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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Nov 06. 2024

직면하고 싶지 않은 '[나]라는 글감'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12. 글감을 어떻게 고르나요?

p.93

그래서 불행한 일, 속상한 일, 힘든 일이 자기 안의 고유한 경험 자원이 됩니다. 직면하고 싶지 않은 일에 글감의 광맥이 있습니다. 그 광맥에서 글감이 계속 나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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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 친구에게 지겹다고 이야기 한 적 있다. 나의 삶이 지겹다. 힘들거나 고된 게 아니라 이렇게 매번 '나중엔 될 거야'라고 기대만 갖고 사는 삶, 손에 무언갈 쥔 적이 하나 없고 그게 언젠가 이루어질 거니 낙심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삶을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나중에 돈을 모으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말하던가 청약 통장에 매월 10만원씩 모으면서 '모으고 신청하다 보면 당첨될 거야' 라든가, 마구잡이로 돈을 주식에 넣으면서 '언젠가 내게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 찾아올 거야. '라고 말하며 현재 상태가 임시상태라고 인식하며 살아왔다.


예비상태, 준비 중인 것은 어느 일정 시점이 되면 끝이 날거란 기대를 하며 살았다. 그렇게 기대한 시점에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상태가 반복되었다. 이젠 좀 버티기 어려웠다. 나의 목표는 저 오른쪽에 있지만 아직도 멀리 있는 오른쪽 점과 내가 거리 하나 좁히지 못한 채 공전만 하고 있는 상태에 와보니 너무나 지친것이다. 체력엔 한계가 있다는 걸 깜박했다. 큰일이었다. 플랜을 다시 다 바꿔 짜야했다. 내가 무엇을 놓치고 살았을까, 나름대로 나의 시간을 열심히 쪼개어 살았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질문을 했지만 사실 난 답을 알고있었다. 그 원인 중 몇몇은 내가 외면하던 것이었다. 나는 '약간 멍청하고 비효율적으로 하는 바보인 나'를 확인하는 게 너무 무서웠다. '해도 안될 애' 라든가 '인풋 대비 아웃풋 효율이 너무 낮아 비효율인 애' 개 되는 것, 이 싫었다. 그걸 확인하는 작업도 싫어했다. 운이 좋게 A라고 선택했는데 마침 A인 상황이었으면 했다. 노력을 하니까 세상과 신이 감동해서 내가 가는 길도 맞는 길이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평생 과녁이 아닌 곳에 화살을 꽂아 넣으면서 '나도 꽤나 높은 양궁실력을 갖춘'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 타깃을 확인한 적은 정말 없었다. 타깃에 아무것도 꽂혀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막상 나는 그 타깃에 꽂히기 위해 마지막에 텐션 높게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즈음에는 남들보다 일찍 멘털이 나가있었다. 더 빨리 상황을 외면했고, 버티기 힘들어했다. 그 힘듦을 타인들과 나누며 버텨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혼자 당겨보다가 아니면 포기해 버리는, 독학하는 사람의 실패를 해왔던 것이었다.


인생의 성적표를 받아보는 것을 싫어했고, 그런 이들의 성과나 결과물이 부러웠고 보고 싶지 않았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조차 불쾌했다. 내가 타인의 결과물을 보고 '시기질투  하는 존재'라는 사실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대인배의 조건으로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믿었다. 남과 나의 결과물을 보지 않다 버릇했던 나의 습관은 결국, 시간이 지나도 목표와 내가 조금도 가까워지지 않고 평행선을 달리는 데에 일조했다. 내가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나를 확인했다. 지구와 달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요새 들은 여러 말들 중, 가장 꽂힌 말이 있다. '운명을 받아들여라' 평생 그 상태일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나의 멍청함과 가성비 최하 인간임을 인정하고자 한다. 평생 안 보던 성적표, 결과물을 보고자 한다. 기분 더럽지만 뭐, 이렇게 목표에 공존하지 않는 바에야 직면을 하는 게 조금 더 낫겠다 싶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집어먹는 간식들을 직면하고, 스스로 몇 칼로리나 먹어 치우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의자에 앉아 책 보다 유튜브를 먼저 보는 나를 그냥 직면하기로. 그냥 글감으로 또 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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