 내립니다. 컵라면을 먹자고 권할지, 혹은 그냥 내버려둘지는 아이의 모습을 본 뒤 판단하기로 합니다. 어슬렁어슬렁 체육관 건물로 다가갑니다. 두리번거려도 아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 내 아들만 한 남자아이가 그 학교 체육복에 교복 점퍼를 입은 모습으로 자전거를 타고 내 앞을 지나갑니다. (아이들은 편하다는 이유로 늘 체육복을 입고 다닌답니다.)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한눈에 봐도 내 아들은 아닙니다. 아시죠? 뒤통수만 봐도 아는 거. 키도 비슷하고 머리 모양, 특히 눈을 가릴락 말락 긴 앞머리도 비슷하지만 내 아들은 아닙니다. 순간 또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이놈이 여기서 친구랑 뭉치는 건가? 그러고 뭔가 작당을? 아냐, 그럴 애는 아니지... 하도 생각이 많아 어질어질할 것 같지만 본능이라 괜찮습니다.



슬슬 실내 체육관 쪽으로 올라가 봅니다. 앱에서 표시되는 위치라는 것이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니 적어도 몇 미터 차이는 있을 테니까요. 두리번거리며 어슬렁거리며 이곳을 배회하는 것은 내 아들인가, 그 어미인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들을 찾으러 왔습니다. 붙잡아 학교로 끌고 가지는 않아도 아이가 괜찮은지는 확인해야겠습니다.


실내 체육관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다가가며 들어 보니 "국기에 대하여! 경례!"랍니다. 어차피 바쁜 사람도 아니니 슬쩍 들여다봅니다. 유리문과 로비 공간을 지나 저 안쪽에 보이는 실내 체육관. 저도 여러 번 가 보아서 잘 알고 있듯이 그 실내 체육관이 그리 작은 규모는 아닙니다. 유니폼을 입은, 선수로 보이는 학생들이 체육관 문 앞에까지 서 있었습니다. 인원이 엄청 많은가 보군.



앗!



네. 이제야 현타가 옵니다. 그래서 주차장 차단기가 다 올려져 있었구나, 그래서 아까 어떤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왔었구나, 그래서 아까 선생님과 통화할 때 주위가 시끄러웠구나. 그랬구나.


네. 오늘은 아이 학교의 체육대회 날이었습니다. (벌써 몇 해째, 학교는 이 체육시설을 대관해 학교 전체의 체육대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지난주부터 체육대회가 싫다고 했습니다. 학급 친구들이 체육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그날은 학교 가기 싫다고 했었지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었을 겁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오래 걸린다고, 집이 멀다고 한 겁니다. (학교는 가깝지만 체육문화센터는 제법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가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내가 생각한 것처럼 '동네를 배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늦었네. 뛰어야겠다?라고 말하는 대신, 늦었는데 차로 태워다 줄까? 하고 물었어야 했습니다.



실내 체육관에 머리를 디밀고 수백 명의 인파 속에 내 아들도 있는지 확인하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주차장으로 걸었습니다. 자연스러웠다! 남편에게 연락했으면 어쩔 뻔했냐, 아이에게 카톡으로 메시지 폭탄을 퍼부었으면 어쩔 뻔했냐, 너 어디야? 선생님 전화하셨던데? 뛰어야지! 집이 멀긴 뭐가 멀어? 오래 걸릴 거라니, 선생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지금 어딘데에??? 어우, 상상만 해도 낯이 뜨거워집니다.






가수 이적의 어머니, 삼 형제 모두 서울대 출신인 그 아들들의 어머니인 여성학자 박혜란 선생님이 쓰신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의 서문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들들이 이렇게 말한답니다. "어머니가 언제 저희를 키우셨어요?" 당신이 정성껏 아이들을 키운 건 아니라고, 그저 아이들을 믿었고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음을 믿었을 뿐 아이들이 스스로 자라났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분이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유학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을 때 아들들 중 한 명은 고3 수험생이었는데, 매일 스스로 도시락 2개씩 싸가지고 다니며 공부했다고 하지요. 오래전에 읽은 거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부모에게 가장 요구되는 것, 그리고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그것은 '믿고 기다려 주는 것'임을, 부모 생활 19년 차에 다시 깨닫습니다. 내 아들이 아무리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그래도 학교에 안 가고 방황할 아이는 아니라는 것, 설사 잠깐 일탈한다 해도 영영 가버릴 아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또다시 현행범으로 체포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1시간 가까이 동네를 배회한 것은 고객님이 아니라 나였던 것입니다.



오늘 만약 외부 일정이 있었거나 강의가 있었다면 이런 호사스런 추적 사태도 없었겠지요. 이래서 엄마가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경제활동을 하는 일이든, 취미생활이든, 봉사활동이든, 공부든 뭐든 간에 말입니다. 내가 시간 여유가 있으니 말썽꾸러기 막내아들놈을 잡겠다고 달려 나간 것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잘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삐긋했군요. 맛있는 것 먹고 속 차려야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김치찌개 냉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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