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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 위 취준생 Nov 16. 2019

詩:界_시계(6)
'오늘도 나름 괜찮은 하루였다.'

침대 위 취준생의 시 모음집

오늘도 나름 괜찮은 하루였다.


 '띠- 띠-- 띠-'

 불규칙적인 기계음과 함께 눈을 떴다. 알람을 끔과 동시에 불안한 기운이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과 같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오전 9시 반, 오전 수업에 지각하였다. 씻지도 못하고 부랴부랴 모자를 눌러쓰고 학교로 향했지만, 교수님께서는 이미 출석을 부른 뒤였다. 교수님은 뒷문으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들어온 나를 힐끔 한 번 쳐다보시고는 계속 수업을 해나가셨다.


 아침도 거르고 뛰어오느라 배가 많이 고팠건만 교수님은 보통 끝낼 시간을 넘겨 수업하셨다. 알람은 아침에 껐건만 배꼽시계의 알람은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 겨우 수업이 끝난 뒤 홀로 단골 식당으로 향한다.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우니 살 것 같았다. 박하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식당 이모의 배웅을 들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으려는데, 어깨에 잡혀야 할 가방끈이 손에 없다. 아! 그제야 식당 의자에 걸어둔 가방이 생각났다. 어쩐지 집으로 오는 길 어깨가 매우 가벼웠다. 단지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서 그런 줄 알았건만. 한숨을 쉬면서 벗으려던 겉옷도 다시 챙겨 입고 가방을 찾으러 뛰어갔다.


 식당으로 다시 달려가는 길, 느닷없이 주차된 트럭 아래에서 얼룩덜룩한 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정말 순식간이라 너무 놀라 멈추려던 발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하필 그런 내 모습을 누군가 보았고, 창피했던 나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려 고개를 떨군 채 다시 달렸다. 속으로는 고양이를 떠올리며 욕하고 있었다.


 다행히 가방은 식당에 얌전히 있었다. 잘 챙기고 다니라는 식당 이모의 엄마 같은 잔소리에 실없이 웃어 보이며 다시 집으로 향했다.


 힘없이. 터벅터벅.


 가방을 다시 보았을 때만 해도 몰랐는데, 돌아 나와 몇 걸음 못 가 욱신거리는 다리를 보니 바지는 찢어져 있었고 상처가 났는지 쓰라림이 다리를 타고 미간으로 전해져 절로 얼굴을 찡그리게 되었다.


'하-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없구나...'

출처불명, 밤 그리고 거리의 가로등

 힘없이 걷던 길에 가로등은 깜빡였고 하늘을 원망하려 했을까, 시선을 돌린 하늘에선 커다란 달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본 게 얼마 만일까, 드문드문 별들도 보였고 나는 별과 달 사이에 끼고 싶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다시 천천히 집으로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평소에는 조느라 집중 못 했던 수업을 늦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집중해 들어도 보았고, 길어진 수업은 배를 더 고프게 했지만, 덕분에 단골 식당 이모의 음식 솜씨를 새삼 더 좋다고 느꼈으며, 가방을 가지러 가던 길 갑자기 뛰쳐나온 고양이는 너무나도 귀여웠다.


 집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으며 나는 다시 생각했다.


'그래, 오늘 하루도 나름 괜찮은 하루였던 것 같아.'


2018.xx.xx. 22시

-완벽하지 않지만 괜찮았던 하루에 쓰는 일기-


놀이공원

출처불명, 놀이공원의 대관람차

세상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어진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떨구고

시선은 땅을 향한다.

사람들은 힘들어도 지쳐도

고개를 들라고 한다.

어쩌겠는가,

세상이 이리도 무겁게 짓누르니

고개를 떨구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지금.


고개를 들 용기가 없다면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놀이공원으로 가보자.

혼자라도 좋다.

아니 혼자이기에

당신의 삶에 찌든 지금의 모습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 있어 좋을지도.


높은 하늘까지 닿는

대관람차에 몸을 싣고

다시금 고개를 떨구어 보아라.

당신이 여태껏 봐왔던

지저분한 땅들과는 달리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웃음이 만연한 세상을

새로이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힘들고 지칠 수 있지만

좌절보다 행복함을 찾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웃음을 지을 세상을 볼 수 있다.'


한숨


그대 무슨 힘든 일로

바다보다 깊은 한숨을 쉬나요.

그대 어떤 슬픈 일로

먹구름 잔뜩 낀 하늘처럼 한숨을 쉬나요.


그대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가득한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하겠으나

잠시 내 말을 들어봐요.


지금의 한숨으로

어두운 감정을 모두 내뱉고

한숨만큼 깊은 들숨을 들이쉬어요.


한숨은 그대를 절망하게 하기보다

폐가 꽉 차 저릿할 만큼

들숨을 들이쉬기 위한 발구름이에요.


'그러니 그대여 고개를 들고

이번엔 들숨을 힘껏 들이쉬어요.'


비탈길

출처불명, 회색빛 비탈길

우리 집은 저 멀리

하늘과 가깝게 비탈길 위에 있다.

차도 들어올 수 없는 좁디좁은 골목을

달빛이 가장 밝게 비추는 비탈길 위에 있다.


하루의 끝은 언제나

저 높고 먼 길을 오르며

하루의 고단함을 하나둘씩

버리는 것으로 맺는다.


그래야만 내일 아침,

어젯밤 힘들게 오른 비탈길을

후련한 기분으로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비탈길 또한 오를 때는

집을 오르는 길보다 힘들겠지만

언젠가 그 위에서 바라보는 아래는

전과 같은 각도로 기울어진 길임에도

전과 다른 기분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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