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놓는 일

엘리베이터 액션

by 마이즈

나는 평생 도자기를 만든 도예가다. 주문은 꾸준히 들어오고 있고 작업실에는 건조 중인 그릇들도 남아 있다. 조금 알려진 덕분인 것 같다. 나의 손은 언제나 정확하다. 흙의 상태도 잘 읽으며 망가지는 비율도 낮다. 이대로 도자기를 계속 굽는 다면 평생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인가? 이대로 간다면 내 삶에 새로운 무언가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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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오락실에 들렸다. 이제는 사라진 유물인데, 근처에 생겼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오락실용 게임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매번 하던 것들 뿐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고여 있다는 점에서 어쩐지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기 사이를 돌아다니며 화면을 응시한다. 오래된 것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그중 하나에 멈춰 섰다. 빌딩 건물 안을 돌아다니는 한 남자. 화면 가득히 보이는 빌딩의 내부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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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그랑


어느새 다가온 소녀가 동전을 넣는다. 직접 하려는 건가 싶었는데, 눈을 맞추고는 뒤로 물러선다. 서비스인가? 마다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자리에 앉았다. 주인공은 최상층에서 건물로 돌입한다. 30층이라고 쓰여있다.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걸까? 건물 안을 뛰어다니고 적을 보면 총을 쏜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적이 많아지고 해야 할 일이 늘어난다. 도자기 만드는 일도 똑같다. 잘 만들수록 주문이 늘고 같은 형태가 반복되며 손이 바빠진다. 하지만 눈앞의 상황에 집중할 뿐 그 이상을 생각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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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배치되어 있다. 모든 층에 연결된 방식이 아니라 몇 개의 층만 오가는 것들이지만 이를 이용하면 보다 빠르고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적들이 엘리베이터에 눌리기도 한다. 직접 발로 뛰어 계단으로 가지 않더라도 내려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나 같은 도예가는 수입이 적을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생계가 힘들 정도였지만,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면서 안정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똑같은 형태의 작품을 수 없이 반복해서 만들어야 했으니까. 더이상 도예가 즐겁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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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하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고객의 메시지이다. 배송 받은 물건과 동일한 것을 20점 추가 주문한다는 내용이다. 감사해야 하는 일이지만 어쩐지 짜증이 났다. 똑같은 물건을 더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20개나. 갑갑함에 한숨을 쉬는 순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검은 양복의 남자가 총을 쐈다. 젠장. 죽어 버렸다. 깰 수 있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조심했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메시지를 보내다니. 애꿎은 고객을 원망하게 된다. 물론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머리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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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내가 직접 동전을 넣어 게임을 시작한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덕분에 새로운 요소들을 하나하나 발견해 간다. 전등을 쏘면 주변이 어둠에 싸인다. 빨간 문의 방에서는 서류를 가지고 나올 수 있다. 똑같은 행위라도 반복을 통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여전히 나는 갑갑한 건물 안에 있고 내가 내려가는 길을 막아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 같다. 은퇴라고요? 지금 그만두기엔 너무 이르지 않아요? 주문도 많이 들어오고 있잖아요. 이걸 그만두면 뭐 하시려고요? 갑갑하다. 전등을 떨어뜨려 어둠 속에 나를 숨긴다. 나는 이곳에서 나가야겠어. 가로막는 적들을 피하며 나는 계단을 달려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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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1층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내려가는 길은 두 갈래다. 계단과 엘리베이터. 누구든 엘리베이터를 선택할 것 같았다. 편하고 안전하다. 적들을 눌러버릴 수도 있고 위험하면 다시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위험한 계단을 이용한다. 직접 내려가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은퇴를 반대하는 사람들 하나 하나와 마주하고 싶었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싶었기에. 내려놓을 때가 되었음을 말하고 싶었기에. 정면으로 떠나가고 싶었기에. 평생 매진해 온 일에 대한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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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을 넘어 지하로 내려간다. 익숙한 일을 떠나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다면 더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는 지하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에 올라탄다. 화면 속에서 차가 건물을 떠난다. 이대로 끝일리는 없으니 틀림없이 다음 스테이지가 곧 나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게임기를 등진 채 오락실 밖으로 걷기 시작했다. 소녀가 등 뒤에 다가와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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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세요?”


답변을 해주었다. 하지만 소녀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아직 게임기 화면에는 다른 건물에 갇혀서 내려가야만 하는 주인공이 남아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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