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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읽는가

by 낭랑한 마들렌

얼마 전 한 공공도서관에서 강의를 마친 뒤, 보고 싶은 책이 있어 자료실로 내려갔습니다. 원하는 책들을 검색해 꺼내어서 열람석에 앉아 20분 정도 두루 살펴보고는 구매하기로 확정했습니다. 어차피 그 도서관에는 회원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 대출도 못 하고요.


책을 책수레에 올려놓고 나오는 길, 은발의 남성분이 힘겹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적어도 70대 후반 이상 되어 보이는 그는 책을 독서대에 올려놓은 뒤 책 가까이에 돋보기를 대고 손과 얼굴을 계속 움직이며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미간에는 굵은 주름이 잡히고 얼굴도 몹시 힘겨워 보였지만 집중해서 글을 따라가며 읽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늦추며 그를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문득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그를 읽게 하는가.

무엇이, 그토록 힘겨운 '읽기'라는 활동을 하게 하는가.



언젠가 오래전, 저는 '늙어서 죽기 직전까지도 나는 책을 읽는 사람으로 존재하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그저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이제야 나에게 구체적인 질문을 던져 봅니다.


나는 왜 읽으려고 하는가.

늙고 병들어서 힘들어도 여전히 책을 읽겠다는 것은 진정 무엇을 위함인가.



젊었을 적엔 지적 허영이 풍선처럼 내 안에 부풀어 있어서 그랬을 테지요. 하지만 이제는 거품을 빼고 진솔하게 나를 바라볼 때입니다.



좋은 책은 나를 구원해 줍니다.

나의 내면을 넓고 깊게 확장시켜 줍니다.

그리고 나에게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줍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전문직이라고 자부하던 직업을 가졌었지만,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열망 하나로 전업맘으로 살아온 지 10년이 넘어갔을 때. 나의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하려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오래 방황했었습니다. 영어에 빠져 지내다가 관광통역가이드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이것 역시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여러 해를 보냈지요.


결국은 돌고 돌아 책으로 회귀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토록 진부한 격언이 떠오르더군요.


책 속에 길이 있다.


그래, 책 속에 길이 있다던데, 정말 있는지 가 보기나 하자.


그렇게 해서 독서에 집중했고, 독서모임에 참여하거나 운영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낭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낭독 수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소리에서 출발하지 말고
책에서 출발하세요.



제가 바로 책에서 출발한 사람이거든요. 결국 책이 저를 살린 셈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언제나 길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는 듯합니다.


자, 이제 왜 읽는지 알겠네요. 바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죽을 때까지도,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읽겠습니다. 일단은 재미있으니까요.




가장 넓은 길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고 합니다. ▼


시 낭송 <가장 넓은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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