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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대신 바퀴를 달고

by 오션뷰

매일 저녁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생각했다. 우리가 향하는 곳이 같았으면 좋겠다고. 하루는 네가, 하루는 내가 일찍. 그렇게 번갈아가면서 먼저 집에 도착하여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이를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도착하는 나 혹은 너는 얼마나 발걸음이 가벼울까. 지친 몸,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가지만 하루 중 가장 가벼운 마음일 것이다.


그렇게 하루씩 번갈아 가며 서로를 기다린 끝에 함께 하는 시간. 서로의 눈빛은 싱그럽게 빛난 채, 어둠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창 밖이 온갖 건물들로 막혀있다 하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함께 눈을 뜨면, 우리 집만 남겨두고 다른 모든 집은 사라져 있을 것이다. 누군가 흘린 옥수수 알갱이처럼, 제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포도알처럼, 나무에 더 이상 달려 있지 못하고 이르게 떨어진 대추처럼, 홀로 그렇게 우리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이 없고, 우리에게는 더 이상 시간에 맞춰 움직일 의무가 사라진 것이다.


창 밖을 보면 시야를 가리던 온갖 건물들은 사라지고, 끝없는 지평선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지평선에 우리는 눈 둘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고, 가장 오랫동안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내 온몸 구석구석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우리는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조금씩 움직일 것이다.


며칠이 지나면, 우리는 사라진 지난 세상들과 더욱 멀어져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집에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기로 한다. 그리곤 더 이상 필요치 않은 물건들을 큰 방에 모두 모아둔다. 그들은 우리를 따라 바람에 탑승하지 못하고 뒤에 남는다. 바람의 꼬리를 타고 그들을 향한 작별인사를 띄운다. 그 뒤로 우리는 커튼을 없애고, 천장의 등까지 모두 없앨 것이다. 집은 지붕이 무겁다 하고, 우리는 뜨겁게 동의하는 것이다. 무거운 지붕이 걷히면, 집은 허리를 펴고 집안 가득 세상을 품기 시작한다. 우리의 집엔 낮과 밤이, 푸르름과 붉음이, 햇빛과 별빛이 모두 내려앉는다. 많은 것을 덜어낸 우리의 집은 가벼워진다. 우리는 지붕 대신 바퀴를 달고 달린다. 그러면 미풍에도 우리는 더욱 쉽게 움직일 것이다.


여전히 정직하게 펼쳐져 있는 지평선. 그 위로 빼곡하지 않게 자리한 나무들. 각자의 향이 섞이지 않도록 서로의 영역을 지켜준 채 피어난 꽃들. 그 사이를 한가로이 지나가는 이름 모를 동물들과 구름들. 우리만 바퀴를 단 것이 유난스러워, 최대한 소란스럽지 않게 움직여 본다. 시간의 흐름에 역행하지 않은 우리의 집은 점점 더 작아지고 단순해져 간다.


우리 스스로가 세상이 되고, 서로의 전부가 되어 간다.

하늘은 땅이 되고, 땅은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된다.


아침마다 설명할 수 없는 기분 좋은 꿈을 꾸다 일어난 사람처럼, 우리는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몇 시인지를 확인할 것이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을 수도 있고, 꿈이 더 이상 꿈이 아닐 수도 있다. 어려운 문제들을 홀가분하게 풀어낸 사람들처럼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고 밤새 별들이 쉬다 간 흔적을 닦아 햇빛을 받을 것이다. 그리곤 경계 없는 하늘을 마주한 우리의 집은 천천히 바람을 타고 달린다.




그러다 문득 어느 날 아침 우리는 기억나지 않던 무게와, 잊었던 고민들과, 필요 없어 남겨졌던 것들과 함께 눈을 뜰 것이다. 창 밖을 내다보니 빼곡한 건물들이 작은 식물들처럼 자라날 것이다. 그 속도가 너무도 빨라 금방이라도 하늘을 가릴 것만 같다. 바퀴를 잃은 우리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지붕은 하늘과 우리를 갈라놓을 것이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서로를 쳐다볼 것이다. 서로의 눈동자 속에 함께 꾸었던 꿈일지도 모를 장면을 확인한다. 창 밖으로 어느덧 기다랗게 솟아난 건물들의 유리창마다 뜨거운 아침 햇살이 묻어난다. 한동안 온갖 말을 삼키던 우리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하고, 지난밤이 머물던 흔적을 닦아 오늘을 맞이한다.


우리는 꿈에서 깨어난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거친 하루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다는 듯, 그저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설 채비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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