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없는 놈'의 첫 번째 자기 공개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11. 글쓰기로 고통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럼요 치유할 수 있습니다. 정말요. 저도 그렇게 했었거든요. 제가 경험해 본 여러 가지의 방법 중에 스스로에게 가장 영향이 컸던 하나의 방법을 소개하고 싶어요.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을 한창 하던 때였습니다. 소설을 쓰겠다고 이야기를 해둔 상황이었죠. 소설 속 주인공의 디테일한 특징을 잡아두어야 한다는 어느 작가의 조언이 기억 나 하나둘씩 그 주인공을 '별 것 없는 존재'처럼 보일 수 있는 설정을 해두었죠. 그때 제가 알고 있던 '별것 없는 놈'의 특징은 제 어느 한쪽의 특징이었어요. 찌질한데 입만 산 존재 아시죠? 제가 어느 누군가에겐 딱 그 꼴을 보여주며 살기도 했거든요. 스스로 그 모습을 달가워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통제를 하기 어려운, 본능적으로 숨어있던 존재였습니다. 언제 한번 발동이 되면 그 모습이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일 정도로요.
제 소설의 디테일을 가미할수록 그 존재가 튀어나와 자기 자신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제 머릿속에서 구상한 캐릭터의 장면 몇 개가 지나갔습니다. 그 장면을 묘사하면서 소설의 특정 부분을 전개했습니다. 그렇게 약속한 '오프라인 글쓰기' 시간이 다 지났습니다. 글을 돌려가며 읽었고 서로 피드백을 해주기로 하였습니다. 제 글을 읽은 어느 한 동료가 제게 기가 막힌 말을 해왔습니다.
'와 이거 00살 정도 되는 xxx를 되게 잘 묘사하셨는데요? 주변에서 이런 존재들 만날 때가 있는데 정말 그 사람들이 할 법한 내용이에요.'
저는 그 피드백이 너무 반가웠습니다. 00살 되는 xxx 같은 느낌, 제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던 느낌이 맞았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던 것과 타인의 눈이 일치하였던 그 경험이 좋았어요. 정답을 맞춘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의 피드백을 더 듣고 싶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했어요. 사실은 그 런 특성을 가진 존재인 '나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제 자신을 스스로 뜯어고치고 싶었어요. 00살 xxx 같은 모습은 학창 시절 제가 겪은 일 때문에 만들어진 방어기제였거든요. 그 방어기제에 대해 제 얼굴에 대고 직접 이야기해 줄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매개체와 함께 전달하다 보니 저는 제가 원하는 만큼 솔직한 타인의 리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동료는 주인공에 대한 비판을 신랄하게 해줬습니다. 앞으로 더 '이런 이야기를 넣어 다양한 부분에서 이상한 놈인 것을 보여줘라'라는 말들이 제겐 다르게 들렸습니다. 그 고통을 알아주는 듯하기도 했고 그 방어기제가 만들어내는 문제점도 신랄하게 짚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결하기 위한 방책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제 고통의 기억이 치유된 건 아니었어요. 다만 그 순간이 제 고통이 해소되는 시작점이었고, 스스로를 타인에게 제대로 개방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순간이었습니다. 의도된 건 아니었지만, 저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성을 위협받지 않으며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었어요. 안전한 방식이었죠. 그다음으론 소설을 더 이상 작성해 본 적은 없지만요. 글쓰기가 고통을 완화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 기회가 된다면 이런 방식도 시도해보는 건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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