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어릴때부터 명절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부산, 어머니는 산청 출신이어서 오가는 길이 멀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명절 특유의 북적거림이 싫어서였다. 아버지는 8남매, 어머니는 5남매여서 명절 때 내려가면 어른들도 아이들도 너무 많았다. 게다가 경상도 사람들 특유의 마초적인 분위기도 부담스러웠다.
부산 큰아버지댁은 방이 6개 있는 그야말로 ‘큰 집’이었다. 보통 어른 남자들 한 무리, 어른 여자들 한 무리가 모여 있으면, 아이들도 2개 무리 정도로 모여서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무언가를 했다. 서양식 카드게임을 하거나 동양식 카드게임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나는 아무도 없는 빈 방을 찾아가 혼자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 있으면 평화롭고 좋았다. 하지만 그 평화는 보통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누군가 벌컥 방 문을 열고 들어오면 평화는 깨지고 다시 소란스러움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누나와 내가 중고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명절 때에도 내려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면 명절 연휴는 오롯이 긴 휴가가 되었다. 너무 좋았다. 나는 친척들을 보지 못해서 아쉬운 감정이 조금도 생기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성인이 된 후에는 자연스레 명절 모임에서 자녀들은 제외되었다. 사촌들 중에는 결혼한 사람들도 많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외국에 있거나, 군대에 있거나, 이제 어른이 되어서 더 어른들의 모임에 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친척들은 명절보다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결혼식 혹은 장례식에 만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자 무언가 달라졌다. 부모님은 내게 맡겨놓은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이전까지는 요구하지 않던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추석 당일에는 어른들이 다같이 모이는 시골집에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한다던가, 몇년에 한번씩은 조상님들의 묘에 직접 벌초를 하러 가야 한다던가 하는 것들이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누나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것들, 심지어 결혼 전의 나에게도 요구되지 않던 것들이었다. 남성과 결혼이라는 조건이 중첩되면서 무슨 자격과 함께 책임이 부여되는 것처럼 자연스레 요구되는 것들이 나는 의아했다.
지독한 평화주의자(또는 갈등회피주의자)로서 부모님과 직접적으로 대립하지는 않았다. 벌초를 하는 건 내가 내 몸만 움직이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집에서는 요구되지 않는 것들이 나와 함께 아내에게까지 세트로 요구되는 일이 생기면서 나와 아내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은 결혼한 아들과 며느리를 자신의 형제들에게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그걸 잘 몰랐고, 부모님은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결국 진실을 꿰뚫은 건 아내였다. 대인배적인 풍모로 이쪽 저쪽의 얼굴도 잘 모르는 나의 친척들 앞에서 밝은 척 웃으며 감정 노동을 한 것도 아내였다.
부모님은 몇 번 그렇게 명절을 보낸 뒤에는 크게 다른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하룻밤만 보내고 떠나는 우리를 보며 아쉬운 티를 내곤 했는데, 그마저도 나는 잘 못 알아챘다.
이번 추석엔 혼자 부모님댁을 찾을 예정이다. 아내에게는 바다라는 거대한 벽이 있으니까.
이틀밤을 부모님댁에서 보낸 뒤에 제주행 비행기를 타려한다. 그러면 그때부터 나의 진짜 추석이 시작이다. 제주도에 있는 나의 진짜 가족과 함께하는.
[커플북] 주말 부부는 그뭐냐, 그거다. 제주편 - 아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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