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떠나기만 하던 사람이 남겨진 사람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우리들은 여기저기에서 곡성으로 모여들었다.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흘러들어왔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기약 없이 언제까지고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함께하는 주어진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무지 짧았다. 그리고 그 끝이 다가올수록 시간은 더욱 박차를 가해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모여든 이들이 다시 떠나왔던 곳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누구 하나 부정하지는 않는 사이, 셈하지 않았던 마지막 시간이 부쩍 가까워졌다.
곡성 3주 살이는 원래 설 연휴까지 계획되어 있었지만, 그 일정에 변동이 생겼다. 연휴에는 공식 일정이 없게 되었고, 남거나 떠나는 것은 본인의 자유가 된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 연휴 마지막 날까지 있을 거라 생각하며 서울을 떠나온 나였기에 생각보다 빨리 떠나는 것은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부모님은 한국에 있는 딸내미가 연휴에도 부모님을 찾지 않으니 속상해하는 눈치였으나 그렇다고 당장 곡성을 떠나기에는 많이 아쉬웠다.
아직 생각을 제대로 시작도 못해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빡빡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느라, 또 그 후에는 쉬느라, 그리고 또 내일이면 사라질 오늘 밤이 아쉬워 한 잔 기울이느라. 잠도 줄여가며 보내는 나날들이었기에, 잔뜩 품고 온 고민거리에 대해서는 막상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곡성이 과연 나의 다음 거처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지내야 할까? 과연 할 수 있을까? 지낼 수 있는 곳일까? 고민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리기 일쑤였다.
그래, 설 연휴가 있잖아. 참여해야 할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니,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볼 수 있겠어.
설 연휴 시작과 동시에, 함께 하는 친구들의 인원수가 바뀌었다. 여섯 명으로 시작한 우리들이 네 명이 된 것이다. 상당히 아쉬운 마음에 며칠 더 함께 하자고도 해보았지만, 억지로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새 정이 들어버리고, 헤어질 때가 가까워질수록 더욱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이걸 어쩐담. 작별은 그렇게 내 마음도 몰라준 채 시작되었다. 참 야속한 헤어짐의 연속이었다.
그저 다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인데, 나만 남겨진 것만 같았다. 돌아갈 곳이 있었음에도 모른 척하는 건 나였고, 마음은 온통 돌아가지 않는 것에 쏠려 있었다. 마음을 기울이자 조금씩 답은 나오는 것 같았지만 확신이 서는 것은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어려웠다. 그렇다고 생각을 놓아 버리자니 더욱 길을 잃는 것만 같았다.
매번 떠나기만 하던 사람이 남겨진 사람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떠나는 것에 익숙했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에 능하곤 했다. 그랬던 사람이 남겨진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남겨지는 것’을 이 계기로 연습해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길어만 보이던 설 연휴도 어느덧 끝나가고 있었다. 아직 나는 생각도 다 하지도 못했고, 제대로 각도 잡지 못했는데 말이다. 거짓말 같았다. 시간이 정말로 사라진 채였고, 나는 이미 흔적도 없이 몸을 숨긴 시간만 애타게 찾고 있었다. 어느 날은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셋이 되어 있었고, 하룻밤만 더 자면 혼자가 될 예정이었다.
친구들은 모두 제자리로, 혹은 그 언저리로 돌아갔다. 내 마음도 몰라주는 이별이 도미노처럼 진행되었다. 아무리 해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게 있다면 이별이 아닐까. 마냥 함께 마주 보며 하하 호호 웃으며 이 겨울을 다 보내버릴 것만 같이 굴었는데, 그것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일인 것만 같았는데, 그 시간이 어느덧 정말로 끝이 나버린 것이다.
이별의 연속을 거치는 와중에 새로운 인연도 시작되었다. 예상했던 인연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로 인해 나는 혼자 남겨져도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고맙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렇다고 나의 고민의 반을 뚝 떼어 함께 가지고 갈 노릇은 아니었다.
한국에 남을 것인지 다시 외국의 어느 곳으로 떠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여 혼자만의 동굴을 팠던 12월이 지나고 난 뒤 맞이한 1월. 나는 서울로 돌아갈 것인지 곡성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곡성이 아닌 또 다른 곳을 찾아 헤맬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떠나간 사람들의 등 뒤에 남아, 어렴풋이 피어나는 ‘정답’을 똑바로 보려 밤새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누구 하나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해주지도 않고, 남으라고 등을 떠밀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혼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귀를 쫑긋 세웠다. 마음을 주무르며 이리 기대고 저리 기대어도 보며 나는 그렇게 여러 갈래의 길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