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길 선택한 사람: 사실은요
짭짤이 토마토의 계절이다. 4년 전이었나, 부산의 모 농장에서 수확한 짭짤이 토마토를 한 박스 선물 받았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땐 짠맛의 토마토인가 싶었지만 한입 먹어보고는 감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토마토가 이렇게 달콤할 수 있다니. 그때부터 매년 이맘때면 그 농장의 토마토를 주문하는 게 연례행사가 되었다.
처음 토마토를 주문하려고 전화를 걸었던 때였다.
토마토 한 박스에 얼마인가요. 지금 주문하면 배송은 언제쯤 시작되나요.
주문하기 위한 최소한의 내용만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농장 아저씨는 답변해 더해 그 농장에서 수확한 토마토의 우수성에 대해 신나게 설명을 늘어놓으셨다. 또 모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는 덧붙이셨다. 나는 약간 당황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축하드린다고 해야 하나. 통화를 마치고 내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대화에서 받은 상장을 사진 찍어 보내신 것이었다.
가끔씩 그런 경우는 있었다. 분위기를 어느 정도 봐가며 농담을 던져 오는. 하지만 그런 경우, 대개 농담의 말이 나오기 전에 공기로 이미 나는 눈치를 채곤 했다. 그리고 죄송스럽게도 미리 옅은 방어막을 쳤다. 저는 그런 농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서요, 하는 듯한 멋쩍은 웃음으로. 상대방은 농담을 하지 말걸,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시는 저 사람에게 농담을 하지 말아야겠다고까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집을 짓고, 담장도 쌓아간다. 정도는 다르겠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대개 담장은 높고 단단해지고, 서로의 그것을 허물거나 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어렸을 적에는 담장이 낮아 훌쩍 뛰어넘기도, 다시 나가기도 쉬웠건만. 어른의 담장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아서, 담장을 따라 크고 무거워진 문을 열어주어야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뿐이다. 그뿐일까. 한번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다. 나의 담장도 그렇다. 꽤나 견고한 것은 물론 문조차 잘 열지도 않는다.
토마토 아저씨는 잠깐 문 앞에서만 머물다 갈 정도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저런 이야기를 내게 하시는 것 하며 문자까지. 마치 담장 너머로 배시시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넨 것만 같았다. 치우지 않은 마당과 그 너머 집을 보여줄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사실을 고백한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전해져 오는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짧은 순간 고민했다. 그 끝에 내가 한 말은 '우와, 토마토 왕이시네요'라는 되지도 않는 농담이었다. 대체 저게 무슨 말인지. 바보 같은 말을 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 진심 어린 축하를 바라고 하신 이야기도 아니었을 것이다. 대체 이게 뭐야, 하고는 짧은 탄식을 뱉었다. 그러다, 어쩌면 내게 필요한 게 이런 것 아니었을까 싶었다. 실없는 대화, 예상치도 못한, 필요하지 않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어쩌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삶은 목적지를 향하는 끊임없는 행로 위에 있다. 그 길 위의 나는 눈에 힘을 주고 입을 굳게 닫고 있다. 도착하고 나면 잠깐 한숨을 돌리지만, 또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그런데 이런 의미 없는 대화에서 안면 근육을 풀어주고 마음 또한 녹여주는 것만 같다. 한숨 돌리는 것만 같다. 이게 사람 사는 것 아닐까.
올해도 토마토를 주문하기 위해 문자 목록에서 토마토 아저씨와의 대화를 찾는다. 대화는 약 1년 전에 머물러 있어 문자 목록을 한참 내려야 한다. 그 사이에 오간 수많은 기계적인 대화들을 지나친다. 아저씨와의 문자를 발견하고 마지막 문자를 발견한다. 문자에서 사람 냄새가 짙게 풍겨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