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나 해가 지는 시간이 너무 아름다웠다. 문득 주위의 배경 색이 바뀌는 것에 집중을 하다 보면, 다른 모든 것은 잊게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설령 너무나 중요하지만 풀리지 않는 무언가에 매달리고 있었다면 당장 손을 놓아버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무도 나무랄 이가 없었고, 설령 있다 해도 함께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넋을 놓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아름답다는 말, 매료되는 기분,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거짓말 같은 순간이 모든 것을 멈춰 세웠다.
같은 풍경을 즐길 수 있다면 누구든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먹고사는 것이야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그런 것쯤이야 그저 해변에 밟히는 모래알만큼이나 작은 것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십 발자국을 가도 계속해서 밟히는 모래알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이 남은 이곳에서의 날들이라 생각했다. 쉽게 사랑에 빠져도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고, 사랑에 빠지는 방법만이 그곳에 기꺼이 멈출 수 있는 완벽한 방법이었다. 그리곤 영영 그곳에 머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를 같이 지을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층짜리 건물이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겉면은 너무 어둡지 않은 초록색으로 칠하고 건물 주변에는 잔뜩 나무들을 심는 것이다. 이왕이면 키가 큰 친구들이면 좋겠고, 계절에 너무 민감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층짜리 건물의 위, 옥상에는 누구나 올라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언제 누워도 편안한 소파 -때가 쉽게 타지 않는 색이면 좋겠다-, 아침 식사도 모든 투숙객에게 제공해야지, 그리곤 점심과 저녁은 매일 바꿔가면서 다른 메뉴를 만들어야지. –비가 거칠게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널찍하고 투명한 처마를 만들어야지-, 저녁엔 별도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각 방의 모든 창문을 바다를 향해 있을 것이다. 눈을 뜨면 바다를 보고, 어두워지기 전까지 바다를 볼 수 있는 방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음악을 틀지 않아도 파도 소리가 온 방 안에 가득 찰 것이며, 방 안으로 들어간 소리는 쉽게 방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을 것이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소리를 안고 나의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는 모든 이들은 한 번도 꿔보지 못한 꿈을 꿀 것이다.
키가 높은 나무들의 튼튼한 기둥에는 해먹을 묶어둘 것이다. 여러 개의 해먹을 두 개의 나무 사이마다 엮어 두는 것이다. 그리곤 그 위에서 책을 읽고 맥주도 마실 것이다. 다리를 들어 두 발로 나만의 작은 그늘을 만들어도 볼 것이다. 그러다 보면 따뜻한 햇살에 스르륵 잠이 들 것이고, 그 언제도 맛보지 못했던 달콤한 낮잠을 자게 될 것이다.
주말이면, 이웃집에 놀러 가는 것이다. 그 집은 우리 집만큼 아름답지는 않겠지만 역시나 신비로운 풀들이 우거진 곳일 것이다. 집을 떠나 새로운 집을 만든 이들이 잔지바(Zanzibar)의 주말마다 모여들 것이다. 옛 것을 곱게 접어 안고, 새롭게 익숙해지는 것들과 어깨를 마주할 것이다. 들어보지 못한 노래를 오래 전의 것처럼 부를 것이고, 맛본 적 없던 것을 기다려온 양 들이킬 것이다. 섬 밖의 속도는 잊은 채. 힘겹게 쌓아오던 시간을 자유롭게 풀어버린 채. 시끄러운 소리에 애써 귀 기울이지 않아도 괜찮을 그런 시간.
날은 매일같이 덥지만 밤이면 우리는 모닥불을 필 것이다. 낮 동안 젖은 마음 모닥불 앞에서 말리며 서로의 곁을 내주는 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밤을 마련할 것이고, 꿈꿔온 것이 같은 이들끼리 모여 이보다 더한 축복은 없을 것이라 여길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에 겨운 밤일 것이다. 영영 끝나지 않을 밤일 것이라 자신하고, 서로가 의견을 지지해 줄 것이다.
내일은 기억하지 못할 춤을 출 것이다. 별들이 반겨줄 것이고, 어제는 외면할 것이다. 그 누구도 추지 않았던 춤을 언제나 추었던 춤처럼 출 것이다. 땀범벅이 되고, 발바닥이 아파와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잔지바의 배경이 되어 있을 것이고, 잔지바는 그렇게 나의 한 조각이 되어갈 것이다. 설령 이루어지지 못할 상상에 그치더라도, 내일이면 다 잊을 테니 괜찮을 것이다. 지금은 춤을 추는 것에 집중할 뿐이다. 해가 지고 나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곳에 그렇게 물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