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의 온도는 따뜻했지만, 세상의 공기는 여전히 차갑다.”
청두에서 돌아온 뒤, 나는 그와 함께하는 삶을 막연히 그렸다. ‘같이 일하면 어떨까’, ‘나도 프리랜서로 살아볼까’.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속에서는 반대의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미 자유의 세계에 있었고, 나는 여전히 불안의 세계에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적어도 한 명은 회사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가 프리랜서이니 나는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근거 없는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겼다. 그렇게 나는 피해 다녔던 조직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회사에 들어가기 전, 나는 이력서를 쓰며 몇 번이고 그의 ‘진실의 방’을 떠올렸다. “당신은 어떤 사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나요?” 그 질문 앞에서 늘 말문이 막혔던 나였다. 이번엔 보란듯이 대답하고 싶었다. ‘회사에서의 나’를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수십 번 자기소개서를 고치고, 면접 질문을 시뮬레이션하며, ‘온전한 나’로 보이기 위해 기꺼이 그의 진실의 방에 들어가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에게 자격지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에게 그는 너무나 단단하고 명료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고, 말에는 늘 근거가 있었다. 반면 나는 늘 불안했고, 감정에 휘둘렸으며, 뾰족한 질문 앞에서는 금세 작아졌다. 그에게 존경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스스로 나를 비교했다. 나는 그처럼 단단하지 못했고, 어떤 문장으로도 나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나도 그와 같은 위치에 서서 같은 풍경을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를 닮고 싶었지만, 닮을 수 없다는 절망 속에서 나는 더 열심히 ‘괜찮은 사람인 척’ 해야 했다.
입사 직전, 그는 내가 면접을 본 회사의 재무제표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난파선이야.” 그리고는 덧붙였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봐야 아는 거야?”
나는 웃으며 “아 들어가봐야 아는거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길을 택했다. 이상하게도 그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지름길이 회사에 들어가는 거라고 믿었다. 그가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일하듯, 나는 조직 안에서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들면 언젠가 같은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알면서도 그 난파선에 올랐다. 도망이 아니라 증명이라 믿으며, 사실은 여전히 ‘그와 함께’라는 희미한 희망 하나를 품고.
그리고 마침내 들어간 회사는 그의 예상처럼 무너지는 중이었다. 입사 첫 달,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 ‘잠깐의 오류겠지’ 생각했지만, 두 번째 달도 마찬가지였다. 직급은 대리였지만, 하는 일은 과장과 팀장의 중간쯤이었다. 보고서는 내가 쓰고, 일정은 내가 조율했다. 나를 뽑은 전무는 입사 일주일 만에 본인은 퇴사한다고했고, 남은 사람들은 이방인인 나를 배척했다. 내 위에 상사도 없지만 그렇다고 나를 믿어주는 후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든 나를 끌어내리기위해 호시탐탐 내 실수를 보려는 팀원들 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잔소리하는 사람이 하나 들어온 것 뿐이엇다. 때문에 나는 부족해 보이지 않으려 괜찮으려 하루하루 한치의 실수라도 용납하지 않으려 버티고 있었다.
큰맘 먹고 들어간 회사는 난파선이었다. 모두가 각자의 구명보트를 찾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이번엔 참지 말자’고 다짐했다. 요리할 때처럼, 주방에서 욕을 먹을 때처럼, 참지 못할 걸 무리해서 참지 말자고. 하지만 사람은 참는 법을 한 번 배우면 쉽게 버리지 못한다. 괜찮은 척, 웃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그 모든 척이 나를 다시 지치게 했다.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의 구조적 문제나 상사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더는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았다. 퇴사서를 내던 날, 그가 말했다. “잘했어.” 그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러나 동시에 불안이 밀려왔다.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이번엔 도망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선택의 끝은 여전히 불안이었다.
그렇게 더이상 도망칠 수 없다고 생각해 이제는 맞닥뜨려보자 해서 프리랜서를 준비하던 중, 운 좋게 첫 외주를 수주했다. 대행사를 끼고 시작된 대기업의 사이드 프로젝트였지만, 나는 그것을 내 인생의 전환점처럼 느꼈다. 밤새워 기획안을 쓰고, 브랜드 콘셉트를 잡고, 클라이언트 미팅을 하며 다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이제 진짜 내 길을 찾은 걸까?’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드디어 도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를 지켜주는 회사가 없는 프리랜서의 현실은 참담했다. 계약금은 늦게 들어오고 심지어 깎으려고 들었고, 수정 요청은 끝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을’이었다. 조직을 벗어났지만, 관계의 구조는 그대로였다. 프리랜서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누군가의 기분과 일정에 맞춰야 했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겠다던 다짐은, 여전히 타인의 판단에 흔들렸다. ‘이건 프리랜서가 아니라 1인 기업형 노동자잖아.’ 스스로에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은 이상하게 버텨졌다. 새벽까지 일하고, 납품하고, 다음 날 다시 일어나 또 일했다. 무너질 것 같은 순간에도 몸은 알아서 움직였다. 완전히 괜찮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았다.
어떤 날은 그렇게 생각했다. ‘삶은 결국 버티는 사람의 몫이구나.’ 누군가는 잘 나가고, 누군가는 흔들리지만, 결국 살아남는 사람이 이긴다. 그게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신념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버틴다는 건 꼭 강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건 그저 오늘만큼은 끝내고 싶지 않았던 마음의 다른 이름이었다. 내일은 모르겠지만, 오늘은 아직 도망치지 않겠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 하나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퇴사 후 첫 외주를 끝내던 밤, 그에게 말했다. “나는 알고보면 회사보다는 회사 밖에서 더 쓸모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몰라.” 그는 짧게 답했다. “무너져도 버티는 게 1인 사업자지.”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그래, 나는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엉성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내 삶이 그렇게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았다. 무너졌다는 건 끝이 아니라, 다음 장의 시작이라는 걸. 도망의 끝은 늘 다시 시작이었다. 나는 여전히 서툴고 불안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다시 일어설 자신이 있다는 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