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죽은 자들
우연은 조용히 찾아와 기이한 길을 타고 흐른다. 이 순간도 그 흐름의 한 조각일까.
살아있다는 것은 단지 육체의 기계적 움직임에 불과했다. 내 영혼은 오래전에 죽었다. 그러나 그 죽음의 경계가 무너진 것은 아마도 오늘, 이 알 수 없는 숲에서였을 것이다.
낯익은 얼굴이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났다. 그녀는 초콜릿 책방에서 봤던 그 눈빛, 날카롭고 차가운 그 눈빛은 내가 이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그녀가 내게로 다가왔다. 그 발걸음은 고요했고, 어둠이 그녀의 뒤를 따라 함께 움직이는 듯했다. 불멧돼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숨겨진 진실을 느꼈다. 내가 도망치려 했던, 마주하지 않으려 했던 진실이 바로 그 앞에 있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울렸다. 익숙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차가운 이질감이 스며 있었다.
그녀가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손 안에는 반짝이는 금속이 들려 있었다. 이 송곳은 진실을 꿰뚫는 무기였다.
"이걸 받아요."
송곳이 내 손에 닿는 순간, 차갑고 단단한 금속의 감촉이 내 심장을 얼려버리는 듯, 오랫동안 외면해 왔던 진실이 나를 덮치려 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진실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불멧돼지의 손을 계속 잡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이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지만, 더는 그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의 손을 놓고, 그를 향해 송곳을 들어 올렸다.
불멧돼지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 끝을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사람의 무거운 고통 같았다.
그의 시선을 피해 송곳을 들어 올리자 그의 눈 속에 가라앉은 고통이 내 안으로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심장은 숨 가쁠 정도로 뛰었고, 손에 든 송곳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긴 어둠 속 함께 헤매어온 길 끝에서, 나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숨결이 교차하는 찰나, 그 속에는 많은 말들이 묻혀 있었다.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 감추려 했던 마음들, 다가온 끝까지도 풀리지 않을 것들이.
나는 단숨에 송곳을 그의 살 속에 깊이 내리꽂았다.
입맞춤 속에서 그의 신음이 억눌렸고, 고통과 배신이 뒤섞인 숨결이 내 안을 휘저었다.
송곳이 그의 피부를 뚫고 그 아래의 근육을 지나 위를 통과해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송곳의 끝이 췌장까지 닿는 것을 느꼈다. 금속이 내뱉는 피비린내와 고통스러운 침묵 끝에 불멧돼지의 신음소리가 짧게 터져 나왔다.
몇 초 후 불멧돼지는 강하게 몸을 떨었다. 그의 숨소리는 억눌린 고통 속에서 무겁게 터져 나왔다. 나는 그의 입술을 놓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나를 밀어내려는 듯했지만, 그의 손은 나를 잡아두었다. 그의 손이 내 등을 강하게 붙잡았다. 피가 그의 옷을 적셨다.
"늦. 었네…"
그가 무언가 힘겹게 속삭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끝나지 못했다.
나는 송곳을 그의 배에서 뽑아 들었다. 그의 몸이 앞으로 무너져 내렸다. 피가 손을 타고 흘러내리며 바닥을 적셨다. 그러나 그의 눈은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순간, 그는 나를 놓지 않았다. 우리 사이의 마지막 남은 연결은 끝까지 끊어지지 않았다.
깊은 어둠이 몰려올 때,
우리는 말없이 길을 잃으리라.
눈 감은 발자국처럼,
흔적 없이 남으리라.
바람은 삼키려 하고,
달빛은 상처를 드러내리.
어둠 속에 갇힌 빛 아래,
우리는 죽은 그 이름을 부르리라.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는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다. 그의 눈빛 속에는 이해와 함께, 말할 수 없는 저항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의 숨은 천천히 끊어졌고, 나는 그의 마지막 숨결을 느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그를 찔렀지만, 그는 언제나 죽음과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원했던 진실이 무엇인지를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믿었던 진실은 그저 시작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 뒤에 더 깊고 어두운 진실이 숨겨져 있었다.
나는 어떤 진실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제 그 어둠 속으로 더 깊이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