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 다녀온 덕유산 설산. 내가 왜 이곳을 이제서야 왔나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봄 여름 가을 공원 산책길에서 만났던 선명한 색들이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과는 너무나 다른... 차분하고 진하면서도 따스하게까지 느껴지는 이 기운을, 나는, 스마트폰 사진으로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곳만큼은,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은 걸 평생 두고두고 후회할 것만 같아, 다시 올 겨울엔 꼭 카메라를 들고 가야 진정되겠다 생각했다.
그만큼, 내가 만난 덕유산 설산은 온통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향적봉에 오르는 흙길, 등산길, 계단길 그리고 그 옆에 빼곡히 자리잡은 나무의 줄기며 나뭇가지까지 눈이 가득했다. 눈에 덮였다고 나뭇잎 하나 없이 초라한 듯한 나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또 눈에 가려졌다고 산의 실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하지만, 겨울산을 마주하는 이곳에서는 모든 게 새롭고도 아름답기만 했다. 꽃눈 만발한 듯했던 나무도 거대한 목화 꽃동산을 오르는 듯했던 산도 그리고 그로 인해 새해 새로운 변신을 할 것만 같은 꿈을 꾸고 돌아온 나도.
그렇다.
눈,에 덮인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눈,을 다시 뜨고 바라보면 분명 달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눈,을 새롭게 하는 날 내가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따스한 삶도
눈,을 뜰 것이다. 그러니, 지난 마음을 겨우 안고 새해를 나아가고 있다면
새 눈,을 열고 다시 걸어보시기를. 오늘부터.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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