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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과 바다가 맞닿은 곳

색이 바랜 사막과 시간에 야위어진 바다가 그렇게 만나고 있었다.

by 오션뷰

사막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갔다. 저 멀리서부터 흘러들어온 바다의 끄트머리가, 수백 년 전부터 촘촘히 쌓아 올려진 사막의 끄트머리와 만나고 있었다. 서로의 끄트머리를 마주하며 바람에 그들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바람이 둘 사이를 매우 강하게 묶어주기도, 바람이 그들 사이를 매우 잔인하게 떨어뜨려 놓고도 있었다. 바람을 타고, 의지를 보태 서로를 향해 온 시간 동안, 그들은 조금은 지쳤고 조금은 낡아져 갔다. 색이 바랜 사막과 시간에 야위어진 바다가 그렇게 만나고 있었다.


사막과 바다가 서로 닿을 때마다 사막의 모래 알갱이들이 바다 위로 튀기곤 했다. 모래 알갱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멀리 바다로 뻗으려 노력했다. 그 모습이 귓가에 노래처럼 들려왔다. 모래 알갱이들은 바다로 더 가까이 스며들려고도 했다. 차마 바다의 깊이도 계산하지 못한 채, 그러기에 얼마나 긴 호흡을 견뎌야 하는지도 모른 채.


사막과 바다가 서로 닿을 때마다 바다의 수면은 전에 없던 몸부림을 쳤다. 그것은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과, 보다 큰 호기심이 만들어내는 몸부림. 그것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촉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보다 큰 짜릿함이 만들어내는 몸부림. 그저 사막의 품에 안겨보려 저 멀리서부터 열심히 달려왔을 바다이다. 거칠고 거칠게 달리다 사막이 시야에 들어오자 그 떨리는 마음 들키랴, 가슴속에 곤히 두고 짐짓 점잖은 체하며 가까워졌을 바다이다.


얼마나 그 순간이 지속될지 서로는 계산할 수 없었다. 얼마나 오래 그 기억을 가지고 갈 수 있을지는 그들의 계획에 없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서로를 향해서 달려왔는지는 이미 기억에서 지웠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 온 순간인지 그들은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얼마나 또 오랜 시간 기다리고 인내해야 다가올 순간일지 그들은 알고 싶지 않았다.




뜨거웠던 한낮이 지나가고 차가운 어둠이 내려왔다. 사막을 향해, 바다를 향해 내려온 어둠은 말이 없었다. 그토록 빛나던 시간은 어둠에 잠겨버렸고, 하루 내 서로를 향하던 뜨거웠던 입김은 이내 차가운 한 줌 공기가 되어 소리 없이 떨어졌다. 바다의 가장 깊은 곳으로, 사막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떨어져 내렸다.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박힌 한 줌 공기는 한 송이의 꽃을 피워내었다. 그 꽃은 이내 가장 높은 곳으로, 가장 밝은 곳으로 곧게 솟아올라 별이 되었다. 별이 뿜어내는 향기는 사막과 바다의 온 경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밤의 차가움은 모든 것을 떨게 만들었지만, 사막의 곁은 여전히 따뜻했다. 밤의 차가움은 모든 이를 잠들게 했지만 바다는 잠들 수 없었다. 사막과 바다가 맞닿은 곳엔 아직 한낮의 온도가 맴돌았고, 그들은 조금이라도 온도를 잃을까 조심히 서로를 어루만졌다. 모두가 하루의 기억을 곱게 접어두고 새로운 해가 밝아올 때까지 또 다른 꿈을 꾸는 동안, 사막과 바다는 그동안 꾸어온 꿈을 마침내 실현시키고 있었다. 진짜가 맞는지 서로에게 여러 차례 물어보았고, 또 여러 차례 끄덕여주었다. 서로에게 스며들었고, 서로를 적셨고, 서로의 무게를 나누었다.




어느새 새벽이 밤을 대신하고, 아침이 새벽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밤은 아득하니 멀어져 갔지만, 밤새 속삭이던 몇 마디가 바다의 물결에 새겨져 사막의 언저리로 밀려왔다. 사막은 조용히 그 몇 마디를 집어 들었고, 아끼는 옷처럼 조심스럽게 입었다. 바다의 잔잔한 수면 위로 새겨진 기억이 하늘로 투명하게 비췄고, 사막의 모래마다 맺힌 눈빛은 아직 다가오지 못한 바다를 향했다.


사막과 바다가 맞닿은 곳을 찾은 한 국적 모를 소년이 모래 알갱이들을 한 줌 집어 올렸다. 작은 손바닥에 잔뜩 움켜쥔 모래 알갱이들을, 소년은 바다 가까이로 가지고 갔다. 바다의 곁에 살포시 뿌려진 모래 알갱이들로부터 나온 탄성이 그곳을 찾은 여행객들의 귀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바다의 곁에 도착하기 전 소년의 작은 손가락 틈새 사이로 흘러내려간 모래 알갱이들은 그들을 부러운 듯 바라보았다. 금세 또 바람이 불어올 것이고, 오래도록 꾸었던 꿈을 이루어 낼 것이라는 희망 또한 그곳에 넘실대었다.


사막과 바다는 그렇게 계속해서 맞닿아 있을 것이다. 저 멀리서부터 사막을 향해 열심히 흐르는 바다와, 저 멀리서부터 바다를 향해 열심히 날아오르는 사막의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 맞닿을 것이다. 같은 꿈을 꾸며 서로를 향해 꾸준히 움직일 것이다. 속도를 내지 못하는 날도 있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나야 할 때도 있겠지만, 모든 순간마다 서로를 향한 호흡만은 일정할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사막과 바다가 맞닿은 경계에는 다른 시간이 흘러 그 경계를 조용히 지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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