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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고 싶지 않았던 순간

머뭇거리는 노랑 - 5

by 마음부자


초등학교 4학년.
우리 반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만큼《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속 ‘엄석대’를 닮은 반장이 있었다.

키가 크고 목소리도 컸다.
늘 당당했고, 때로는 그 당당함이 지나쳐 무례해지기도 했다.


누군가를 때려도 언제나 장난으로 치부되었다.

반 아이들이 울어도 선생님은 늘 같은 말을 했다.
“쟤는 원래 그런 애야. 나쁜 뜻으로 한 게 아니야. 그냥 장난이 좀 심했지?”

그 아이의 모든 행동이 당연하다는 듯 허용되는 분위기였다.


그 권력은 선생님의 묵인에서 비롯되었고, 선생님은 그 아이가 하는 일마다 웃으며 넘겼다.

40대 중반쯤 되었을 여자 선생님.
늘 화장을 곱게 하고 단정하게 머리를 묶으셨으며, 목소리도 차분하셨다.

하지만 어떤 아이에게만은 유독 특별한 태도로 대하셨다.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그 반장은 선생님과 친근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심지어 선생님의 등에 업힌 채였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웃었고, 나도 그 장면이 조금 부러웠다.
한없이 자유롭고, 모두의 사랑을 받는 존재 같았다.


그 순간 그 반장이 자기 실내화를 들어 올리더니 내 옆에서 장난치던 남자 아이에게 던졌다.

그런데 그 신발은 엉뚱하게도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퍽.

책상에 앉아 칠판을 보고 있던 내 얼굴에 실내화가 세게 부딪혔다.


나는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은 깔깔 웃었다.

어지러웠다.
당황스러웠고, 무엇보다 창피했다.


선생님은 놀란 척했지만 그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그 반장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웃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사과 따위 필요 없는 위치에 있다는 듯이.


그 날 이후로 난 엄석대같은 반장도,

그 반장을 묵인해주시던 선생님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실내화로 맞은 것보다 더 충격적인 기억이 남아 있다.


그 때의 그 모든 것을 내가 좋아하던 아이가 보고 있었다.

미술을 유독 잘하던 아이.
공부도 잘하고, 조용하며 언제나 연필을 곧게 쥐던 아이.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이.


임*준.


나는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4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도 그 아이의 이름과 모습만은 내 기억에 사진처럼 선명히 남아 있다.

그 아이가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그 아이가 나를 본 그 순간, 내 얼굴의 표정을.

창피하고 한없이 작아져서,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이 그 아이의 눈에 담겨버린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괜찮냐’고 묻는 어른도 없었고, ‘왜 울었냐’고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저 혼자서 생각했다.
왜 나는 그런 순간에, 그런 모습으로 그 아이 앞에 서게 되었을까.
왜 그날 그렇게 부끄러운 얼굴을 해야 했을까.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아니면 나처럼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기억 하나에 잠시 그 시절을 떠올리고 있을까.


노란불은 그날 내 앞에서도 깜빡이고 있었다.


건널 수도, 돌아설 수도 없는 길이 되어버린 그날.

나는 그렇게 또 한 번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미지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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