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13. 내가 쓰고 싶은 글 vs 남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 무엇을 써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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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에요. 자기 의지와 통제대로 살 수 없잖아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살고 있기에 진짜 쓰고 싶은 글을 먼저 써야 한다고 감히 주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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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쓰고 싶어 하는 글을 쓰려면 우선 말투를 바꾸어야 합니다. 독백하는 말투로 글을 쓰다 보면 저도 모르게 집중이 제게 꽂혀버려요. 누군가 앞에 이 글을 읽을 상대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타자를 쳐야만 제 머릿속에서 말들이 조금씩 새롭게 배열되더라고요. 제 눈에는 생략해도 될 만한 일상 에피소드들을 다시 살펴보는 거죠. 그리고 그중에서 꼼꼼하게 읽고 전달해야 하는 내용이 있으면, 놓치지 않고 전달하는 것 이게 '남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쓰기 위한 첫 번째 마음의 움직임이라 생각해요.
은유 작가는 자기 삶에서 '타인의 관점을 고려하지 않았던' 어떤 사례를 가져왔어요. 그런 적이 있다는 거죠.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만든 문서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까지 설명해야 하나, 어떤 내용까지 넣어야 쓸데없는 말이 되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그리고 그 수준을 매번 맞추지 못합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문서를 만들곤 해요.
어제는 친구와 만나 지난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때 제 스스로 '나의 관점만 고수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던 순간이 있었거든요. 제주도 노을을 보고 싶었던 순간인데, 저는 서쪽으로 나있는 고속도로를 쭉 따라가면서 해가 지는 방향으로 정신없이 가보고 싶었어요. 그러나 친구는 아니었어요. 그런 건 좋지만,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엔 빌딩도 많고 해가 잘 보이지 않으니, 어느 잘 보이는 선착장에 차를 대고 저 멀리 떨어지는 해를 쳐다보는 게 더 낫다고요. 저는 저의 생각을 고집했습니다. 친구의 말처럼 보는 건 서울에서도 할 수 있는 일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도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던 마음도 갑자기 생겼습니다. 그렇게 제가 잡고 있던 운전대를 휘휘 움직여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제주도 초행길이었던 저는 빌딩에 가려진 햇빛만 겨우 받았습니다. 해는 내려가는데 저는 '제가 쓴 글'만 읽겠다고 '남들이 읽고 싶어 하는 글'을 쓰지 않았던 것이죠. 결국 저는 노을도 원하는 만큼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쓴 글' 조차 제가 읽지 못했던 거예요.
글 속 작가는 자기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거라고 말해요. 맞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제게 필요한 건 아니었어요. 제 삶에는 '타인이 읽고 싶은 글'을 쓰는 능력들을 갖추려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것만 같아요. 조율하는 방법이라던가, 나의 감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 '타인이 내 글을 읽고 싶지 않아 하는' 상황을 마주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요. 너무나 많은 시간을 '제가 읽고 싶은 글'만 써왔던 터라 그런가 봅니다. 남은 2024년의 저는, '타인이 읽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을 제가 쓰고 싶은 글의 목표로 잡아봤어요. 내년엔 또 달라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