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길을 네 번 반복해서 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출발 선상이 도착 지점이 된다. 자꾸만 반복이다. 길을 나서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지점을 떠나서 다시 안착하는 마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부푼 마음으로 가득했다가 귀소 본능이랄까, 뭐 어쩔 수 없이랄까, 길이 정해져 있어서랄까, 어쨌든 부푼 마음 다 끝내고서 돌아오는 것이다. 걷는 내내 부풀었던 마음은 요동쳤다. 더 부풀기도 했고, 넋이 나가기도 했고, 쭈굴쭈굴해지기도 했다.
떠나는 것이 무언가 대단한 일이라도 벌이는 것 같던 때가 많았다. 사실 여전히 그렇다. 떠나는 것의 기간, 갑작스러움, 동행자의 여부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떠나는 것은 모든 호들갑을 수용할 수 있다. 그 모든 여정은 떠나고자 결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마음먹고 행동에 옮기기까지 시간이 더디 걸리더라도, 혹은 행동을 아주 먼 나중으로 미루더라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면 언젠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이내 흩어질 것이다. 여기저기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길로 접어들게 되고, 누군가에 의해 내 삶이 결정될 것만 같은 진귀한 경험도 해보는 것이다. 생각한 대로만 이루어지니까 모든 우주가 나를 향해 흐르는 것 같다가도, 또 예상치 못했던 전개로 새로운 맛에 빠져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여기저기로 향해보는 것이다. 계속해서, 실컷, 다시는 하지 못할 것처럼 표류해 보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씩씩한 걸음으로 걸어보고, 용감하다는 말을 수차례 들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용감한 행동을 하나씩 해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나중이야 어떻게 되든, 일단은 지금이 가장 중요하니까. 지금만 생각해 보는 것이다. 아니, ‘나중’ 이란 것은 내가 감히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애초에 목록에 올려놓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그렇게 찬란하게 누볐던 길이 끝나면, 이제는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모든 지속적인 건 없다고, 계속해서 누리고 싶던 그 시간도 결국엔 다시 포장지 속으로 넣어야 할 것이다. 두 어깨 가득 무겁게 짐을 꾸려 돌아오기도 할 것이고, 벅찬 기억들 때문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기도 할 것이다. 생각하면 자꾸만 먹먹해져서, 그럼에도 어찌할 줄을 모른 채 그냥 시간이 가고 있다는 사실은 한없이 모른 척하겠지. 돌아오지 않을 것 같던 그 길을 다시 걸어 들어오는 것.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순리여서 아무도 놀리지 못할 그 행색을 하고 돌아오는 그 길.
이미 지나온 길들은 금방 아득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겠지만, 결코 끝난 것이 아니란 걸 우리는 알고 있다. 언제가 또 될지 모르겠지만,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끝끝내 그 마음을 놓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또 길을 나설 것이다. 또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고, 조금 다른 곳으로 방향을 꺾을 수도 있다. 자꾸 가만히 멈춰 서서 지난날만 생각하기엔 앞으로 나아갈 길이 너무나 길다. 너무나 가슴이 찡해서 자꾸 되돌아가고 싶어질 지경일 수도 있겠지만, 그때 뛰던 그 가슴을 고스란히 데려와 본다. 여전히 쿵 쿵 쿵 잘도 뛴다.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시 새로운 궤도로 진입해 보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 익숙해서 훤히 꿰뚫고 있는 길일 수도 있겠다. 뭐든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