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수능시험일 아침, 아이를 보내며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입니다. 가히 ‘국가적 행사’라 해도 별로 지나치지 않은 표현이리라 생각합니다. 나의 첫째 아이도 지금 시험장에서 초집중하고 있을 겁니다. 기후 위기까지 고려할 여유가 없어 미안하지만, 입시 한파가 없다는 것이 참 고마운 일입니다.
공부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대학도 내가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지만, 큰아이가 고3 수험생으로 사는 내내 아무래도 마음이 쓰이더군요. 해주는 것도 없이 마음만 쓰입니다. 기도는 별로 안 했습니다. 명색이 권사라는 엄마가 수험생 아들을 위해 기도도 변변히 하지 않다니, 신앙인답지 못한 걸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제대로 잘 믿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아이의 학교는 미션스쿨인데 오늘 ‘학부모 기도회’가 있다고 하더군요. 어느 교회를 지정해 함께 모여,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그러니까, 아이들이 열심히 시험을 치르고 있는 동안 우리 부모들은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TV에서 많이 본 장면들도 기억이 납니다. 입시날 시험장 교문 옆 벽에다 끈적한 엿을 붙이고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들, 하루 종일 그곳에 서서 기도하는 엄마들, 심지어 방석을 깔고 108배를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그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장면들입니다.
외람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이가 시험 보는 동안 내내 기도하고, 시험장을 떠나지 못하고, 함께 마음 졸이며 하루를 보내는 이유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종교를 따르고 신을 믿는다면 불안하지 않습니다. 혹자는 반박하겠지요. 불안한 것이 아니라 간절해서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틀렸습니다. 상상해 볼까요. 홍길동이라는 수험생이 있습니다. 내가 그 학생의 부모에게 부탁합니다. 길동이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면 좋겠어요, 건강할 수 있도록 관리 좀 부탁드려요, 이번에 서울대 꼭 합격하면 좋겠어요……. 이 얼마나 주제넘은 일인가요? 길동이의 부모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뭐라고 나서서 이러저러한 것을 부탁하느냔 말입니다. 부모라는 우리가 하나님께 빌고 비는 것이 이런 모양임을 깨닫습니다.
어젯밤, 수능을 하루 앞둔 날 자기 전. 나는 이런 기도가 나왔습니다.
이 아이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 아이는 하나님의 것이며 당신께서 친히 지키시고 책임지고 계시니 이 일을 여전히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 어려운 모든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이 아이의 삶을 통해서 또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줄 압니다.
나는 그저, 오랜 공부의 과정을 잘 견뎌온 아이가 대견합니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증폭되는 긴장감과 많은 사람들의 응원에서 느껴지는 부담감을 잘 견디고 있는 아이가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일생일대의 큰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 마음 짠하고도 자랑스럽습니다. 나의 기도는 이것뿐입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아이와 하나님은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 아이 사이는 부모인 나조차도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긴밀합니다. 나는 임시로 엄마라는 역할을 맡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자신의 아이를 어련히 알아서 잘 보살피시지 않을까요? 그 곁에서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요청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걱정도, 불안도, 요구 사항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무엇이든 구할 때는 이미 얻은 줄로 알고 기도하라고 했는데, 했던 기도 또 하고 대학 합격을 위해 계속 계속 기도하는 것은 충분히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믿는다면 당연히 아이도 믿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몫을 잘 해내도록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충실히 살아야겠습니다. 내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갈 때 아이도 그것을 보고 배웁니다. 삶으로 가르친 것만 남으니까요. 부모가 종일 안절부절못하고 아이를 걱정하며 하루를 보낸들, 수험생 아이에게 도움 되는 것 전혀 없습니다. 그런다고 아이가 시험을 더 잘 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엄청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도 않을 겁니다. 오히려 “너를 믿어. 다 잘 될 거야.”라고 응원해 주고 담담하게 내 일을 하는 것이 더 아름다운 부모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남편은 오늘 회사에 휴가를 냈고 아이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며 소소한 대화를 했습니다. 둘째인 딸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 생이니 수험생 오빠의 모습이 남 일 같지 않은 듯합니다. 초록색 종이로 정성껏 접어 만든 네잎 클로버를 직접 주려고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 오빠를 응원했습니다. 중학생 어린이는 마음 편하게 늦잠을 자고요. 몇 주 전부터 멘탈관리에 힘써 온 수험생, 차분하고도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집을 나섰습니다. 누구도 호들갑 떨지 않고 흥분하지 않은 상태로 건강하게 시작한 하루입니다. 아이를 시험장에 들여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이 묻습니다. 오늘 뭘 할 거냐고요. 학부모 기도회에 갈 거냐는 질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해야 할 일들을 하면서 평소처럼 일상에 충실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어차피 휴가를 냈고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조용한 곳에서 기도나 하겠다며 교회로 가더군요.
신앙을 가졌다는, 종교를 믿는다는 부모들이여. 아이는 그분의 것이니 그가 알아서 하실 겁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우리의 일상을 충실히 살기로 합시다. 돌아온 아이에게 수고했다고, 장하다고만 말해 줍시다. 금기어들은 잘 아실 겁니다. “시험 어땠어?”, “잘 본 것 같아?” 따위의 말들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수험생 할인 찬스로, 온 가족이 좋아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기로 합시다. 가채점 따위는 오늘 기대하지 않기로 합시다. 그래도 수험생은 채점해 보겠지만 우리는 모른 체하기로 합시다. 우리는 쿨한 부모니까요.
고3 수험생 엄마의 대장정(?)이 이제 곧 끝난다고 기뻐하고 싶지만, 저에게는 새롭게 다시 시작되니 그저 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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