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vergreen Jun 02. 2022

2020년 12월

수면위로 떠오르다

“안녕하세요, 혹시 ooo씨 자녀분 되시나요?”

정신없이 저녁밥을 짓다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고는 그 자리에서 맥이 풀려 버렸다. 수화기 너머로 ooo씨가 갖고 있는 정신병 상태가 많이 안 좋아져 이웃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민원이 넘쳐나고 있는데 내가 법적인 보호자라 직접 병원 입원 동의서를 쓰러 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감추고 싶은 가정사라서 숨기고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척 밑바닥에서 바득바득 기어 올라와 좋은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고 두 아이도 낳았다. 그 전화 한통으로 숱한 노력들이 희뿌연 의미없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좋은 어른인척 가려왔던 가면들이 다 벗겨지고 두려움에 벌벌 떨며 벌거벗고 웅크린 그때의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함께 살던 일곱 살까지의 기억 동안 좋았던 기억은 하나도 없었다. 7년간 나를 키워준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은 항상 위태로웠다. 주변 사람들이 본인 욕하고 있다며 창문너머 큰 건물을 노려보며 욕지꺼리를 퍼붓고 있었고, 혼자 소리소리를 지르다 실신하고 쓰러져 어린 내가 주변 이웃들을 불러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었다. 아빠를 죽이겠다며 칼을 들고 발악을 하던 모습이며 나의 뺨을 사정없이 휘갈겨 때리던 그 잔인했던 모습들까지... 그 장면과 함께 그때의 시퍼렇게 날선 감정들이 나를 다시 뒤덮었다. 그렇게 떠나가 버리고 나에게는 온전한 엄마가 없어서 겪어야만 하는 온갖 서러운 일들만 남겨둔 채로, 나는 그렇게 부모님과 과거를 탓하는 어리석은 어른으로 자라나야만 했다.      


 한창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중, 이성을 차려야만 했다. 현실로 돌아와 다시 직원분과 통화를 하고 남편에게 울며불며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운전을 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니 한 시간 남짓한 거리다. 그 여인이 나와 꽤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었구나. ‘나는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죄책감을 갖지 말자.’ 라는 생각을 하며 이를 악물고 운전해 병원에 도착했다. 법적인 보호자 설명을 장황하게 듣고 서명을 하고 돌아서 차에 시동을 켰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다. 지금 꽤나 괜찮은 삶을 살고 있고 과거는 모두 지나간 일이라고 그토록 주문을 외우고 살았는데 아직도 여전히,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나의 발목을 붙잡을 것 같다는 서러움과 억울함에서 터져나온 눈물이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기어 올라왔는데 왜 또 나를 못살게 구냐고 원망을 하며 울다가 갑자기 이 말을 불쑥 뱉어 버렸다.     




 “엄마, 미안해.”

나에 대한 연민에서 갑작스럽게 그 여인에 대한 연민과 안쓰러움으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나도 결혼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를 낳고 키웠다. 할머니 집에 주말동안 맡겨 놓아도 보고 싶고 그립고 눈물 나는데 그 여인은 30년을 아이들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겠지. 정신이 돌아오는 날에는 우리가 얼마나 그리웠었을까, 본인의 인생이 얼마나 처량했을까. 정신이 온전치 못한 날에는 그조차도 본인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함께 살던 날 동안 나에게 했었던 잔인했던 일들은 그저 다 용서가 되는 것만 같았다. 한 여인에 대한 가여움으로 한참을 울었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극적으로 엄마를 마주할 자신은 없다. 얼굴을 마주보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용기도 없고 여전히 두려웠지만 이제는 내 마음 한 켠에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여인의 건강을 위한 기도와 내가 그 여인을 이제는 용서하는 마음의 공간을...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수고 많았다. 마음 많이 아프지?” 하며 안아주고 토끼 같은 아이들은 엄마 어디 다녀왔냐며 품에 안기고 살을 부비 댄다. 딸은 엄마팔자를 닮는다는 세상 사람들의 불문율을 보란 듯이 내가 깨주겠다며 오기로 버텼던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 딸이 7살이 되던 해, 나는 엄마처럼 떠나가지 않고 아이 곁에 있어 준다며 나는 운명을 거스른다며 혼자 통쾌해 했던 기억들. 보란 듯이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해 내겠다며 큰소리 쳤지만 보고 배운 사랑이 없어 한계치에 도달할 때면 남편에게 울고 불고 한탄하고 함께 노력하고 살아왔던 시간들까지...     


그런 노력들이 보상이라도 받듯이 요즈음 나의 딸은 엄마인 나를 가장 닮고 싶어하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존경한다고 한다. 엄마에게 받지 못했던 조건 없는 사랑을 딸에게서 넘치게 받는 것만 같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는데 나에게는 사랑이 거꾸로 올라가는 사랑인가보다. 그 사랑을 거꾸로 나의 엄마에게도 흐르도록, 용서의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구해본다. 지금 나는 넘치게 사랑받으며 사랑하며 살고 있다. 이제 지나간 과거는 모두 흘러가게 두고 엄마의 건강만을 위해 기도하며 살고 언젠가는, 시간이 흘러 언젠가는 만나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 다시 웃으며 만날 수 있는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 보려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