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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02. 2022

영웅에게 필요한, 그것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단편 모음 <다이노소어 바바리안>을 보고

영웅 바바리안의 OST




그러게, 영웅들이 씻는 꼬락서니를 본 적이 없다.


그들은 감독과 작가들이 씻겨(?) 주었다. 스스로 씻는 행동을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이 없다. 그들도 분명 자신이 입은 갑옷, 휘두른 망치나 기타 무기들을 정비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그런 모습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적이 없다. 주인공 들은 항상 갖춰져 있었고, 갖춰진 채로 24시간을 살아가는 것도 부족하다 느꼈다. 어릴 적부터 그런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던 나에겐, ‘행동하는 것’으로 24시간을 채우는 것이 인생의 큰 목표이자, 어른이 되면 그래야 하는 이상점처럼 여겨졌다.


알고 보면 스파이더맨도 시민을 구하고 돌아와 침대에 누울 땐, 땀이 잔뜩 묻은 쫄쫄이를 빨래망에 던져두었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를 가족에게 공개하려 하지 않았기에, 아무렇게 던져두지도 못했겠지. 겨우 자기 방에 세탁망 하나 둔 채, 그곳에 빨래 여러 개를 쌓아두었다가 코인 빨래방에 가서 자신의 쫄쫄이를 빨았을 것이다. 건조기에도 돌렸을지 모른다. 그 시간을 기다리기 지친 나머지, 유튜브를 보거나 오락기를 두드렸을지 모른다. 그렇게 40분, 잠도 이루지 못하고 애매하게, 빨래만 가만히 지켜보아야 하는 새벽녘을 그 또한 보냈을 것이다. 그 시간대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나는 왜 이런 삶을 살고 있나’ 하는 자조적인 질문도 던졌을 것이다. 답이 없는 질문, 스스로의 힘을 쫙 빼는 질문을 하나 하면서 삶을 돌아봤을지 모른다. 그는 우울에 빠지진 않았을까? 스스로 일기를 쓰며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어 고군분투를 하진 않았을까. 그 또한 뉴욕에 사는 시민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영웅도 영 쉽지 않겠다 싶다. 자신의 능력을 100% 사용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도끼를 든 자들은 날을 매번 갈아야 할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자신의 거미줄을 만들 연료를 꼭 채워야 했을 것이다. 배트맨도 자신의 자동차 연료를 (석유인지 수소인지 전기차인지 모를) 열심히 채워야 했을 것이고, 캣우먼도 찢어진 자신의 가면을 수선했어야 할 것이다. 그 뿐인가, 매일 사건 현장에 올바른 시간에 등장하기 위해 대기해야 할 것이며, 그 전에 배고플까 미리 밥도 먹어두고 소화도 시켜두었어야 했을 것이다. 영웅들은 달리 영웅이 아니라, 그들의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쓴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을 위한 정리를 가장 잘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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