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5일 아침・대전 낭월동>
민주는 군용 야상 자락을 털며 자리에 앉았다.
매일 다른 스타일의 야상이 민주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가끔은 스타일리시하게 허리를 조인 베이지 야상, 가끔은 진짜 전투용 뻣뻣한 카키 야상. 오늘은 그 사이 어딘가였다.
민주가 자기 사무실인 양 믹스커피를 타서 앉으며 물었다.
“탄 오빠! 무슨 일이야?”
“다 봤잖아.”
“봤지. 근데… 지하에 갖다 버린 놈은 누구야?”
탄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제 아침, 아버지와 동생이 탄 차량을 덮친 덤프트럭 이야기.
대전병원으로 후송했지만 아버지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동생도 크게 다쳐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 어젯밤 광주에 내려가 사고를 내고 사라진 덤프트럭 운전기사를 찾아내 생포해서 끌고 온 이야기.
그리고 그 놈의 목덜미에 새겨진 문신.
R.K.
탄의 이야기가 끝나고도 사무실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양헌과 민주, 둘 다 말은 없었지만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김양헌. 별명 ‘쇳덩이’.
어릴 적, 아버지가 싸들고 다니던 녹슨 공구함 냄새를 좋아하던 아이.
‘소리가 나는 것보다 소리를 내는 구조가 더 재밌다’며 무전기를 뜯고, 장난감 총의 설계도를 그리던 소년.
그 소년은 자라서 UDT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미군과 연계된 민간군사기업(PMC)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시장에선 금지됐지만, 전장에선 꼭 필요했던 무기들’의 흐름을 체득했고, 지금 이곳 지하 무기창고를 운영하고 있다.
함민주. 별명 ‘야상’.
어릴 적부터 아빠의 야상을 입고 고물상에서 기계 부품을 분해하며 놀던 천재소녀.
초등학교 시절 PC방에서 게임 핵을 사용하다 적발돼 쫓겨났고, 중학생때 전국 해킹대회에서 입상하며 ‘화이트 해커’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는 ‘도깨비’라는 닉네임으로 대전 지역 해커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고, 보안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 유명세 덕에 대학생 때 국정원 산하 사이버보안 인턴 프로그램에 발탁되었다가 자신의 멘토이자 정보보안 분야의 전설로 회자되던 실무 트레이너가 개인정보 감시 프로그램을 악용하는 것을 내부고발했다가 조직에서 배척당하자 국정원을 떠났다.
그 후, 프리랜서 보안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그레이존’을 넘나드는 독립 해커가 되었다. 지금은 ‘다받아 고물상’ 2층에 독립 서버실을 구축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정보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다.
셋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양헌과 민주는 탄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이럴 땐 탄이 먼저 얘기하도록 두는 게 낫다는 걸 알고 있었다.
드디어 긴 침묵을 깨고 탄이 주먹을 불끈 쥔 채 말했다.
“부탁이 있다. 력이랑 윤이는 모르게 하자.”
“당근이죠. 꼬맹이들은 위험합니다.”
양헌과 민주가 한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