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밀도가 높았던 시간에 대하여
흘려보내야 하는 시기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애써 붙잡으려 하지 않아도, 그냥 지나가도록 두어야 하는 시간.
둘째를 낳고 작년 4월에 복직한 이후의 1년이 그랬다.
아이 둘을 키우며 일을 한다는 건, 하나를 키울 때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터졌고, 그때마다 마음은 쉽게 흔들렸다.
둘째가 아직 어린이집에 가지 않던 시기에는 친정엄마 혼자서는 감당이 어려워 시터의 도움까지 받았지만, 그럼에도 늘 빠듯했고 늘 어딘가 쫓기고 있었다.
그 답답함을 정리할 길이 없어 결국 나는 계속 글을 썼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주말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늘 아이들과의 시간에 집중하였고, 아주 가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이들 생각이 계속 마음 한편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평일 내내 일을 하느라 아이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주말만큼은 내가 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는 시간조차 어딘가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만큼 그 시기의 나는 육아와 일 이외의 것에 마음을 쓸 여유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일이 너무 재미있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적성에 딱 맞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고, 아이디어가 샘솟고, 자발적으로 더 하고 싶어지는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 그때의 나는 분명히 생각했다. 아, 나 아직 살아있구나. 이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구나.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고, 그만큼 인정과 보상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삶은 늘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또다시 변수들이 생기고, 재택과 육아를 오가며 집안을 챙겨야 하는 현실 속에서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엄마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일은 가늘고 길게 가야 하는 삶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마음은 일의 설렘과 삶의 무게 사이를 계속 오갔다.
그래도 나는 그 시간을 그냥 버티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작년부터 남편에게도, 친정엄마에게도 수없이 말해왔다. 올해 4월이 되면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다.
꽃이 피고, 둘째가 어린이집에 갈 만큼 자라고, 나 역시 복직한 지 1년이 지나면, 그때쯤이면 모든 것이 조금은 자리를 잡을 것 같았다.
아마도 나는 이미 한 번 그 시간을 지나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를 키우며 육아휴직을 하고 다시 복직했던 경험 속에서, 어떤 시기는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기다렸고, 그래서 더 버틸 수 있었다.
올해 3월,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그 변화 하나로, 믿기지 않을 만큼 숨통이 트였다.
아이가 자란 것이고, 시간이 흐른 것이고, 나 역시 그 시간을 지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내가 그렇게 애써 찾으려 했던 마음의 평화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그 시기를 정말로 눈앞에서 마주하게 되었을 때,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벅찼다.
오늘, 친정엄마와 함께 집 바로 뒤에 있는 뒷산에 처음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가까이 있었던 곳인데도, 그동안은 갈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시간이 없어서, 늘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미뤄두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드디어 갈 수 있었다.
꽃이 피어 있었고 새싹이 올라오고 있었고 공기는 부드러웠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냥, 벅찼다.
아, 그 시기를 지나왔구나.
돌이켜보면, 그 평화는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다.
책을 읽고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를 이해하려 애써도 쉽게 오지 않던 것이었다.
그저 시간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그 시기는 삶의 흐름 속에서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시기였다.
아이 둘과 일, 그리고 가족의 마음까지 함께 끌어안고 살아내야 했던 그 시간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밀도가 높은 구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 말하는 ‘마음의 여유’라는 말은,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 가까웠다.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는 안다. 어떤 시기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
복직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시간을 잘 견뎌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시간을 억지로 붙잡지 않고 흘러가도록 두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인정하려 한다.
그래서 오늘은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 견뎠다고. 정말 잘 지나왔다고.
그리고 이제는 다시, 일이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