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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 위 취준생 Nov 17. 2019

詩:界_시계(7)
'저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침대 위 취준생 시 모음집

저는 게으른 사람입니다.


 2019년 11월 16일 밤 9시. 나는 하루에 시 한 편씩, 377편의 공개된 시와 비공개 글까지(다듬고 있는 여분의 시) 총 283편의 글. 시간으로는 1년하고도 17일 꼬박꼬박 시를 써오고 있다. 글을 올리면 사람들은 나에게 부지런하다, 대단하다, 계획적이다고 응원하는 댓글을 달아주신다. 댓글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답글을 달면서도 무언가 찝찝하다.


한가지 분명한 건 나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 조금이 아니라 많이.


 나의 게으름은 글을 쓰는 것 외에서 드러난다. 밥을 먹으려 하면 숟가락과 젓가락은 매번 설거지가 되어 있지 않아 배가 고파도 설거지부터 하여야 밥을 먹을 수 있었고, 집으로 온 택배는 당장 급하지 않은 것이라면 현관에 그대로 두었다. 레고와 피규어를 좋아하여 모으는 것은 좋아하지만, 선반에 전시해두고 잘 닦지 않는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으면서 자기소개서는 항상 마감 당일 아슬아슬한 시간에 제출한다. 예전부터 밖에 나가기를 싫어하여 집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 대부분이고 특별한 일 또한 적어도 3일 전에는 약속을 잡아야 나간다. 최근 포스트잇에 시를 써서 이곳저곳에 붙이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내일은 꼭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날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2019.11.xx 포스트잇 시를 이곳저곳에 붙였다.다만 잉크는 적어도 일주일 전의 잉크이다.


 이렇게 게으르게 살아오던 내가 글만큼은 부지런히 쓰는 이유. 그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마저 게을리한다면 나는 머지않아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마음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생각이 들었을 때는 군대를 전역한 해였다. 남자들이라면 '전역 버프'라는 말을 알 것이다. 나 또한 군대를 전역한 해에는 수업을 착실히 잘 들었으며, 하지 않던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여 좋은 성적을(이전의 성적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전역 버프'라 불리는 것은 짧으면 반년 길어도 1년을 넘겨서 남아있는 경우가 없어, 그 뒤로는 매달릴 무언가가 사라지게 된다.(나는 반년 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공부를 놓았다.) 점점 몰두할 것을 잃어가던 나는 게을러졌으며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분명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만 남은 사람이 될 것을 직감하였다.


 처음에는 음악을 시작하였다. 때마침 케이블 방송에서는 힙합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고, 즐겨 보던 나는 음악을 시작하였다. 작사도 하고, 멜로디를 입히고, 녹음하고,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음악에 재능이 없음을 자각하고(사실 일찍 알았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주춤하였다.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써놓은 가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굳이 음악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지금 쓴 가사, 자체로도 적당히 괜찮은 것 같은데. 그날 나는 고등학생 때 다니던 논술에서 시를 쓴 경험, 그 뒤로도 이따금 써둔 시들을 모아둔 공책을 잃어버려 글을 쓰는 것을 멈춘 기억을 떠올렸고,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껍데기만 남지 않기 위해 매달리기 시작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고 때마침 글쓰기였을 뿐, 나는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행히 시를 쓰는 것은 즐거웠다. 그냥 내 감정을 써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라고 불릴만한 글이 되어 복잡하지도 않아서 특별히 어려운 점도 없었다. 글을 쓰는 것에도 특출난 재능이 없음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음악과는 다르게 글을 쓰는 것에는 재능이란 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좋은 글은 화려하거나, 어려운 말들이 잔뜩 쓰인 글이 아니다. 누군가 읽었을 때에 공감할 수 있다면, 그리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글이었다. 나는 누구나 쓸 수 있는 내용의 시를 썼고, 그렇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썼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데 부지런히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에 한 편의 시를 꼬박꼬박 쓰기 시작했고, 1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내 생활은 변함없이 게으르다.(그래도 요즘은 청소도 잘하고, 산책도 예전보다 자주 나간다. 글을 쓰면서 걷고 싶은 날들이 많아졌기에.) 나에게 부지런하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앞으로도 나는 껍데기로 남지 않기 위해서라도 글을 쓸 것이다. 하루에 한 편씩. 스스로 부지런하다고 느껴질 만큼 꾸준하게.


나는 여전히 게으른 사람이기에 부지런히 글을 써나갈 것이다.


날마다


오전 7시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는다.

오전 10시 모두가 집을 비운 뒤

나 혼자 남아 책을 편다.


오후 12시 30분 배가 고파오자

어제와 똑같이 라면을 끓여 먹고

오후 5시 하던 공부를 접고

잠시 누워 낮잠을 잔다.


저녁 6시 30분 낮잠에서 깨고

다시 모인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저녁 8시 소파에 누운 채

텔레비전을 보며 가족끼리 수다를 떤다.


밤 9시 가족들 모두 하품을 하며

방에 들어가 침대에 몸을 뉘이고

밤 10시 내일 하루는 다르게 살겠노라

다짐하면서 잠이 든다.


'시계가 없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날마다, 날마다 반복되는 지금의 하루가'


알람

2019.11.16 밤 9시 반 글을 쓰던 나.

띠 - 띠띠

아침부터 들려오는 규칙적인 기계음은

나에게 기상 시간을 알린다.


알람이 울릴 때에 일어나지 못하면

오늘 하루 계획했던 일들을

제 때에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머리로는 일어나라, 일어나라!

계속해서 명령하지만

어리석은 나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계속해서 타협한다.


시간의 이질감에 눈을 떴을 때엔

아차 -!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삶이 그러하다.

규칙적인 기계음이 아니어도

누군가가 혹은 무언가가

당신의 삶에 경고하듯

일어나라고 했을 것이다.


그것과 타협하지 마라.

알람의 경고를 무시한 채

나태함과 타협하는 순간

당신의 삶은 무너지게 된다.


'일어나라!'


가끔씩은

2019.11.17 새벽 1시 여전히 글을 쓰던 나.

매일매일을 시계가 째깍이는 대로

해와 달이 뜨고 지는 대로

그저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내일 하루는 어떨지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어제의 시간과 다를 바 없을 테니


가끔씩은 평소와는 다르게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보고

가끔씩은 평소와는 다르게

여태 걷지 못한 곳까지 걸어보고

가끔씩은 평소와는 다르게

처음 보는 사람들과 연을 쌓아보고


그렇게 조금씩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오늘과 다른 내일을

쌓고, 또 쌓아가다 보면

오늘 하루는 어제보다 새롭고

내일 하루는 오늘보다 새롭겠다 기대하고


'그렇게 가끔씩

다르게 살아온 하루들이 모여

평생 우리에게

의미 있는 날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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