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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만 사랑하자.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에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by 오션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이 며칠간 이어져오고 있기에, 이 뿌연 하늘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우리가 감히 예측할 수 없기에, 하늘만 바라보며 애타게 해를 기다리는 것은 그만두기로 한다. 오지 않을지도 모를 내일을 바라보지 않고, 남겨진 기억만 아련하게 쓰다듬지 않고, 그냥 오늘만 사랑하기로 하자.


함께 할 수 있는 내일을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얼마나 더 함께 할 수 있을지를 셈하지 말고, 우리가 만들었던 약속들에 의지하지 말기로 한다. 내일이 없다면 오늘 그냥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온갖 마음으로, 하지만 오래 생각하지는 않도록. 온갖 표정으로, 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도록. 그렇게 오늘 온갖 마음으로 사랑하자.


내일을 덮칠 거대한 파도가 저 멀리서부터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을 없게 할 허리케인이 이미 동쪽 먼 끝에서부터 기지개를 켰을지도 모른다. 온갖 것의 형태를 잊게 할 모래폭풍이 이미 사막의 깊숙한 골짜기에서 시동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에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그렇게 사랑하자.


거친 바람에 모든 순간이 산산조각이 난 채로 흩어지면 어디로 흘러갈까?

커다란 나무의 뾰족한 가지 하나에 걸려 남은 일생을 맞이할까,

바위 밑 틈새에 깔려 더 이상 아무것도 듣지 못하게 될까,

망망대해에 올라타 그 어느 때보다도 짙은 외로움을 맛보게 될까.


지금을 떠나면 모든 지금이 과거가 되어 기억에 묻힐 수 있을까,

작은 숨을 거두며 함께 나누었던 사소한 하루짜리 맹세를 그 언젠가 되새겨 볼까,

서로를 위로했던 시간의 날카로운 날에 애처로이 서있던 불안한 마음을 그리워할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소중한 게 아니라, 곧 지나갈 순간이기 때문에 소중히 품어본다.

오래도록 꿈꿔왔던 지금이기에 소중한 게 아니라, 오래도록 가슴에 박힐 지금이기에 소중히 품어본다.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것이기에 소중한 게 아니라, 다시는 맛보지 못할 것이기에 소중히 품어본다.


파도가 웅장한 움직임을 시작한다. 마음속에 주체하지 못할 감정들이 서그럭거리며 동하기 시작한다. 허리케인 그림자의 경계가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왔다. 쿵쾅거리는 마음들이 풀어져 여기저기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그 소리가 맴돌고 찌꺼기처럼 남은 여운 위로 모래폭풍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우리의 소리는 모래에 갇힌 채, 모래 사이에 끼어 함께 여행을 시작한다.


날개를 갖지 못한 것들이 힘껏 사랑한 이들의 문장만을 남긴 채 또다시 출발한다.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해방감을 느끼며 꿱꿱 지르는 소리가 먼 곳에서 시작하여 더 멀어진다. 모래보다 잘게 부서진 채, 그 언제보다도 가벼워진 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지난 사랑을 삼켰다.


많은 일이 일어난 곳에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사랑했기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아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사랑했기에.

또다시 나선 길에서도 온갖 마음으로, 지난 일들은 모조리 잊었다는 듯이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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