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통제하기 위한 완벽주의
바쁘게 사는 것, 나는 다른 대학원생들 처럼 편하게 공부만 하지 않는다는 것. 그런 프레임에 나를 씌우고는 스스로 자존감을 채울때 박사 선배가 자기 에이전시에 들어올 것을 제안했다. 처음 그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나도 드디어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구나. 취업 준비를 하지 않아도되서 정말 다행이다. 다시 어딘가의 어리벙벙한 신입 새내기 취급을 받지 않아도되서 다행이다. 라는 마음이 가장 컸다. 그렇게 꽤 오래 프리랜서로 프로젝트 단위의 일만 해오던 나는, 작은 디자인 에이전시의 기획자로 정식 입사를 했다. 주방에서 일하던 사람답게 돌발상황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편이었다. 그건 내 장점이자 생존력이었다. 갑자기 클라이언트 일정이 바뀌거나, 현장이 꼬여도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음속 어딘가에는 “어차피 불 끄는 일은 해봤으니까”라는 담담함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책임이 나에게 귀결되지 않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이름으로 모든 걸 감당해야 했던 지금과 달리, 이번엔 누군가의 결정 뒤에 숨어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괜찮았다.
대표는 예민하고 섬세하지만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었다. 행사 직전 날에는 토할 정도로 긴장했고, 불안해했다. 나는 그런 그를 달래며 스케줄을 챙겼다. “괜찮아요, 할 수 있어요. 걱정 마세요.” 내 입에서는 자동으로 위로가 흘러나왔다. 그건 나의 생존 방식자 습관이었다. 불안을 흡수하고, 대신 평정을 내보이는 사람. 주방에서는 그것이 필요한 동료의 조건이었고, 에이전시에서도 그것은 신뢰의 포장지였다. 그 평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대표는 나를 곧바로 정식으로 뽑았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여기는 브랜딩을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디자인 에이전시였다. 이름은 기획자였지만, 기획 일을 하는 날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프로젝트의 빈 구석을 메우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게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일에 필요하니까 회사의 쓸모를 찾고 해나가는 것이 나의 쓸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감정이 쌓였다. 나는 점점 ‘잡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디자인도 해야 했고, 미팅 스케줄도 챙겨야 했고, 제안서도 써야 했다. 갤러리 운영, 작가 컨택, 행사 스태프, CS 응대, 세금계산서 발행까지. 팀에 빈틈이 생기면 늘 내가 메웠다. 그게 나의 역할이 되어 있었다.
그 즈음 대표가 말했다. “널 실력 때문에 뽑은 게 아니야. 나는 네 태도를 보고 뽑았어.”
그 말에 나는 한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나는 실력 없는 사람인가? 디자인으로도 기획으로도 심지어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인가? 마치 세일이 끝난 상품처럼, 누군가의 ‘좋은 태도’라는 이유로만 남겨진 사람 같았다. 그 말은 칭찬이 아니라, 내 역할의 한계를 못박는 문장이었다.
그 후로 대표는 자주 말했다. “이제는 보여줘라.” 하지만 그조차 내가 무엇을 보여주길 원하는지 몰랐다.
기획서인가, 디자인인가, 아니면 태도인가. 나는 매일 시험대 위에 올려진 기분이었다. 아무리 해도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불안을 통제하기로 했다. 보고서를 세 번 검토하고, 회의 전에 10분 일찍 들어가며, 메일의 문장 부호 하나까지 다듬었다. 모두가 퇴근한 뒤에도 제안서를 고치며, ‘완벽하게 일 잘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유지했다. 불안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완벽이었다. 실수하지 않으면 버려지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 믿음이 나를 매일 조금씩 갈아 넣었다. 그 시절의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겁이 많았다. 실패할까 봐, 무능하다고 들킬까 봐, 사람들의 기대에서 벗어날까 봐. 그래서 더 애썼다. 야근하다 집에 돌아가서까지 새벽까지 제안서를 수정하고, 일정표를 새로 짜고, 혹시 나 말고도 다른 팀원의 누락된 보고가 없는지, 확인했다. 누군가의 불안을 대신 막아주는 일은 이제 내 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일 잘하는건 디폴트고 그래서 네 역할이 뭔데? 라는 무능함의 프레임이 씌이고 있다는 전조를 자각했다. 나느 그렇게 조금씩 투명해졌다. 눈에 띄지 않게 일하는 사람, 없어도 돌아가는 사람, 하지만 없어지면 미묘하게 불편해지는 사람. 딱 그 정도였다.
같이 일하던 막내 디자이너는 나보다 어렸다. 전형적인 MZ였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이상하게 위안을 느꼈다. ‘그래도 나는 쟤보다는 낫지.’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명확한 포지션을 가진 디자이너였고, 나는 무언가를 메꾸는 사람이었다. 결국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그녀에게 쌓였고, 나는 점점 공기처럼 희미해졌다. 일을 가장 많이 하지만, 가장 존재감 없는 사람. 회사 안의 나는 그렇게 정의되었다.
게다가 대표는 자꾸 말했다. “네가 일 잘하는건 알겠는데 이제는 보여줘라.” 하지만 그조차 내가 뭘 보여주길 원하는지 몰랐다. 기획서인가, 디자인인가, 태도인가. 본인도 마케팅이 뭔지 몰랐고, 디자인밖에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내가 뭘 보여줘야 하는지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애초에 방향도, 목표도, 평가 기준도 없는 시험이었다. 나는 매일 그 모호함 속에서 스스로를 시험했다. ‘이제는 보여줘라’는 말이 사실은 ‘나도 모르겠다’는 고백 같았다.
어느 날, "이제는 보여줘라"라는 말이 한 8번째 되던날, 더는 이 회사를 다닐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회사에서 쓸모없는 존재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고, 조용히 그만둘 결심을 했다. 그런데 그때 대표가 먼저 말했다. “이제 회사를 접으려고 해요. 제가 회사를 차릴 때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의외였다. 이상하게 나이스한 타이밍이었다. “좋을 때 헤어지자”는 말처럼, 우리는 그렇게 어색하게, 그러나 깔끔하게 끝났다. 전 직원이 권고사직을 받았다.
그렇게 첫 권고사직을 당했다. 생애 처음으로 실업급여를 신청했다. 그 서류를 작성하는 내 손이 조금 떨렸다. 한 번도 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늘 일해야 했고, 일하지 않으면 불안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이렇게 7~8년을 안 쉬고 살았으면, 이제 나한테 휴식을 줘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이번에도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했다. ‘이건 도망이 아니라, 재충전이야.’ 그리고 그 길을 떠났다.
처음으로, 진짜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그렇게 나는 몽골로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