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 시절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역사를 배운다고 호들갑이다.
걸그룹 댄스와 포카(?)에 빠져 사는 아이는
이딴 역사 외워서 무얼 하냐고 투덜 댄다.
"aa야, 과거를 잊은 자에겐 미래란 없는 법이야."
어디서 줏어 들은 말을 진지하게 꺼낸다.
하지만 나도 역사를 1도 모른다. ㅋㅋㅋㅋㅋ
항상 국사 책의 신석기, 구석기만 너덜너덜 하고
중간부터는 새책처럼 깨끗하고
마지막 근대 부터는 정말 외계어 같은...
이 못난 애미는 몰라도
딸아이 너는 역사를 조금 더 능하길 바라는 마음에
지난 주,
내가 다니던 대학교 근처에
백제 문화제를 한다는 광고를 보고 캠핑을 떠났다.
과거를 잊은 자에겐 미래란 없다고
아이에겐 백제의 역사를 가르치려 떠났지만
금강을 보자마자
대학 시절 나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또 주책맞게 터져 나왔다.
무심한 아빠와 새엄마를 벗어나
대학 생활을 하면 모든 게 내 세상일 것 같았지만
월 10만원의 용돈을 받고
6만 5천원의 폰 요금을 내고 나면
수중에 3만 5천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만 했다.
남들은 부모님이 멋드러지게 사준 새 전공 서적에
CK 청바지, 폴로 옷을 멋드러지게 입고 다닌다면
나는 그들의 책을 빌려
제본을 떠서 다녔고
대전 보세 쇼핑몰에서 할인하는 옷을 입고 다녔으며
항상 배가 고파서
과 여행을 다녀 온 후
빠알간 양념 고기가 많이 남았던 걸 유심히 지켜 보고
과대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양념 고기 남은 거 있어요?"
"아니. 다 버렸는데..."
....
항상 배가 고팠고
3500원짜리 순두부 찌개를 사다 이틀을 먹었고
김밥 한줄을 사다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우걱우걱 씹다 목이 메이기 일쑤였다.
호프집 알바를 하면서
술집 언니들이 '돈 많이 벌게 해줄게. 여기 와서 일할래?'하던 말에
주방에서 과일 안주 만들다 주저 앉아 울던 일들,
대학교 산업체 중소기업 알바로 들어가
배가 고파 매일 컵라면 뜯어 먹던 일들,
남편은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다.
"야, aaa. 출세 했다! 캠핑카 타고 다시 대학 오니까 출세 했어!
좋은 남편 만나고 좋은 시댁 만나고! 응? 맞지?"
"지랄. 너 아니어도 나는 악바리 같이 잘 살았을 거야."
지나치게 감성적인 아내 곁에
더럽게 무심한 감성 파괴자 남편이 곁에서 또 장난을 친다.
그 시절,
배를 곯던 조그만한 여대생이 자꾸만 창문에 비친다.
앞으로 무얼 해 먹고 살아야 하나
불안해 하던 그 조그만 아이가 보인다.
백제 문화제,
남편과 아이들은 무령왕에 대해 공부하고 감탄을 하고
나는 그 시절,
이곳을 답답한 마음으로 거닐었던
그 작은 나를 보듬어본다.
애썼어.
정말 잘 견뎌 주었다.
근데 말이야,
조금 마음을 편하게 살아도
남은 모든 인생이 잘 흘러 갈거야.
그러니 너무 불안해 하지마.
같은 장소에서
우리 가족은 서로 다른 역사를 품어본다.