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변화가 어쩌면 빛나는 성장임을 알기에.
여자아이들의 Allergy에서
"난 내가 너무 싫거든" "빌어먹을 내 이름"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아니 어쩌면 우리 모두 시대를 통과하는 여자들이 겪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나의 사춘기는 특별히 반항적이지 않았다.
성적이 나쁘지도 않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그저 괜찮은 아이였고 명랑한 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왜 저런 언니들처럼 안 생겼을까.
"날 보는 내가 너무 싫어."
이 노랫말 한 줄이 나에게 오래 남아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나를 미워하게 되는 그 순간. 사춘기는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진행된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다 그래." 이 말이 틀리건 아니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사춘기의 혼란은 '다 그렇다'는 말로는 잘 봉합되지 않는다.
내가 겪는 이 감정이 진짜라는 것을. 어쩌면 우리는 명랑한 사춘기를 연기하며 자랐는지도 모른다.
괜찮은 척, 해맑은 척, 안 힘든 척.
그러다 문득 거울을 보며 중얼거린다. "왜 나만 이래?" 그런데 이 질문이 어쩌면 모든 시작인지도 모른다. 비교를 멈추고 나를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꾸미지 않아도 괜찮고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나는 조금 더 나를 알게 되었다.
나는 타인의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한 예쁨이 아니라 나 자신을 좋아하고 싶은 마음으로 변하고 이번에는 조금 더 나답게 또다시 명랑한 하루를 살아간다.
헬스장에서 나는 조용히 자기 루틴을 지키는 사람들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 스트레칭 구역에만 있는 김 씨 회원님. 오늘도 매트를 깔고 어깨를 돌리고 다리를 뻗고 허리를 숙이고. 늘 차분하고 늘 일정하다.
솔직히 처음에는 몸을 풀러 오는 것 같았다. 땀에 흠뻑 젖어있는 다른 회원들과 다르게 그 회원님의 모습은 늘 담백하다. 기구를 잡는 법도. 덤벨을 드는 법도 모를 것 같았다.
어느 날 그 회원님이 스트레칭을 마치고 한참 동안 덤벨 렉 앞에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작은 덤벨 하나를 들었다. 가장 가벼운 무게였다. 양손에 쥐고 천천히 들어 올리는 그의 표정은 운동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마치 "나도 이제 한 발짝 나아가 본다"는 마음과도 같았다.
이날 이후로 스트레칭만 하던 그녀의 루틴에는 덤벨이 조금씩 섞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1kg, 그다음에는 2kg, 그리고 어느새 3kg까지.
아직 자세는 어설프지만 무게와는 상관없이 다양한 운동을 시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조용히 자신의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따스해지는 순간이었다.
인포데스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그 순간은 작은 선언처럼 다가온다. 늘 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서 낯설고 두려운 영역으로 조심스레 들어가는 순간.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아 보이지막 이 작은 덤벨 하나가 자신을 바꾸려는 용기를 보고 있다.
헬스장에서 가장 반짝이는 순간은 다른 게 아니라 무거운 덤벨을 들 때가 아니라 바로 이런 순간일지도 모른다. 스트레칭만 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덤벨을 드는 그 작은 변화가 쌓여 자신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스트레칭만 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덤벨을 드는 그 작은 변화가 쌓여 자신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인포데스크에서 조용히 첫걸음을 응원한다. 작은 용기가 결국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시작이라는 걸.
명랑한 사춘기처럼 회원님의 삶도 명량하다. 작은 변화가 하나하나가 쌓이고 어느 순간 거대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
그리고 나는 오늘도 인포데스크에 앉아 자기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누군가를 조용히 바라본다.
어쩌면 사춘기란 다 그런 게 아닐까. 크고 극적인 반항은 쉽게 지나가도 작고 소소한 감정들은 조용히 오래 이어진다. 그 마음들이 모여 결국 나를 조금씩 바꿔놓는다. 명랑한 사춘기처럼 내 안의 혼란도 그렇게 조금씩 명랑해지고 있다.
작은 깨달음 하나하나가 쌓이고 쌓여 나를 이루는 큰 힘이 되는 것.
그리고 나는 오늘도 거울 앞에서 조금 서툴러도 나 자신을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나의 모습과 조용히 마주한다. 그 느리고도 꾸준한 마음의 변화가 어쩌면 가장 빛나는 성장임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