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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Jan 30. 2024

끄-읕 맺음

가짜 성장 일지 #12

최근에 친구를 만났다. 한 달 썸 탄 사람과 끝을 맺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자기가 좋아서 시작했던 그 관계가 흐지부지 되었을 때, 스스로 끝을 맺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래서 상대가 점점 시야에서 흐려지고 없어지려 할 때, 머리끄댕이를 붙잡고 그에게 정리하자는 이야기를 던졌다고 했다.그 말을 한 순간 그가 참 멋있어 보였다. 그런 내게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내가 그걸 끝냈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내 손으로 마무리했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행동한 게 아니라 나 혼자 행동했다는 게 꽤 내게 큰 힘이 되더라.’

그 말을 하는 그의 눈은 참 많이도 반짝였다.


그런 그의 모습이, 그러니까 ‘스스로 끝을 맺기로 한 결정’이 얼마나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자양분인지 요새 조금씩 깨닫고 있다. 내가 시작한 수많은 일들, 그리고 내가 생각했을 때 허황된 목표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끝맺기 위해 다시 그 목록들을 뒤져보고 있다. 내가 지금껏 주변인들에게 해왔던 많은 목표들 가운데, 내가 정말 부끄럽지 않으려면 꼭 결과물로 만들어야 하는 그런 것들 말이다. 만들겠다고 했던 몇몇 목업들, 정리하겠다고 말한 유튜브 내용들, 매일 꾸준히 조금씩 하겠다고 했던 영어스피킹, 읽고자 했던 책들 말이다.


주말에 고요히 방에 앉아, 하고 싶은 것들의 리스트를 써 내려갔다. 이것만 하면 정말 행복할 거야,라고 스스로 몇 번을 되뇌었다. 그중에 <중요하고> <긴급한 것> 이 있긴 했는데, 왠지 그걸로 손이 가지 않았다.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덩어리가 크고 무겁기 때문에, 몇 시간을 투자해도 ‘뭔가 진행했다는’ 티도 잘 나지 않곤 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최근에 들었던 시간관리 강연자가 ‘중요하고 긴급한 것’부터 우선순위를 정하라고 했는데, 손이 안 가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중요하고 긴급한 것을 좀 더 쪼갰다. ‘숨 들이마시기’ ‘숨 내쉬기’ 수준으로 잘게, 그리고 너무나 당연한 스텝들로 가득 차도록 나누었다. 그 결과, 나의 리스트는 정말 길어졌지만, 중요하고 긴급한 것부터 할 수 있을법해 보였다.


한숨고르고, 중요한 것부터 시작했다. 내가 만들고자 했던 목업을 완성하는 게 첫 번째였다. 한글로 만든 글쓰기 플랫폼을 영문으로 만들었다. 한글로 만들었던 건 뒷마무리가 안되었고, 영문으로 만든 건 앞부분부터 문제였다. 하지만 그 앞부분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그 목업을 들고 누군가에게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억지로 만들었다. 하기 싫어하며 계속해서 그 ‘몰입의 순간’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나를 겨우 붙들고는 10분만 더, 20분만 더… 라며 만들었다. 그렇게 한 땀 한 땀 겨우 완성시켰다.


그걸 보여주어야 하는 대상에게, 나의 프로젝트에 대해 적는 건 생각보다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메일 보내기까지 수월하게, 벌써 2가지나 일을 끝낸 것이었다. 그리고 나선 세 번째 todo도 연달아 해치워버렸다. 두 번째와 비슷했던 일, 그러니까 ‘1번 중요 덩어리’를 구성하고 있던 3가지를 해치운 것이다. 마음이 시원했다.

갑자기 몸이 근질거렸다. 집에 앉아만 있으면 정말 좀이 쑤실 것 같았다. 물론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게 꽤 시간 낭비일 수 있는 일이었는데도 괜히 움직이고 싶었다. 그렇게 지하철 4 정거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트까지 다녀왔다. 오는 길에서 야, ‘아 이건 긴급한 것도 중요한 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전에 분명 중요하고 긴급한 걸 끝내지 않았었나.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목표를 잡고, 덩어리를 쪼개서 3가지나 연속으로 클리어하지 않았었나. 그 기억이 꽤나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운동이랍시고 다녀온 그 (not 긴급 not 중요) 산책을 크게 질책하진 않았다. 질책하기를 까먹었을 정도로, 끝맺음 뽕에 빠져있던 게 분명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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