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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do Feb 03. 2024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지금은 장인어른, 장모님이 된 애인의 부모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인사 직후 나온 첫 질문이다. 애인은 부모님께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하지 않는 성격이다. 만남이 있던 날에도 애인은 부모님이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나오실 거라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름도 모르고 나오실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직업이나 수입, 가족 관계, 건강 상태, 가치관 이런 것들이나 어떻게 잘 소개해 볼까 생각하고 간 자리인데 이름부터 얘기하면서 내가 세운 계획은 모두 어그러졌다.


“제 이름은 ㅇㅇㅇ입니다” 이름 앞에 아무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소개해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언제부턴가 항상 이름 앞에 수식어를 붙였다. 중고등학생 땐 학년과 반을 붙였고 대학생 땐 학과, 학번을 붙였다. 취업 준비생 때도 '지원 번호' 혹은 'ㅁㅁ에 입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인' 같은 수식어를 붙였다. 직장을 얻은 뒤에는 회사 이름이 이름 앞에, 직책이 뒤에 나왔다. 이 수식어는 내 정체성이었다. 수식어에 대한 평가가 곧 나에 대한 평가라 생각했고 사회적으로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했다.


그 어떤 수식어도 없이 이름을 얘기하자 왠지 모르게 그 뒤로는 쉬워졌다. 어디 사는지, 집은 자가인지 전세인지, 다니는 직장은 어디고 군대는 어디로 다녀왔는지, 가족 관계나 부모님 직업은 어떻게 되는지 거리낌 없이 술술 불었다. 비가 많이 오는 날 밖에서 옷 젖을 걱정 없이 달리는 느낌이었다. 수사 기관이 내민 완벽한 증거 앞에서 범행을 전부 자백해야 하는 피의자가 이런 느낌일까. 애써 무엇을 더 얘기하거나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느낌. 가장 나약한 상태가 됐을 때 가장 자유롭다고 느꼈다.



나를 지탱해 준다고 생각했던 껍데기가 결국은 짐이 되고 있었다. 껍데기를 한 겹, 두 겹 덧씌울 때마다 조금 더 훌륭한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이러고 보니 그것들은 정말 중요한 순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친구나 지인, 직장 동료 등 2차적 관계에서나 어느 정도 먹혔지 가족 또는 가족이 될 사람 같은 1차적 관계에서는 한없이 무력했다.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고 싶어 껍데기들을 주워 모았는데 결혼을 허락받는 자리에선 그것들을 내려놔야 한다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어야 된다고 했다. 오래된 커플이나 부부를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거짓 없이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연애에서 참 거짓말을 많이도 했다. 돈 없어도 있는 척, 하기 싫어도 하고 싶은 척, 기분이 나빠도 그렇지 않은 척 등. 회상하면 그땐 사랑하는 척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정도로 상대방에게 본모습이 아닌 가짜 모습을 보여줬다. 껍데기를 씌운 내 모습이 배려라고 생각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지만 파트너에겐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나를 가짜,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결혼이 가져다준 작은 행복 중 하나는 더 이상 가짜들로 치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멋있어 보이기 위해 비싸고 좋은 옷을 걸치지 않아도 되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직무를 부풀리지 않아도 된다. 혼자 있고 싶을 땐 혼자 있고 싶다고 하면 되고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도 된다. 이제는 그래도 나를 싫어하거나 떠나지 않을 사람이 내 곁에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감정인 사랑 앞에서 연인들은 무장 해제된다. 가장 약한 모습일 때 가장 단단한 관계가 만들어진다. 사랑은 진정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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