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 전공조작 꼬리는 잡았지만...

<1972년 4월 · 베트남 닌호아 미군부대>

by 부지깽이

장춘동이 하이난거리 립스틱클럽을 뒤지던 그 시각 미군 정보부 조사실.

형광등이 윙— 하고 신경질적으로 울었다.

오래된 전등은 마치 이 방의 공기를 짜내듯 잦은 깜박임으로 숨을 헐떡였고, 그 빛은 희미하게 떨리며 벽의 곰팡이 자국을 기괴한 그림자로 만들어 냈다.

창문은 없었다. 바깥세상과 철저히 단절된 콘크리트 감옥.

벽에는 오래 묵은 습기가 젖은 누더기처럼 번졌고, 공기는 눅눅하고 무거워 숨을 들이쉬는 것조차 심문처럼 느껴졌다.


방 한가운데, 무광의 철제 책상이 있었다.

의자 두 개는 마주 보았지만, 그 사이에선 대화도, 시선도 오가지 않았다.

침묵만이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어 마치 조사를 위한 방이 아닌 고요한 전장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책상 너머에 립스틱 클럽 사장이 앉아 있었다.

그의 반팔 셔츠는 빤 지 오래된 듯 꾀죄죄했고, 그의 몸은 등받이에 대지 못한 채 자꾸만 앞으로 기울어졌다. 책상 위에 올려진 두 손은 불안에 떨며 자꾸만 비벼졌고, 이마 위로는 땀이 실처럼 엮여 줄줄이 흘러내렸다. 그의 시선은 바닥에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고, 다리는 불규칙하게 파르르 떨렸다.

불안의 진동이 마치 바닥을 타고 리차드 쪽으로 번져가는 듯했다.


책상 이쪽에는 리차드 한이 있었다.

그는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두 팔을 조용히 책상 위에 올려놓고,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상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다.

살을 에는 바람보다 더 매서운 냉기, 눈동자 깊은 곳에 고여 있는 건 단순한 의심이 아닌… 차디찬 단호함이었다.

그의 입술은 굳게 다물린 채 단 하나의 말도 허락하지 않았고, 호흡조차 무감각한 기계처럼 조절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정적 속에서, 무언가가 설설 끓고 있었다.


단정한 얼굴, 깨끗한 셔츠, 억제된 동작의 틈새마다 기척 없이 스며드는 분노.

입 밖으로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자제력 너머로 느껴지는 고요한 격렬함은 이 방의 공기보다도 더 짙게, 더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이건 리차드 개인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의 분노는 뜨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건 오래 숙성된 냉정한 결의였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정의’라고 믿는 자만이 품을 수 있는, 차디찬 진노였다.

심장을 태우기보다 얼려버리는—그런 분노.


“장부는 어디 있지?”

리차드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절제된 울림이었지만, 그 단어들은 형광등보다 날카롭고, 더 정확하게 상대의 숨통을 조였다.


순간, 사내의 어깨가 움찔했고, 눈동자는 수면 위에 번지는 물결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그 동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곧 고개를 가로저으며, 마치 한숨을 내쉬듯 궁색한 변명을 내뱉었다

“몰라요… 난 그냥 연결만 해 줬어요. 진짜 거래는… 나도 몰라요.”


리차드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얼음 결정처럼 맑고 냉랭한 시선은, 숨조차 쉬기 버거운 심문실의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드는 듯했다.

그리고, 두 번째 칼날이 꽂혔다.

“누구와 연결해 줬지? 이름과 장소를 대!”

클럽 사장은 연신 마른 침만 삼키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장춘동 하사하고… 무기상. 근데 그 인간은 얼굴도 제대로 못 봤어요. 저는 그냥 중간에서 메시지만 전달했을 뿐이라니까요.”


그 대답이 끝나기도 전, 리차드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건 예상한 말이었다.

이 남자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진짜는—장춘동, 그리고 아직 그림자조차 잡히지 않은 그 무기상이었다.

장부도, 증거도, 실체도—모든 것이 아직 안개 속에 묻혀 있었다.


리차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방 안의 공기는 더욱 조여들었다.

클럽 사장은 고개를 떨구고 불안에 떨었다. 그 순간-

“됐다.”

그 말은 판결 같았다. 그리고 곧, 그의 손이 철문 손잡이를 잡았다.

크르륵—

쇳소리와 함께 무거운 철문이 천천히 열렸고, 그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 방을 나갔다.

조사실 너머, 진실은 여전히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이전 14화046. 린의 밤에 새벽이 깃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