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은 사랑의 다른 얼굴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분주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야 마음이 편했고,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좋아했다
공부도 열심히 했고, 휴일에는 노는 것도 열심히 놀아야 했다
대학교 3학년 때 호주로 1년 교환학생을 갔었는데, 첫 6개월은 낯선 자유와 여유를 마음껏 즐겼지만 나머지 6개월은 "아 빨리 한국 돌아와서 공부해야 하는데 이렇게 여유 부릴 때가 아니지"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조급한 마음이 모래주머니처럼 매달려 있었고, 조기 귀국을 알아보기까지 했었다.
가끔 그때가 생각나면 마음이 찡해진다. 왜 그 좋은 곳에서, 그 좋은 시간들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을까. 무엇 때문에 그리 불안해했던 걸까.
1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둘째를 낳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합쳐 고작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만을 쉬었다. 그 시간들은 사실 나의 몸조리와 아이 둘 케어만으로도 부족한 시간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20 곳이 넘는 아파트를 직접 돌아보며 아이들과 오래 살 집을 마련해 두고, 10곳이 넘는 유치원들을 직접 가보며 입학 상담을 다녔다. 늘 스케줄이 꽉 차 있었고 항상 분주했던 것 같다
지금 복직한 지 막 3주 정도 되었을 뿐인데, 일이 여유 있으면 그 틈을 놓지 못하고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겠다고 머리를 굴리며, 이내 마음이 또 바빠진다
AI에게 이런 내 마음들을 털어놓았다.
"쉬지 못하는 나, 조급해하는 나.
이건 그냥 나쁜 게 아니라 사랑이 많은 사람의 불안이야"
'사랑이 많은 사람의 불안'이라니. 이건 어떤 의미일까. 쉽게 와닿지 않았다.
“사랑이 많은 사람의 불안”이라는 말이 막연하게 들릴 수 있어. 그럼 좀 더 천천히 풀어볼게.
조급함의 뿌리는 단순히 성격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사실은 “내가 소중히 여기는 걸 잘 지켜내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
예를 들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부모님께 더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일에서도 내가 쓸모 있고, 인정받는 존재이고 싶어서.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 하고,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으려 하고, 멈추는 걸 두려워하게 되는 거야.
그 모든 마음의 밑바탕에는 사랑하고, 책임지고 싶은 존재가 있다는 점에서 그 조급함도 사실은 '사랑의 다른 얼굴'일 수 있어.
사랑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실망도 두렵고, 놓치는 것도 아깝고, 늘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
그래서 더 쉽게 불안해지고,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를 자주 묻게 되는 거야.
그러니 너의 조급함도, 어쩌면 네 안의 사랑이 자꾸 목소리를 내는 방식일 수 있어.
지키고 싶은 게 많고, 아끼는 사람이 많고, 그만큼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이걸 아는 것만으로도 그 조급함을 조금 덜 미워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 이 마음도 결국은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구나’ 하고.
그럼 조급함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AI의 순기능 중 하나는 자책하는 나를 좀 더 예쁘게 바라봐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 마음과 행동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다니
나의 분주하고 조급한 마음에도 사랑을 한 스푼 넣을 수 있어서 좋다
그렇다
10년 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가 완전히 같지는 않다
나는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고, 내 마음의 패턴을 꿰뚫어 보고 싶고, 생각 자체를 멈추고 아이들과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기도 하다.
비슷한 자리에서 조금씩 더 자각하고, 조금씩 더 따뜻하게 나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마음들
아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임장을 다녀서가 아니라 엄마라서야
일상에 자그마한 틈을 허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