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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 위 취준생 Nov 17. 2019

詩:界_시계(8)
'너를 내게 담았다.'

침대 위 취준생의 시 모음집

너를 내게 담았다.


 요즘 사진을 즐겨 찍기 시작했다. 학생 때는 그저 친구들과 놀러 간 곳에서 추억을 남기기 위해 몇 장 찍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혼자 길을 걷다가도 풍경, 맑은 하늘, 묶여 있는 자전거, 거리에 있는 표지판까지 다양하게 찍게 되었다. 서울에 잠시 올라가 생활할 당시, 사진을 찍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일상을 찍어 기록하는 친구,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고 전시도 하는 친구까지. 사진에 특별하게 관심이 없던 내가 주변을 남기려 하고 싶어진 계기가 되었다. 그들의 사진 속에는 그날의 감정이 담겨있었고,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201x.xx.xx 이런저런 사진을 찍게 되었다.

내가 활자로 그날의 감정과 이야기를

조심스레 담아내는 것과 닮아서

더 쉽게 빠져들게 된 걸지도 모른다.


 대장님(필자의 여자친구)은 이런 나와 달리 사진 찍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데이트하는 날, 맛있게 먹은 음식이며 아기자기하게 나온 카페의 와플, 지나칠 수 없는 포토존. 그곳의 사진은 대부분 내가 찍은 것들이 많았고, 어쩌다 그녀가 찍더라도 자신의 부끄러워하는 모습은 남기지 않았다. 나는 충분히 그녀를 이해하면서도 아쉬웠다. 서로가 떨어져 있는 시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감정 따라 변하는 다양한 표정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그녀의 맑은 눈을 볼 수 없다는 게 내겐 큰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그래서 나는 몰래 그녀를 담았다.


 영화에 집중하느라 동그래진 눈, 항상 같이 밥을 먹을 때면 내게 먼저 주고 따라 먹을 때 우물거리는 모습, 퇴근 후 피곤할 법하건만 나를 보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주는 미소. 그리고 사진으로 찍었다면 담지 못했을 머릿결을 따라 내려오던 샴푸 향과 그녀가 바르는 핸드크림의 향까지. 나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그녀를 내게 담았다. 이제는 목소리만 들어도 휴대폰 너머로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퇴근길 차 안에서 간식을 먹는 그녀의 볼의 움직임까지 생생하게 눈에 보였다. 물론 사진으로 찍어 남길 수 있다면 그것대로 좋았겠지만 지금도 충분히 그녀를 남길 수 있어 행복했다. 적어도 내 마음에는 정해진 용량이 없기에 지워질 걱정은 없으니까. 늦은 밤 떨어져 있어 외로워질 때면 이따금 꺼내 보고 행복한 기분으로 잠들 수 있었다. 내게 담긴 그녀는 사진보다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나의 시선이 머물러 있는 사람,

그 사람의 시간은 가슴 속에 멈추어

언제까지고 내게 행복을 안겨준다.


카메라

2019.10.04. 서면의 한 카페

날이 좋아 카메라를 챙겨 산책을 나선다.

길가의 이름 모를 꽃

분수에서 뿌려지는 물줄기

저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를 찍는다.


한참을 걷다가 공원 벤치에 앉아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살펴본다.


어떤 사진은 초점이 가까이에,

어떤 사진은 초점이 저 멀리에


수많은 사진들 중

의도치 않은 초점으로 찍힌 사진에는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세상은 항상 보이는 것과 같지만은 않았다.'


너라는 풍경

2018.06.23. 홍대 어딘가 지하 펍

저 멀리서 흐릿한 초점을 잡아도

바로 내 앞 가까이서 가득히 담아도

이리저리 맞추어야

아름다운 사진이 찍히는 카메라와 달리

나의 눈에 담기는 너의 풍경은


'그저 언제나 그렇듯,

사랑스레 설레었다.'


튀어나온 못

2019.04.08. 대마도,  노인과 그의 친구

거닐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지나던 길 내 오른편의 벽에는

녹이 슨 못 하나가 툭- 튀어나와있다.

벽 뒤의 공원이 보여주는

초록색의 청량함과는 다르게

이질감을 잔뜩 짊어진 채로

못은 꼼짝하지 않고 박혀있다.


지나는 사람마다 못을 보고

구부려야 한다고, 뽑아야 한다고

그 위를 다시 찬 시멘트로 덮어야 한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지나친다.


나는 못 너머의 공원을 사진으로 찍어

집으로 돌아가 작은 액자로 만들었다.

다음날 같은 자리에 그대로 박혀있는 못에

작은 액자를 걸어주며 말했다.


"작은 못아, 기죽은 채 박혀있지 마라.

너 또한 이제는 푸른 나무를 걸쳤으니

네 모습이 부끄러워 더 검어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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