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강의하는 도서관에도 매점과 식당이 있어 편리합니다. 수업이 끝나면 마침 점심때이므로 나는 느긋하게 혼자 식사를 하고 귀가하곤 합니다. 그날도 수업 후 아이들을 모두 보낸 뒤 지하에 있는 식당으로 내려가 6천 원짜리 식권을 끊어 밥을 먹었습니다.
식당에는 단체 급식을 하는 곳답게 테이블들을 길게 연결해 일행이 아니어도 그저 섞여서 식사할 수 있도록 배치한 테이블들이 두 줄 있습니다. 그 외 4인 혹은 2인 테이블들도 꽤 있습니다. 나는 긴 테이블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옆에는 젊은 여성과 나이 지긋한 남성이 마주 보고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 젊은 여성과의 사이에 한 자리를 비우고 앉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그렇게 하지요. 이용자가 많아 빈자리가 없을 정도라면 몰라도, 일행이 아닌 사람과 바짝 붙어 앉는 것은 조금 불편한 일입니다.
여성은 시종일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식사를 하고, 남성 역시 휴대전화를 보다가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하며 식사를 합니다. 이 두 사람은 일행인 듯 보이지도 않는데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조금 의아했습니다.
한참 식사를 하다가 나는 식판을 내려다보는 상태로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나이 지긋한 그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인데요, 대사는 이랬습니다. "다 먹었어?"
두 사람은 일행이었던 겁니다. 아마도 부녀지간인가 봅니다. 함께 식판을 들고 일어납니다. 어쩜,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대화 한 마디는커녕 일행처럼 보이지도 않았는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내가 식사하는 자리에서 1시 방향으로 보이는 4인용 테이블에는 두 남녀가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저들이 일행일까, 아닐까 줄곧 생각했답니다.
아마도 부부라고 볼 수 있을 법한 이들인데, 여성은 식판만 내려다보며 열심히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성은 그녀를 마주 보는 것도 아닌, 의자에 반듯이 앉은 것도 아닌 애매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여성에게서 45도쯤 몸을 돌려 한 다리를 다른 다리 위에 올린 상태로 의자 등받이에 한 팔을 올려놓고 어딘가를 보는 듯 아무 데도 보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지요. 식사를 하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함께 와서 한 사람만 식사를 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일행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로의 연관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기는커녕 상대방을 쳐다보는 일도 없었습니다. '음.. 이상하다. 그런데 왜 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거지?'
그러나 한참 뒤 알게 되었습니다. 이들 역시 일행이었습니다. 이쯤에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네요. 알고 보니 남성은 먼저 식사를 마치고 식판을 옆으로 밀어 놓았던 것이며, 밥을 느리게 먹는 여성은 서둘러 허겁지겁 식사를 했던 것입니다. 여성이 두 식판을 합쳐 퇴식구로 가져가려 하자 남성은 갑자기 역정을 냅니다. 메뉴가 달라 그릇이 다른데 그걸 합치면 어떡하냐고 말이지요. 여성은 아무 말 없이 잔반만 자신의 식판에 합치고 퇴식구로 가져갑니다. 언뜻 보아도 남성은, 아마도 남편이겠지요. 그는 아내를 성질대로 대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기 한 번 펴지 못하는 여성에게 이런 상황은 익숙해 보였습니다.
우리 문화에서 밥은 참 중요합니다. "언제 밥 한 번 먹자!" 하는, 말뿐인 말이라도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정을 나누고 친분을 쌓아가는 중요한 순간이 됩니다. 모임에서 서로 서먹서먹하다가도 회식 한 번 하고 나면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지는 일도 많이 경험합니다. 그렇게 보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 함께 음식을 먹는 행위는 두 사람 이상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그런 음식을, 함께 모여 앉아 따로 먹는 것은 차라리 혼자 먹는 것만 못하지 않을까요? '외로움'이란 혼자여서 느끼는 감정만은 아닙니다. 관계 속에서, 함께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이야말로 더욱 가혹한 것이 됩니다.
평소 가족들과 함께 식사할 기회가 많지는 않지만, 식사할 때는 휴대전화를 보지 않기로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춘기의 삼 남매에게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그래서 애써 궁금하지도 않은 것들을 묻고 신소리도 해가며 한 마디라도 더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 봅니다. 아이들은 어쩌다 관심사가 나오면 갑자기 입이 트여서 열심히 말하기도 합니다. 덮어놓고 열심히 들어줍니다. 말에 추임새도 넣고 편도 들어주고요.
밥이 중요하겠습니까?
말이 중요하지요.
바라보는 눈길이 중요하고 함께하는 순간이 중요합니다.
보통은 혼자 식사할 때 지나간 드라마나 영화를 보곤 합니다. 따로 시간 내어 보기가 어렵다는 핑계가 있지요. 그런데 이날은 내 낭독 수업을 수강하는 귀여운 남자아이와 그의 아버지가 식당에 들어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멋진 척 좀 하느라고' 그저 식사에 집중한 것입니다. 혼밥이라고 해서 귀에 버즈를 꽂고 넷플릭스를 보며 식사하는 것은 그다지 멋지지 않은 모습이니까요.
그러니 주변이 보이네요. 남들의 그런 사정이야 내 알 바 아니지만 그 모습에서 나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 주변을 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