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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do Feb 17. 2024

어지르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엄마는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는 말씀을 참 많이 하셨다. 워낙 깔끔한 성격을 가지신지라 정리정돈을 강조하셨고 늘 청소하고 계셨다. 어린 내가 어지른 장난감이나 먹고 난 과자 봉지를 치우시면서 늘 자기가 어지른 건 자기가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 말은 청소와 정리정돈에 관한 교육이기도 하면서 내 안에 은근한 반항심을 불러일으켰다. 엄마가 좋아해서 하는 청소라면 그냥 엄마가 다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집을 떠나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주거 형태를 경험했다. 몸만 간신히 뉘일 수 있는 고시원부터 개인공간 하나 없던 기숙사, 요리만 하면 연기로 가득 차던 4평 원룸, 6·25 전쟁 직후 지어진 투룸 빌라 그리고 지금의 아파트까지.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넓어지면서 책임감도 강해졌다. 청소해야 할 곳이 늘었고 물건을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해야 했다. 넓은 곳에 살수록 청소를 안 하면 금방 티가 났고 어질러져 있으면 보기가 싫었다. 하루종일 청소만 하시던 엄마를 이해했다.


결혼을 하면서 딱히 신혼집을 구하지 않았다. 금리도 높았고 서울에 집값이 워낙 비싸 내가 살던 전셋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신혼이라고 살던 집을 탈바꿈할 수도 없으니 혼자 살던 집에서 한 명 같이 사는 모습이 됐다. 아내가 산 침대와 냉장고, 세탁기를 제외하곤 모든 게 결혼 전과 그대로다. 생활방식도 그대로 이어졌다. 전처럼 청소와 설거지, 분리수거를 열심히 했다. 10년 넘게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힘든 것도 몰랐고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지 오래됐다.



어느 날 평소보다 청소를 자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면 됐던 화장실 청소도 주 2회는 해야 했고 아침, 저녁으로 청소기를 돌려도 집이 금세 더러워지는 기분이었다.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품이 몇 배로 빨리 늘어났다. 혼자 사는 것과 둘이 같이 사는 것은 달랐다. 사람이 두 배로 늘어나면 일은 네 배로 늘어나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집안일이 드라마틱하게 힘들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순간 내 입에서도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


고작 결혼한 지 몇 달 지났다고 벌써 이런 생각이 들까. 어린 시절의 순수한 반항심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니 사회생활을 하며 생긴 보상심리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한 만큼 보상을 받아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거나 투쟁해 쟁취하는 사회. 그 세속적인 개념을 나는 사랑에 접목시키고 있었다. 내가 집안일을 이렇게 하는데 너는 뭐 하냐. 내가 집안일을 하면 너는 다른 거라도 해야 하지 않냐.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일에도 나는 보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성경은 사랑을 '오래 참고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사랑해서 함께 살아보니 그 노력은 내 것을 주장하지 않고 공을 내세우지 않는 노력이다. 사랑해서 결혼했으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면 된다. 책임의 대가에 대해선 주장할 필요가 없다. 뭔가를 바라고 진 책임이 아니라 사랑해서 진 책임이기 때문이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상대방도 노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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