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을 다녀오면서 중국 비자가 풀린다는 뉴스를 보고 청두행 티켓을 바로 끊었다. 12월이었다. 고요의 계절이 끝나자마자 다시 움직이고 싶었다. 이번엔 도망이 아니라 도전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늘 그래왔듯이 그럴듯하게 포장된 또 다른 도망이었다. 다른점은 내가 도망치고있다는 걸 알면서도 도망간 것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정지된 시간 속에서 존재감을 잃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멈추면 사라질 것 같다.’ 그 불안이 나를 다시 길 위로 밀어냈다.
그즈음 나는 프리랜서, 1인 사업자, 크리에이터들이 모이는 자리에 자주 나갔다. 다들 각자의 세계를 짓고 있었다. 누군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누군가는 콘텐츠를 팔며, 또 누군가는 SNS에서 자신을 하나의 매체로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혼자였지만, 이상하게도 강해 보였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묘한 열등감과 동경을 동시에 느꼈다. 자유롭게 보였고, 통제 불가능한 세상 속에서도 자기 일을 꾸려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대화는 늘 비슷했다. “나는 회사에 속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시간을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요.”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는 이렇게 되묻곤 했다. 정말 통제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통제되고 있는 착각일까?
그들은 자유를 말했지만, 나는 그 안에서 또 다른 불안을 보았다. 나 역시 그 자유를 욕망했지만, 사실 그건 ‘불안의 다른 얼굴’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결국 책임도, 불안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도 혼자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평가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나만의 시스템으로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다짐 역시 도망의 다른 형태였다. 회사라는 불안한 구조를 버리고, 더 작고 안전한 나만의 구조를 만들려 했던 것뿐이다.
그 즈음, 나는 또 다른 국내 여행을 떠났다. 내가 부릴 수 있는 사치는 거창한 게 아니었다. 타 지역에서 ‘이방인’이 되어보는 것, 그게 전부였다. 익숙한 얼굴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고,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립된 채로 지내며 나는 스스로를 시험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있을까,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 곳에서도 나로 존재할 수 있을까.
하지만 고립은 곧 불안을 불러왔다. 처음엔 여유로웠지만, 시간이 지나자 낯선 공기 속에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멈춰야 할 때 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쉴 수 있을 때조차 무언가를 해야만 마음이 놓였다. 여행지에서도 머릿속은 늘 해야 할 일로 가득했다. 창문 밖 풍경을 보며 ‘이건 나중에 콘텐츠로 써야겠다.’ ‘이 감정은 카피로 남겨야겠다.’ 생각했다. 요즘의 쉼은 진짜 멈춤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또 다른 과제’처럼 느껴졌다. 휴식도 증명해야만 의미가 생겼다.
하루는 숙소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봤다. 아무 약속도, 아무 마감도 없는 날이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 불안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오늘 하루는 기록되지 않겠지?’ 그 공허함이 두려웠다. 결국 노트북을 켜고 또 무언가를 적었다. 나를 괴롭힌 건 일이 아니라, 일을 멈추면 사라질 것 같은 공포였다. 나는 쉼마저도 일의 언어로 환산하며 살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도전하지 않은 게 아니라, 편한 선택을 택했을 뿐이었다. 회피를 전략이라 부르고, 불안을 효율이라 포장했다. 나를 지키려 만든 시스템은 결국 나를 감시하는 구조가 되어 있었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의 이면에는 늘 통제와 두려움이 공존한다. 우리는 자유를 원하면서도, 그 자유를 관리할 구조가 없으면 견디지 못한다. 나 역시 그랬다. 회사를 떠나 얻은 자유를 또 다른 감옥으로 바꿔 살았다.
그 즈음, 그 모임에서 커뮤니티 기획자 한 사람을 만났다. 나는 브랜드를 만들어온 사람이었지만, 커뮤니티는 전혀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커뮤니티도 브랜드처럼 설계될 수 있을까? 그게 궁금했다. 하지만 시장은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기획자’라 불리고, 단톡방 하나만 열어도 ‘커뮤니티 운영자’라 했다. ‘진짜 커뮤니티’가 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A부터 Z까지 커뮤니티를 직접 만들어본 진짜 기획자와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그 말에 반응한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그리고 그해 12월, 나는 그와 함께 청두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