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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udo Feb 24. 2024

사랑은 취향을 공유한다


연애 등 인생에서 취향은 중요하다. 취향에 따라 데이트 방식을 결정하고 대화 주제나 먹는 음식 등을 정한다. 이상형도 취향의 영역이다. 직업 선택이나 가치관 등도 전부 취향의 영향을 받는다. 얼마 전부터 큰 유행을 끈 MBTI도 결국 취향을 분석해 표준화시킨 결과다. 요샌 소개팅을 하거나 심지어 취업을 할 때도 MBTI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관계에 있어 취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어린 시절부터 취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커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궁금했고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명확히 알고 싶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공부하기 싫어서 계속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무리 해봐도 부모님이 시킨 공부는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았다. 한동안 빨리 취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많은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눴고 힘들게 여행을 다니며 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노력해서 찾은 취향 중 하나가 음악이다. 4살 때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녀서 그런지 음악을 좋아한다. 클래식 장르뿐만 아니라 팝, 힙합, 레게, 락 등 아이돌 가요 빼고 전부 듣는다. 중학생 시절엔 256MB짜리 MP3에 40곡 정도를 디깅해 듣고 다녔다. 같이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서로 MP3를 바꿔 들으며 교류했다. 대학에 와서는 홍대에서 공연도 해보고 연주회도 자주 다녔다.


두 번째는 음식이다. 어려서 엄마께선 집밥을 좋아하셨다. 지금도 집에 와서 밥 좀 먹으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집밥이 맛없다는 뜻은 아니다. 집에 재료가 없을 때도 엄마께선 집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시며 장을 봐다가 집밥을 해주셨다. 한 번쯤 나가서 먹으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로 외식을 싫어하셨다. 이런 기억에 대한 반항심리로 맛집을 좋아한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열심히 가꾼 두 취향은 인생에 큰 자양분이 됐다. 사람들을 만나면 음악과 음식을 주제로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과 만나 정보를 공유하고 소개팅이나 연애를 할 때도 취향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신 있게 했다. 내가 취업을 준비했던 시기에는 자기소개서가 중요했다. 어학연수나 공공기관 인턴 등 특별한 스펙 하나 없어도 취향에 관한 이야기로 자기소개서를 빼곡히 채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와이프는 취향이 정반대다. 관찰해 보건대 집에 있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거나 자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연주회를 다닌다는 것은 이 친구에게 어려운 일이다. 와이프는 평일에 저녁 11시면 잔다. 주말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잠에 들어 오후가 거의 지나야 깬다. 누워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처음에는 취향을 강제해보려 했다.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었고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부단히 노력했지만 30여 년을 길러온 각자의 취향은 쉬이 섞이지 못했다. 서로의 취향이 매력적인 것은 알지만 두 취향이 합쳐지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와이프는 주말에 밖에 나가 활동적인 데이트를 해보려 노력하고 나도 주말에 침대에 누워 잠만 자보려 했으나 그게 그렇게 힘들었다.


연애를 하며 서로의 취향을 어느 정도 알았기에 우리는 꾸준히 노력했고 지금은 타협점을 찾았다. 우리는 이제 평일 저녁 데이트를 즐긴다. 퇴근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다음날 여유가 있다면 술도 한잔 걸친다. 주말에는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와이프가 자게 둔다. 그동안 나는 옆에 누워 같이 자거나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며 글을 쓴다. 와이프가 깨면 저녁을 먹고 동네를 걸으며 밀린 대화를 나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여도 취향을 강제할 수 없다는 걸 몸소 배웠다. 대신 사랑은 취향을 공유하게 만든다. 사랑은 내 취향이 아닌 것들도 따듯하게 바라보도록 한다. 또 어떻게든 사랑하는 사람의 취향을 받아들이게 한다. 한 사람이 들어오면 취향도 함께 따라온다. 사람을 만나 인생이 바뀐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나와 와이프의 인생은 바뀌었다. 둘 다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모습으로.


MBTI에 대한 관심을 넘어 집착하는 사회다. 상극인 MBTI를 가진 사람은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기도 꺼려한다. 외모보다 MBTI가 더 중요하다는 사람도 많다. TV에는 유명 변호사가 나와 취향이 없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조언한다. 취향이 없는 사람이 취향이 다른 사람보다 함께 살기에 낫다는 취지다. 일부 동의한다. 그래도 나라면 멜론 TOP100 듣는 사람보다 아이돌 가요 듣는 사람을 만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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