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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09. 2022

감독님, 이런 이야기를 왜 쓰셨죠?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단편 모음 <빗방울>을 보고

주연 빗방울이 탄생하고, 사회를 잠시 겪은 뒤 소멸하고, 다시 탄생하여 두 번째 삶을 살러 가는 모습을 그렸다.




디즈니 단편 모음 영상에는 감독들이 ‘어떤 생각을 하다가 이 스토리를 쓰게 되었는지’ 항상 설명해주는 부분이 있다. 이번 영상의 감독은 ‘돈’이 돌고 도는 것에서 착안하여, 돈 말고 다른 우리 주변에서 돌아다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 순환하는 또 다른 요소인 물, 그중에서 시작과 끝이 있는 빗방울에 대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짧은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 영상은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현실을 추상화한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사람의 관점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되었다고 상상하고 만들어본 ‘그냥 재미있고 귀여운 물체가 등장하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를 쓰고 영상화 한 뒤 결과물을 받아보았을 때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시도도 아니었고, 그의 관점을 예리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왜 만들었을까? 그냥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일까.


나는 빗방울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비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에게 비는 ‘하나의 거대한 폭포 같은 소나기’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폭포같이 많이 내리는 비를 우산도 없이 맞아본 경험도 몇 번이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빗소리’는 작은 빗방울 하나로 절대 만들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빗방울이 바닥과 만나는 마찰음, 하나가 아니라 수 만개의 빗방울이 한 번에, 무게 있게 하늘에서 땅 까지 내려가며 얻는 속도 덕분에 낼 수 있는 그 소리를 좋아했다. 만약 ‘비’를 그려보라고 한다면, 거대한 물 뭉텅이를 그릴 것이다.


여기서 감독이 이번 이야기를 쓰게 된 첫 번째 구간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감독은 입에 동전을 물고 있다가, ‘그게 어디서 온 줄 알고 입으로 물었느냐’와 비슷한 질문을 받았던 순간엔 착안했다고 했다. 빗방울은 결국 동전 한 닢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저런 모습을 띄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만약 그가 지폐를 가지고 있었다면, 동전보다 훨씬 크고 높은 가치를 지닌 종이 쪼가리를 가지고 있다가 동일한 질문을 받았다면 빗방울을 떠올리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오히려 나뭇잎 하나를 떠올렸을 수도 있다. 봄이 되어 나뭇가지에 걸린 이파리와 꽃이 등장하고, 이파리 끝에 성장이 멈추고 말라가는 시점이 잠깐 보이다가 다시 떨어져 그 나무의 거름이 되는 형태 말이다. 네모나고 가벼운 지폐가 주는 이미지가 그의 머릿속에 더 먼저 찾아왔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가 비트코인 거래하고 있던 시점에 그런 질문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게 어디서 온 줄 알고...’라는 질문을 들었다면, 그때는 비트코인의 특성과 비슷한 요소를 머릿속에 떠올렸을 것이다. 와이파이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인간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순환하고 있는 어떤 것, 미세한 전류를 떠올렸을 수도 있고 전자파를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이 영상의 제목은 <Rain drop> 이 아니라 <Wave>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겠다.


생각의 결과물을 소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 결과 역시 어떤 판단의 원인 또는 근거자료 정도가 되기 때문에, 그 생각을 한 이유를 들을 여유가 없었다. 아니 생각 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디즈니 단편 모음 영상 속의 ‘감독 이야기’는 너무나 소중하다. 감독의 의도를 읽으려는 게 아니다. 내가 감독이라면, 감독이 만약 이번 이야기를 쓰기 전에 다른 것을 겪었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을지 상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들 사는지 궁금한 요즘, 나에게 생각의 씨앗을 던져주는 영상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정말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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