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쓸쓸하게 깊어가고, 초겨울의 애잔함이 깊게 불어오던 어느 날, 그 손은 내 등에 닿았다. 모든 것이 잠들고 고요하게 잠든 시간, 오로지 그 손만이 깨어있던 날이었다. 작은 온기를 가지고 있던 그 손은 따뜻한 바람과 함께 나에게로 불어와 나의 호수에 착륙했다. 가을이 한 해의 나이를 먹어가는 만큼, 손은 하루가 다르게 따뜻해졌다.
그렇게 나에게 닿은 그 손은 나의 호수를 떠나지를 못했다. 손은 가만히 멈추어 있기도 했고, 조심스럽게 반복적으로 움직이기도 했다. 마치 나의 등을 어루만지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손은 평생의 몫을 다 하듯이 그렇게 움직였다. 내가 책을 읽고 있을 때에도, 작은 창 밖을 통해 밖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실 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에도, 혹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 어떤 말이든 할 때에도 그 손은 나의 등을 떠나지 않았다. 나의 호수에 손이 만든 윤슬이 생겨났다.
그 손에는 그만이 가지고 있는 온도가 있었다. 눈을 감고도 여러 개의 손 중에서도 그 손을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익숙하고 편안한 온도였다. 그 온도는 나로 하여금 그 손에 기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더 이상 물리적인 크기나 무게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밤과 낮 동안 손은 적절한 온도로 변해갔다. 우리는 서로의 표면이 맞닿아, 서로를 감싸주기도 하고 서로에게 안기기도 했다.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손의 온도에 나는 그렇게 나를 맡겼다.
손은 표정 없이도 온갖 감정을 만들어 내었다. 그 감정은 나에게 계절이 되었다. 오직 둘만이 느끼고 둘이 함께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손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푸르름을 주었고, 모든 것이 붉어지는 마법 같은 아름다움을 선사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거친 비가 우리를 온통 젖어들게 하고, 몸속 가장 깊은 곳으로 천둥이 내리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 손은 나에게 우산이었고, 털부츠였으며, 또 챙이 넓은 모자였다. 그 손은 내게 계절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싱그러움을 주었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모든 계절을 만끽했다.
그러다 문득 손은 말을 건네기도 했다. 두꺼운 적막을 깨고 솟아오른 한 송이 꽃과 같은 말이었다. 그 말은 꽃잎 사이로 조심스럽게 흘러나와 노래가 되어 나에게 왔다. 손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오로지 나만을 위했기에 클 필요가 없었다. 표정으로 전하지 못한 속마음을 전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하면 밤이 새도록 몇 번에 걸쳐 읽어주었다. 그 손이 전한 말들은 내 가슴에 닿아 씨를 뿌리고 또 다른 꽃을 피워내곤 하였다.
우리가 함께 많은 표정을 건네고 또 건네던 어느 날, 그 손은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안내했다. 손은 조심스레 나를 또 다른 계절로 이끌었고, 나는 손을 따라나섰다. 두려움은 철 지난 계절의 바람 속에 흘려보낸 후, 그 손이 이끄는 대로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구름의 끄트머리에 살짝 앉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바람의 어깨를 잡았다. 서로 꼭 맞잡은 손은 변함이 없었고, 함께 만들어낸 온도가 배고픔을 잊게 했다.
문득 내려다본 발아래, 그 손이 이끄는 새로운 세계, 우리가 함께 했던 곳과는 너무 많은 것이 다를, 그곳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씩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그곳을 우리는 함께 탐험해 갈 준비를 했다. 희망과 떨림이 함께 했다. 또 다른 겨울의 한가운데로 우리는 함께 착륙할 준비를 마쳤다. 따뜻한 바람을 따라 그 손이 나에게 착륙하던 그 어느 깊은 가을날처럼, 우리는 새로운 맛의 계절 속으로 그렇게 첫 발을 내디뎠다. 서로의 두 손을 꽉 쥐고, 두 손에 의지한 채, 두 손을 바라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