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도망치고 싶을 땐, 나와 함께 앉아요.

by Defin

그를 처음 만난 건, 몽골로 떠나기 직전이었다. 도망이라는 단어가 아직 내 삶의 습관이던 시절. 나는 늘 상황이 불편해지면 자리를 피했고, 감정이 복잡해지면 거리를 뒀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나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로 나를 불러냈다. “도망치지 말고 테이블에 앉아요.” 그가 내게 내건 단 하나의 조건이었다.


그의 말 속 ‘테이블’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감정이 어긋날 때마다, 서로의 생각이 부딪힐 때마다, 우리는 그 테이블을 ‘연다’. 피하고 싶을 때일수록, 그가 말했다. “지금은 앉을 때야.” 처음엔 그게 너무 버거웠다. 나는 갈등을 싫어했다. 갈등은 곧 거절이고, 거절은 상처로 이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언제나 미리 물러나며 다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불편한 대화를 끝까지 앉아 있었다. 침묵이 흘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게 그가 내게 보여준 가장 큰 용기였다.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갈등을 견디는 힘이 사랑의 모양일 수도 있다는 걸. 사랑은 좋은 기분의 연속이 아니라, 불편함을 견디는 연습이었다. 그는 내가 세상으로부터 숨기던 내 민낯을 거울처럼 비춰줬다. 나는 늘 나를 단단하게 보이고 싶어 했지만, 그 앞에서는 힘없이 무너졌다. 그는 그런 나를 꾸짖지 않았다. 다만 말했다. “괜찮아요, 그게 당신이에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와 함께하면서 처음으로 도망이 회피가 아닌 ‘자각’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도망치고 싶어 했지만, 이제는 그걸 알고 있었다. 자각한 도망과 그렇지 않은 도망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선택이고, 후자는 반사다.
이제 나는 내 도망을 스스로 인지한다. 그걸 ‘또 도망치네’ 하고 웃을 수 있을 만큼은 자랐다.
그가 내게 가르쳐준 건 도망을 멈추는 법이 아니라, 도망을 인정하는 법이었다. 그는 내 안의 수많은 변명과 거짓된 단단함을 하나씩 무너뜨렸다. 그 덕에 나는 조금은 덜 단단하고, 조금은 더 유연한 사람이 되었다. 도망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부끄럽지 않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도망의 종착지가 아니라, 도망의 리듬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언제 멈추고, 언제 돌아서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는 그냥 앉아 있어야 하는지를 배웠다. 청두 이후로, 우리의 대화에는 늘 ‘테이블’이 있었다. 감정이 삐걱거릴 때면 우리는 그 테이블을 연다. 감정의 모서리를 닳게 하며, 서로의 결을 맞춘다. 그 자리에서는 이기려 하지 않는다. 그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내 마음의 진짜 모양을 꺼내놓는다.


가끔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기만 해도 된다. 그 침묵조차 대화의 일부가 된다. 그 테이블 앞에서 나는 늘 작아진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작아짐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그건 사랑이 주는 가장 조용한 형태의 안정이었다.


그와 함께한 시간 동안 나는 나의 회피를 직면으로, 도망을 성찰로 바꾸는 법을 배웠다. 그는 강하다고 생각하며 독기로 똘똘 뭉쳐있던 나를 말랑말랑하게, 약해지게 망치러 온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를 완성시키러 온 사람이었다. 그의 존재는 불편함을 데리고 왔고, 그 불편함이 나를 자라게 했다.

이제 나는 안다. 도망을 멈추는 건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 테이블에 앉기로 결심하는 순간이라는 걸. 그의 곁에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도망치지 않고 머물 줄 알게 되었고, 불편한 대화를 견딜 만큼의 용기를 배웠다. 이제는 도망이 나의 습관이 아니라, 선택이 되었다. 그와 함께라면, 나는 어떤 테이블 앞에도 앉을 수 있다. 그가 내게 남긴 건 단 하나의 약속이다.


“도망치고 싶을 땐, 나와 함께 앉아요.” 이제 나는 그 약속의 의미를 안다. 사랑은 결국, 도망치지 않는 사람들의 대화라는 걸.

keyword
이전 08화고요는 혼자가 아니라,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 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